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구려의 인물]] * [[고구려/인물]]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국적}}}''' ||||<:><white> 고구려 > 보덕국 || ||<:><#191970> '''{{{#white 관등}}}''' ||||<:><white> '''태대형(太大兄)''' || ||<:><#191970> '''{{{#white 직위}}}''' ||||<:><white> '''대장군(大將軍)''' || ||<:><#191970> '''{{{#white 성씨}}}''' ||||<:><white> 고(高) || ||<:><#191970> '''{{{#white 이름}}}''' ||||<:><white> 연무(延武) || ||<:><#191970> '''{{{#white 생몰연도}}}''' ||||<:><white> ? ~ ? || [목차] == 개요 == [[고구려]] 출신의 [[유민]]으로 고구려 [[멸망]] 이후에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고 자세한 출신은 불명. 666년 [[신라]]에 항복했던 [[연정토]] 휘하의 인물로 보는 설, [[검모잠]] 휘하설, 고구려 멸망 직후 독립적 세력을 이끌다가 신라와 뜻이 맞아 협력한 경우로 보는 설이 있다. 행적으로 보아 지위가 높고 고구려의 [[국성]]인 고씨 성이나 [[고덕무]], [[고건무]] 등과 비슷한 돌림자를 쓰는 것을 미루어보아 [[왕위]]에 가까운 고위 [[왕족]]일 가능성도 높다. == 생애 == 668년 [[평양성]] 함락으로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옛 고구려 영토에 [[해외]] 영토 관리 기구인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고구려를 통치하고 나아가 남은 신라까지 정복하려 시도했다. [[고구려부흥운동]]의 한 갈래를 이끌던 고연무는 신라군과 협력해 670년 3월 신라의 [[설오유]] 장군과 함께 [[압록강]] 건너 [[요동]]의 개돈양(皆敦壤)을 기습 선제 공격하는데 [[나당전쟁]]의 첫 [[전투]]다. 고구려 부흥군 사이에서 [[내전]]이 일어나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 땅으로 들어가버리자 [[문무왕]]은 옛 [[백제]] 땅인 금마저(金馬渚, 오늘날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 살도록 하고 [[보덕국]]을 세웠다. 보덕국은 고구려 흡수 명분이 필요했던 신라가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서 만든 [[괴뢰국]]인데 해체되어 신라의 한 주로 편입되기 전까지 약 10년 동안은 옛 고구려의 [[관직]] 체계를 그대로 쓰는 등 어느 정도 [[자치]]가 이루어졌다. 고연무는 나당전쟁이 끝난 뒤 보덕국에서 [[대장군]](大將軍), [[태대형]](太大兄)이라는 안승에 이은 [[2인자]]격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 680년에는 [[경주시|경주]]에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안승에게 조카 딸을 [[왕비]]로 맞게 한 데 대한 답례 교서를 전했다. 그 뒤로는 기록이 없는데 [[신문왕]]의 [[숙청]] 작업의 일환으로 683년 보덕국이 사실상 해체된 뒤 684년 안승의 조카 [[대문]]을 중심으로 보덕국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고연무가 680년~684년 사이에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면 반란 가담 정도에 따라 [[처형]]되거나 처벌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 같이보기 == * [[고구려부흥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