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2><table bordercolor=black><black> '''{{{#gold 작위}}}''' ||||<(><white> 왕태자(王太子)|| ||||<(><white>'''양국군(讓國君)''' || ||<:><|2><black> '''{{{#gold 봉토}}}''' ||||<(><white> 구산뢰(狗山瀨)|| ||||<(><white>노두곡(盧豆谷) || ||<:><black> '''{{{#gold 성씨}}}''' ||||<(><white> 고(高) || ||<:><black> '''{{{#gold 이름}}}''' ||||<(><white> 추안(鄒安) || ||<:><black> '''{{{#gold 부왕}}}''' ||||<(><white> 차대왕(次大王) || ||<:><black> '''{{{#gold 생몰연도}}}''' ||||<(><white> 미상 || [목차] == 개요 == [[고구려]]의 왕족. 제7대 국왕 [[차대왕]]의 태자였다. == 생애 == 165년, [[명림답부]]가 차대왕의 폭정을 보다 못해 [[쿠데타]]를 일으켜 차대왕을 살해하자 겁을 집어먹고 산골짜기로 피신하였다. 이듬해인 166년, 차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신대왕]]이 대사면령을 내려서 전국의 죄인들을 용서해주기로 하였는데 그때서야 다시 나타나서 빌었다.[* 정확히는 '죽으라 하면 죽겠지만 살려준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준이었다.] 이에 신대왕으로부터 구산뢰(狗山瀨) 및 노두곡(盧豆谷)을 하사받고 양국군(讓國君)에 봉하여지는 등 환대를 받았다.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쿠데타로 사망한 전왕의 아들인 만큼 최후가 그리 좋지는 못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신대왕으로서는 비록 [[폭군]]이라고 하더라도 차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셈이니 뒤가 구렸을텐데 때마침 차대왕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에게 의탁하려 한다는 점을 정치적인 이유로 이용했을 수도 있다. 물론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만. == 기타 == * 한참 뒤 자국을 잇는다고 선언한 [[고려|나라]]에서도 양국(讓國)이란 존호를 받은 [[목종(고려)|공작]]이 나타난다. * 이름이 [[음경|어딘가 이상하다]](...).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고구려의 왕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