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웅주(高雄柱)''' 일본식 성명 : 高垣雄柱 [[1923년]] [[12월 1일]] ~ [[1943년]] 7월 [목차] == 개요 == 본관은 [[고(성씨)|장흥]](長興)[* 21세 '''주(柱)''' 상(相) 항렬.]. [[강원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춘천고등학교|춘천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독서운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벌였다. 민족서적을 통한 항일의식 강화를 목표로 했다. 1941년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8334&cid=40942&categoryId=33384|네이버사전]] == 활동 == 1923년 12월 1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면(현 정선읍) 봉양리[* [[고(성씨)|장흥 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고광돈]]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w3devlabs.net/korea/archives/tag/%EA%B3%A0%EC%9B%85%EC%A3%BC|#]]에서 태어났다. [[춘천고등학교|춘천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8년 가을, '''이 학교의 항일 학생 비밀결사인 [[상록회]](常綠會)가 [[일본제국 경찰]]에 발각되어 전회원이 [[체포]]된 뒤, 고제훈(高濟勳)·권혁민(權赫民)·김영근(金榮根)·박영한(朴泳漢) 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독서운동을 전개하면서 항일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이들은 민족서적을 구입해 돌려가면서 읽은 뒤, 회원들 간에 [[독후감]]을 [[교환]]하거나 [[토론]] 등을 통해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상록회]]의 후신 역할을 하였으나, [[상록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조직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1941년 3월, 독서회의 회원인 고제훈·박영한·[[원후정]] 등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일본 제국|일제]]의 민족차별에 분개해 [[춘천고등학교|춘천고등보통학교]] 교내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대규모로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싸움]]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일본제국 경찰]]까지 개입해 [[한국]] [[학생]]들을 [[탄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독서운동 조직도 발각되고 말았다. 고웅주 역시 '''이때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1년간 [[고문]]을 받은 끝에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단기 1년 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상록회]] == * [[조규석]] * [[문세현]] * [[이찬우(독립운동가)|이찬우]] * [[백흥기]] * [[용환각]] * [[고웅주]]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학생운동가]][[분류:장흥 고씨]][[분류:정선군 출신 인물]][[분류:1923년 출생]][[분류:194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