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제11대 국회의원]][[분류:민주사회당 국회의원]][[분류:신정사회당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남포시 출신 인물]][[분류:1920년 출생]][[분류:1988년 사망]][[분류:실향민]][[분류:당 대표/대한민국]][[분류:아오야마가쿠인대학 출신]][[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 [[파일:/image/002/2015/08/29/art_1440741146_99_20151001041505.jpg]] 高貞勳 [[1920년]] [[4월 22일]] ~ [[1988년]] [[11월 25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 작중 내역 == 1920년 [[평안남도]] 진남포부(현 [[남포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도]]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시인 [[백석(시인)|백석]]의 아오야마학원 후배로 백석 시인에게 월남을 권유 했지만 거절 당한다. 백석이 거절한 이유는 백석 문서 참조] 영문과, 북만학원(北滿學院) 대학[* 당시 [[만주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위치해 있었다. 1938년 하얼빈러시아교민대학(哈爾濱俄僑學院)과 성 블라디미르 전문학교가 합병되면서 창설되었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폐교되었다. 다만 공과대학은 [[하얼빈공업대학]]에 합병되었다. 일설에 영화 배우 [[율 브리너]]가 이 학교에서 잠시 수학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영어]], [[러시아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에 아주 능통했다고 한다. 그 [[백석(시인)|선배]]에 그 후배라 할 수 있다. 북만학원 대학 졸업 후인 1943년 [[중화민국|중국]] 본토에서 [[한국 광복군]]에 [[소위]]로 입대하였고 [[이진용(1920)|이진용]], 김동석 등과 같이 대한광복군에 복무하였다.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하얼빈에서 기차로 조선인들을 해방된 고국으로 실어 나르는 업무를 하였다. 이 당시 이 일은 보기와 달리 위험한 일이었고 이 와 관련해 그의 딸 타티아나를 잃고 말았다고 한다. 평양에 돌아와 죽은 딸의 시신을 안고 백석을 찾은 고정훈은 아무런 설명 없이 백석에게 화장장을 알아봐 줄 것을 요청하고 홀로 딸의 시신을 화장한다. 이후 이를 안 백석은 고정훈을 크게 나무랐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백석의 소개로 조만식 선생을 만났다. 다시 조만식 선생의 주선으로 소련 공보원에 취직했다. 그는 여기서 소련군의 통역으로 활동하며 기밀 문서 등을 수집. [[조만식]]계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후 많은 기밀 정보를 수집하여 월남하게 된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7기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장교로 복무하였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특별보좌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국방부 장관]] 특별보좌관,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과장,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 등을 지내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이었던 1950년 3월에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그 이후에는 [[조선일보]] 논설위원, [[진보당(1956년)|진보당]] 선전간사, [[민주혁신당]] 선전국장, [[대한구국청년단]] [[총재]] 등을 지내며 혁신계 인사로 활동했다. 1981년 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사회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태섭(1939)|이태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 [[김갑수(법조인)|김갑수]]의 [[신정당(1981년)|신정당]]과 합당하여 신정사회당이 창당되자 신정사회당 [[총재]]를 지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정사회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주 지지기반인 진보유권자들 사이에서 신한민주당을 밀어주면서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민주한국당]] [[이중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 관련 문서 == * [[실향민/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