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가곡]][[분류:동요]][[분류:시]][[분류:창원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 [youtube(EUNprypi_u0)] [youtube(KG2-yD-9Fvk)] 위쪽은 한국식, 아래쪽은 북한식(~3분 2초)이다.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원수(아동문학가)|이원수]] 시인이 발표한 동시이며, [[동요]]는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110601155419748&p=yonhap&RIGHT_COMM=R8|이일래(본명 이부근)작곡 버전]]과 [[홍난파]] 작곡 버전 두 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 세간에 알려진 버전은 홍난파 버전. 일본어 버전도 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본식 운율인 7·5조가 사용되어 일본인들에게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비슷한 7·5조 노래로 '[[학교#s-9]]'과 '[[섬집 아기]]'가 있다. 또한 본래 우리말 문법을 지켜서 쓰면 "내가 살던 고향은"이라고 하는 게 적합하나, 일제강점기였다보니 일본식 문법인 "나의 살던"으로 된 것으로 보인다. 가사는 서정적이지만 곡조는 [[섬집 아기]]처럼 우울한 느낌이 드는데, 어두컴컴한 곳에서 혼자 듣다 보면 좀 무서워진다(…). 하지만 묘하게 착착 감기는 곡이라 [[초딩]]때 배우는 노래인데도 성인이 되어 잊어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원수는 이 동요를 중학시절인 10대에 지었는데, 그 1절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되는 곳은 당시 이원수가 살고 있던 '''[[창원시]]'''.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창원은 [[마산시|옛 마산시]] 등에 비하면 [[시골]]에 가까웠다. 당시 이원수가 살고 있었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의창동|소답동]] 일대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바로 옆 동네인 [[명곡동(창원)|명곡동]]만 하더라도 1990년대 초반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 창원 [[팔용동]] 남산에는 '고향의 봄 도서관'에 이원수 문학관이 있다. 그러나 이원수가 노래한 '꽃피는 산골'은 팔룡산 쪽이 아니라 골짜기의 반대쪽 면인, 현재 [[창원역]] 뒤에 있는 천주산이다. 이 곳의 진달래는 산 사면을 따라 울긋불긋 피어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 이원수가 태어난 곳인 [[양산시]]에서는 지은 곳은 창원이지만 묘사한 모습은 양산이라면서 역시 시비(詩碑)를 세웠다.] [[2011년]] 초 이원수가 고향의 봄을 쓴 곳이 확인되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창원)|오동동]] 71번지라고 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1/31/0200000000AKR20110131033100052.HTML|‘고향의 봄’ 탄생지는 마산 오동동 71번지]] 여담으로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인 [[영구람보]]에서는 엔딩곡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예전에 [[고교야구]] 대회에 [[재일교포]] 야구단이 초청받아 참가했었는데 경기에서 [[재일교포]] 팀이 승리할 경우 한국의 여러 고교팀이 각자 학교의 교가를 트는 것과 달리 이 고향의 봄을 틀었었다.[*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서 자세히 묘사된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지어진 노래이다 보니 북한에서도 불리고 있는 노래며 여기선 '동네'가 아니라 '동리'로 부르고 있다. 이런 점이 고려되었는지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선 [[오연준]]이 만찬장에서 불렀고 환송식 공연에서도 감동적으로 활용되었다. [[https://youtu.be/Jg0AqlFGsro?t=56s|#]] 북한에서 송출하는 V15 난수방송의 21호 탐사대원 개시곡으로 쓰이고 있다. 