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91970><tablebgcolor=#191970> '''{{{#white 지위}}}''' ||<colbgcolor=white,#191919> '''왕제(王弟)''' || || '''{{{#white 성씨}}}''' || 고(高) || || '''{{{#white 이름}}}''' || 무(武) || || '''{{{#white 부왕}}}''' || [[미천왕]](美川王) || || '''{{{#white 형제}}}''' || [[고국원왕]] || || '''{{{#white 생몰연도}}}''' || 미상 || [목차] == 개요 == [[미천왕]]의 아들이자, [[고국원왕]]의 동생. == 생애 == 342년, 모용[[선비족|선비]]([[전연]])의 [[모용황]]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해왔을때 활동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고구려]]의 왕족이다. [[모용황]]은 이끌고 온 4만의 군사를 나누어서 각각 북도와 남도를 치게 하였는데, 비교적 방어를 허술히했던 남도에서 고구려군이 크게 패하였다. 결국 방어선이 무너진 고구려는 [[전연]]의 군사들에게 도읍을 점령당하는 [[굴욕]]을 당하였고, 심지어 고국원왕마저 모용황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고국원왕]]의 동생이었던 고무는 5만명의 정예병력을 이끌고 북도에서 방어를 하고 있다가 쳐들어온 [[전연]]의 장수인 왕우와 1만 5천의 군대를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고무와의 싸움에서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은 [[모용황]]은 뒤치기를 당할 것을 염려하여 [[고국원왕]]을 추격하던 것을 그만두고, 사로잡은 [[고국원왕]]의 어머니를 인질로 잡아갔으며, 한술 더떠서 [[미천왕]]의 무덤을 파서 시신까지 가져가버렸다. == 기타 == 이듬해인 343년, 고국원왕은 아우를 전연에 파견에 미천왕의 시신과 왕후 주씨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모용황은 미천왕의 시신만 돌려주었다. 다만 이 인물이 고무인지, 고국원왕의 다른 동생인지는 불명. == 대중매체 ==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광개토태왕(드라마)|광개토태왕]] 등에서 연이어 등장하였다. 김진명의 고구려에서는 을불의 차남으로 무예가 뛰어났고 여노에게 무예를 전수받는다. 많은 이들이 무가 태자가 될줄 알았으나 아버지인 을불이 사유를 태자로 책봉하고 또 사랑하던 아불정효도 사유와 결혼을 해버리자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 후 하성전투에서 고구려병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용부의 장수 2명을 죽이고 모용부의 반강의 동생을 죽여버린다. 그 때문에 반강이 동생을 원수를 갚기 위해 나타나 그와 싸우다가 붙잡히고 만다. 그 후 여노가 정체를 알아차리고 모용부로 직접 가 자기 목숨을 내놓고 무를 풀어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무사히 돌아오지만 여노의 시체를 평강에게 인수하고 홀로 사라져버린다. 그 후 여자로 분장해 모용외를 암살한다. 여노의 여려극을 물려받고 고구려의 장수로 활약한다. 사유가 왕위에 오르고 사유와 정효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자 구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무, version=167, paragraph=3)] [[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고구려의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