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48년 출생]][[분류:1979년 사망]][[분류:등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고씨]][[분류:등산사고로 죽은 인물]][[분류:실족사한 인물]][[분류:청주대학교 출신]] [[파일:external/ph.jejusori.net/106165_115585_314.jpg]] 197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직후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습. ||[[파일:external/guesthousejeonju.com/18e2999891374a475d0687ca9f989d83162022.jpg]]|| ||생일||1948년 12월 29일|| ||사망||1979년 5월 29일|| ||본관||제주 고씨|| ||가족||1남4녀중 막내이자 장남. 부인||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고상돈(高相敦)은 1948년 제주도(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태어난 [[산악인]]이다. [[고(성씨)#s-1.1|본관은 제주(濟州)]]이며 본관과 같은 제주도 제주시에서 출생하였고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성장하여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 [[청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힘이 좋고 하체가 매우 탄탄하여 '''가득 채운 등산짐 2개를 짊어지고도''' 거뜬히 산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7년 9월 15일 대장 [[김영도(1924)|김영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등과 함께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는 대기록을 남겼다. [[파일:external/www.ijejutoday.com/130611_91652_412.jpg]] [[파일:external/www.ijejutoday.com/130611_91653_4149.jpg]] [[파일:external/www.ijejutoday.com/130611_91654_4236.jpg]] [[파일:external/www.ijejutoday.com/130611_91655_4312.jpg]]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이후 유명인사가 되어 [[청와대]]에도 초청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1979년 [[알래스카]]의 [[데날리|매킨리 산]][* 등반 난도가 14좌 버금가는 산이라고 한다. 자세한 부분은 항목 참조.] 등정 일정을 잡아, 정부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장비와 자금을 든든하게 갖추어 등반, 정상 등정까지 성공하였지만, 하산 도중 [[실족사|추락사]]하였다. 동료 대원인 이일교도 고상돈과 함께 사망했고 박훈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제주도에서는 [[1139번 지방도|1100도로]]의 일부 구간[* 제주시 노형동 어승생 삼거리에서 [[서귀포시]] 중문동 구 탐라대학교 사거리까지의 구간으로 다른 지방도와 겹치지 않는 1100도로의 고유한 구간이다.]을 '''고상돈로'''라 명명해 기리고 있으며, 그의 묘소는 기념비, 동상 등과 함께 고상돈로의 중간인 1100고지 휴게소에 위치하고 있다. 부인은 패션사업을 하고있고 친딸이 이화여대를 나왔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