이 노래를 기념하여 [[경상남도]] [[양산시]]에 [[고향의봄로]]가 있으며,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공원[* 고향의 봄을 썼던 오동동 자취방 뒷산이면서 이원수 선생의 모교인 [[마산용마고등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에는 고향의 봄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만주어]] 버전도 있다. [[https://youtu.be/DDR5seDGtKw|#]] == 가사 == [youtube(977eQVTkvTs)] === 한국어 원 가사 === >(1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2절)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일본어 번역 가사 === >(1절) >我が生まれた故郷 花咲く 山里 >桃の花 あんずの花 赤ちゃん つつじ >色とりどり鮮やかな 花の宮殿[* 직역하면 '알록달록 선명한 꽃 궁전' 한국어 가사와 다르다.] >その中で 戯れた時が 懐かしい >------ >(2절) >花の里 鳥の里 我が故郷 >青い草[* '파란 풀'로 번역되었으며 일본어로 '들'은 '野原(のはら)'. 박자를 맞추기 위해 조금 바꾼 듯 하다.] 南から 風が吹けば >川の ほとりの 柳が 踊り躍る[* 직역하면 '냇가의 수양버들이 춤추고 춤추네'. '춤추는 동네'라는 명사 서술어가 동사 서술어로 번역되었다.] >その中で 遊んだ時が 懐かしい == 패러디 ==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080020920600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08&officeId=00020&pageNo=6&printNo=15308&publishType=00020| 1970년대 전후부터]]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로 개작한 노래가 유행했다. 대개는 그 지방에 있는 교도소의 이름을 따거나 아니면 [[인천]]교도소라고 불렀는데[* 전두환 잡혀 들어갈 시절엔 안양교도소라고 불렸다.] 사실 인천에는 교도소가 없으며 현재 [[인천지방법원]] 옆에는 인천구치소가 있다. 이 인천구치소가 예전에는 인천소년교도소라는 이름으로 있었고 소년범을 수용했으며 지금도 형기 5년 이하 초범수형자(기결수)가 일부 수용되어 있다. 대구에서는 [[달성군]] [[화원읍]]의 화원교도소를 넣어 부른다. 구미도 인천교도소를 넣어 부르며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는 성동구치소라고 부른다 물론 [[교도소]]와 [[구치소]]의 차이를 아이들이 알 리가 없었으니... 지역마다 가사는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게 '''XX교도소에 수감됐던 죄수가 꽁보리밥 먹다가 10년만에 출소 혹은 탈옥(...)을 해서 집에 와보니 아내는 도망갔다'''는 내용이다. 대개 다음과 같은 가사로 불렸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경북북부교도소|청송교도소]] 버전이 없는 게 신기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 개 밥에 된장국도 맛만 좋더라 감옥살이 10년하고 집에 와보니 마누라 새끼 집 팔아먹고 도망갔더라||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 먹는 것은 꽁보리밥에 멸치 세마리 10년만에 탈옥해서 집에 왔더니 마누라는 집팔아 먹고 도망갔대요|| ||나의 살던 고향은 화원교도소 눈만뜨면 꽁보리밥에 김치 깍두기 10년만에 탈옥해서 집에 와보니 마누라는 집 팔아먹고 토끼삐뜨라(도망갔대요)[* 대구 지역에서 구전되던 가사]||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 꽁보리밥에 된장국이 일품이라네 10년만에 탈옥해서 집에 와보니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도망갔대요||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 꽁보리밥에 된장국은 맛이 없구나 10년만에 탈출해서 집에 갔더니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도망갔구나|| ||나의 살던 고향은 부산교도소 날만 새면 꽁보리밥에 김치 깍두기 집에 오니 아이들은 고아원가고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도망갔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광주교도소 눈만뜨면 꽁보리밥에 빳다 열두대 한대 두대 세대 네대 아이구 엉덩이야 신신파스 붙일 때가 그립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XX교도소 꽁보리밥에 된장국이 그립습니다 교도생활 10년에 집에 와보니 여편네는 집 팔아먹고 날랐습니다[* 서울 북부에서 구전되던 가사. 1970년대엔 서울교도소였고, 전두환이 잡혀갈 때 안양교도소라고도 했다.]|| 혹은 2번째 행이 '''썩은 밥에 개구리 반찬 그립습니다'''로 치환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