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북[[만주]]에 위치했던 국가 == 고리국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일부 기록에서 나타나는 국가로, 탁리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논형》에는 '탁리(橐離)', 《[[정사 삼국지|삼국지]]》의 주석 중 하나인 배인(裵駰)의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는 '색리(索離)', 《후한서》에는 '고리(高離)'로 나타나는데, '탁(橐)'과 '색(索)'은 모두 '고(藁)'를 '''잘못 쓴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다. 고리국에 관한 기록은 사서뿐 아니라 《[[수신기#s-2]]》같은 위진남북조대의 소설에서도 확인된다. 희대의 불쏘시개 《[[환단고기]]》는 해모수가 고리국 출신이고, 고리국은 요동 서안평에 위치했다고 주장한다. [[부여]]의 시조 [[동명왕|동명]]은 고리국의 [[영품리왕]]으로부터 탈출해 부여 땅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고구려]]의 [[추모왕]]이 [[부여]]를 탈출해 졸본으로 도주한 설화는 이 설화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세한 설명과 논형 본문의 해석은 [[동명왕#s-2]] 문서로. 위치는 [[부여]] 북부일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적으로 청동기 문화를 이루었던 반농반목 문화권이자, 후에 부여의 전신이 되는 서단산(쓰퇀산) 문화권과 동화된 송눈평원 (지금의 송원시 일대/하얼빈 시 서남쪽) 지방의 백금보-한서2기문화권에 이를 비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구려]]와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음의 유사성을 들어서 연결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 인물이 [[이병도]]인데, 가져다 붙이기 아니냐는 평을 받는다. 게다가 고리국의 실체를 고구려로 인정하면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설화는 [[무한루프]]가 된다.[* 고리에서 부여가 나왔다는 전설 -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다는 전설 - "고리=고구려"라는 전제를 합쳐보면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 다만 [[동명성왕]]의 건국 이전부터 고구려라는 민족 집단이나 세력이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설명할 길이 없는 건 아니다. 고구려는 高離(고리), 高駒驪(고구려), 句麗(구려), 駒驪(구려), 高麗(고려) 등의 여러 이름으로도 기록되었다. 즉 고리는 고구려를 지칭하는 여러 이름들 중 하나로서 고주몽(高朱蒙)이 부여의 시조 [[동명왕]]을 계승하고자 고리에서 이름 따왔을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의 명칭은 고주몽의 성 고+고리에서 유례했다는 주장이 있다. 고리는 골(짜기), 고을, 마을 등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 왕사 === ||<tablewidth=100%> 대수 || 왕명 || 휘 || 재위기간 || 비고 || ||<-5><bgcolor=#dcdcdc> .[br].[br]. || || ? || [[영품리왕]] || ? || ? ~ ? || 국내의 삼국사기, 중국 사서에 등장 국내의 문헌에는 해부루왕의 다른 왕호(王號)라 하나 중국의 문헌에는 고리국의 왕이라 전해짐 동명왕 동명 설화에는 탁리국왕으로 기록됨 || ||<-5><bgcolor=#dcdcdc> .[br].[br].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한반도의 지도자 목록, version=23)] == [[마한]]의 열국 중 하나 == [include(틀:마한의 국가)] 古離國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마한의 작은 국가 치고는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으나, 3세기 무렵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참고로 네이버 웹툰 [[무사만리행]]에서 주인공의 고향이 이 고리국이다. [각주] [[분류:동음이의어/ㄱ]][[분류:삼한]][[분류:3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