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덴노)] ||||<tablealign=center>[[파일:external/dthumb.phinf.naver.net/File:Emperor_Go-Sai.jpg|uselang=ko]]|| ||<:> '''[[시호]]''' ||고사이 덴노(後西天皇, 후서 천황)|| ||<:> '''별호''' ||하나마치노미야(花町宮) 하나마치노도노(花町殿) || ||<:> '''[[휘]]''' ||나가히토(良仁)|| ||<:> '''[[왕릉|능호]]''' ||쓰키노와능(月輪陵)|| ||<:> '''생몰''' ||[[1638년]] [[1월 1일]] ~ [[1685년]] [[3월 26일]]|| ||<:> '''재위''' ||[[1655년]] [[1월 5일]] ~ [[1663년]] [[3월 5일]]|| ||<:> '''[[연호]]''' ||메이레키(明暦)→만지(万治)→칸분(寛文)|| ||<:> '''황거''' ||교토 어소(京都御所)|| [목차] == 소개 == 일본의 제111대 덴노. [[고미즈노오 덴노]]의 8남으로 [[메이쇼 덴노]], [[고코묘 덴노]]의 이복동생. 아명은 히데미야(秀宮). == 생애 == 원래라면 이복형 [[고코묘 덴노]]의 양자가 된 이복동생 사토히토([[레이겐 덴노]])가 덴노가 되어야 했지만, 고코묘 덴노가 사망했을 당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고사이 덴노가 대신 즉위했다. 사토히토 황자가 덴노로 즉위할 수 있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덴노가 될 생각으로 즉위한 것이었다. 후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토히토 황자에게 양위한 것은 이 때문이다. 1663년 1월 16일, 10세가 된 [[레이겐 덴노]]에게 자리를 양위하였다. 그의 치세 중에는 [[이세신궁]]이나 [[오사카 성]], 또는 덴노가 거주하는 다이리 등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지진이나 수해 등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덴노의 부덕의 소치라고 비난하였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 황위를 선양하도록 했다는 설도 있다. 고사이 덴노는 [[와카]]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등 고전에 조예가 깊었으며, 가집 『수일집(水日集)』을 남기기도 하였다. 1685년, 고사이 덴노는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능은 교토 시 히가시야마 구의 천통사(泉涌寺) 경내에 있는 월륜릉(月輪陵)이다. 공식 명칭은 고조구중탑(石造九重塔)이다. [[시호#s-1.3|추호(追号)]]인 고사이(後西)는 53대 [[준나 덴노]]의 별호인 사이인[* 준나 덴노의 추호의 유래가 된 별궁 준나인(淳和院)의 별칭이다.]노미카도(西院帝)에서 따온 것이다.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아키코 여왕(明子女王, 1638년 ~ 1680년) 외 측실 7명 - 황자 : 하치죠미야 오사히도 친왕(八条宮長仁親王) 외 황자 10명 - 황녀 : 마사코 내친왕(誠子内親王) 외 황녀 16명 [[분류:천황]][[분류:1638년 출생]][[분류:1685년 사망]][[분류:교토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