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사고]] [[분류:국가재건최고회의 시대]] [[분류:제3공화국/살인사건]] [[분류:1963년 범죄]][[분류:인제군의 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2033635346_83c62c93_1.jpg]] 범인 고재봉. [목차] == 개요 == [[https://youtu.be/pgTRllyH47Q|대한뉴스 제 443호-살인귀 `고재봉` 체포]] [[https://www.sns-justice.org/439|고재봉 대대장 일가족 도끼 살인 사건 나무위키와는 상반된 사건일지가 수록되어있다]] [[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 피해자와 범인이 모두 군 관련 인물이었다. 병-간부 사이의 불화가 극단에 달해 벌어진 사건으로, 일종의 [[상관 살해|프래깅]]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고재봉은 [[공관병]]으로 박병희 중령의 관사에서 지냈는데, 박병희 중령의 가족은 고재봉을 [[머슴]]처럼 부려먹었다. 장작을 패게 하고, 물을 길어오게 하는 등 말 그대로 조선시대 머슴이나 할 법한 일을 시키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대대장 관사의 [[공관병]]이었던 고재봉 상병이 박병희 중령의 [[관사]]에서 여러가지 일을 끝낸 후 서재에서 나오다가, 부엌에 [[고기]] 한 근이 신문지에 싸여있는 것을 보고 훔쳐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가정부]]에게 발각된 것이다. 가정부가 그를 보고 소리를 질렀고, 고재봉은 자신 옆에 있던 [[도끼]]로 이걸 알리면 죽이겠다며 가정부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가정부는 이를 그대로 박병희 중령에게 알렸고, 박병희 중령은 그 동안 관사에서 사라진 물건들도 전부 고재봉 상병이 훔쳤다고 간주했고, 절도죄를 사유로 [[국군교도소|육군교도소]]에서 징역 7개월을 살게 만들었다. 고재봉은 이 사건으로 박병희에게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고, 출소하자 박병희가 있던 관사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박병희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고 그 자리에는 신임 대대장 이득주 중령 일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를 미처 몰랐던 고재봉은 엉뚱한 이득주와 그의 부인인 교사 김재옥[* [[한국전쟁]] 초기 [[동락리 전투]]에서 열세였던 국군에게 북한군의 동향을 알려주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당시 소위였던 이득주와 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등의 일가족 5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만다.[* 가족은 총 6명이었으나 큰아들은 당시 친척집에 있어서 참변을 면하였다.] 이후 고재봉은 귀금속 등을 훔쳐 서울로 도주했지만 시내에서 땅콩을 팔던 상인의 신고로 검거되었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목사 안국선의 전도로 옥중에서 회심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자신이 좀 더 일찍 예수를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형 선고 다음 해인 1964년 3월 10일 경기도 부천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30900209207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3-09&officeId=00020&pageNo=7&printNo=13036&publishType=00020|#]]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찬송가를 부르며 죽었다고 한다.[* 이후 안국선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간증집으로 엮어 책(《전도하는 사람들》)으로 냈다.] == 여담 == 당시 유명한 사건이라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서인지 30년 가까이 지나서 어느 중학교 교감선생이 퇴임식 때 "도끼 그만둡니다."라고 말한 실제 사례가 있다. 그 선생 이름이 바로 고재봉이라서 이 사건의 도끼와 얽혀 학교에서 별명이 도끼선생이었다고. 고재봉에 대하여 다룬 박삼중 스님의 책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죽습니다> 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책에 따르면 고재봉은 60년대 당시 후진국이던 시절 가난하게 자라와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온 식구가 멸문당했을 박 중령은 이 사건에 기겁하고 마음고생하다가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예편해 군직에서 물러났다는 후일담도 나왔다.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 당시, 일부 언론들이 이 사건을 다시 보도하기도 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