[include(틀:중국 유교의 변천사)] [목차] == 개요 == {{{+1 公羊學}}} [[청나라]] 말기에 재등장한 [[유교|유학]]의 일파.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세력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후한]]의 [[훈고학]]이 성립되기 전의 춘추공양전 중심의 금문경학이 1500여 년만에 재등장하게 되었다. 1840년에 있었던 [[아편전쟁]]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여, [[양무운동]]이 실패한 후, [[변법자강운동]]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사상이다. == 성립 == [[전한]] 초기에 생긴 금문학파(今文學派)는 [[공자]]를 정치가로, 그가 편성한 육경(六經)을 공자의 정치이론서라고 생각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춘추공양전》에 그 핵심 사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서한의 대학자 동중서(董仲舒)와 공손홍(公孫弘)이 중심이 되어 이 공양학을 창설하였다. 또 중국은 하나라는 사상인 이른바 대일통(大一統)사상이 공양전 속에서 강조되자, 이 학문이 정치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한나라 무제가 정치이론서로 선택하고 또 공손홍을 승상으로 등용하자 공양학은 매우 번창하였다. 후한(後漢) 때는 학자 [[하휴]]가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詁)》 《공양묵수(公羊墨守)》《좌씨고황(左氏膏肓)》 《곡량폐질(穀梁廢疾》 등을 지어 더욱 발전시켰다. == 쇠퇴 == [[후한]] 시기에 접어들면서 고문경서가 연달아 발견되면서 4차례에 걸친 금고문경학 논쟁에서 금문학파가 패배하여 점차 쇠퇴하였다. 그 결과 금문경학은 고문경학에 통합되었다. 그리고 [[후한]]이 멸망하면서, 금문경학은 학자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 부활 == 청나라 초중기에 성행하던 [[고증학]]이 형식화되자 이를 비판하며 출현한 것이 공양학이다. 공양학은 [[하휴]]가 남긴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詁)》를 바탕으로 사회개혁적인 논리를 전개하였다. == 사상가 == * 동중서 * [[하휴]] * 장존여 * 유봉록 * 위원 * [[캉유웨이]] * [[량치차오]] * 이병헌 [[분류: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