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高麗白磁.'''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자]]. 고려 하면 [[고려청자]]를 떠올리고 백자 하면 [[조선백자]]를 떠올리나, [[고려시대]]에도 [[백자]]가 있었다. 비슷한 케이스로 [[조선청자]]가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청자]]의 전성기로 제조된 수량은 [[고려청자]]에 비해 매우 적어서 현존하는 수량이 매우 희소하다.[* 사실 [[고려청자]]는 남아있는 수량이 일반인들의 생각보다도 상당히 많다. 사람들은 고려청자라 하면 다 귀하고 비싸리라 생각하지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막사발 등은 너무 많아 천 년 전 유물인데도 가격이 고작 몇만 원에 불과하고, 현존수량이 많은 개합은 그보다 비싼 정도이다. 심지어 상감청자라 하더래도 엉성한 하품들도 많은데, 그런 것들은 고려청자란 이름이 무색하게 박한 대접을 받는다.] 박물관 수장고에도 생각 외로 고려청자들이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국가지정문화재 중에도 고려청자가 상당히 많다. 그만큼 많이 만들었고 많이 남았단 뜻이다. 반면에 박물관에 있는 고려백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물론 개인소장품은 더 있을 것이다.] [[조선백자]] 중에도 고려백자의 전통을 계승한 유물들도 있다.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진양군 영인정씨 묘 출토유물]] 등이 그러하다. == 소성 방법 == 고려백자 태토를 백토로 성형한뒤 청자유약을 입힌 후 청자가마에서 번조해서 만들었다. 그냥 청자 만드는 과정에서 흙만 백토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조선백자와는 달리 순백이 아니라 푸른빛이나 누런색을 띄었다. 질감은 완전히 경화되지 않은 석고 같은 느낌이다. 이렇듯 [[조선백자]]의 과도기에 가까운데, 고려청자를 만들 때 부수적으로 같이 만들었다. 오직 고려백자만 전문적으로 만든 가마터는 [[경기도]] 동남부의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사적 326호.]와 여주 중암리 고려백자 요지 둘밖에 없을 정도이다. 나머지 고려백자 가마터는 고려청자 가마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상황이 정반대가 되어서 조선청자를 만들 적에는 태토를 백토로 쓰고 청자유약을 바른 뒤 백자가마에서 구웠다. 그래서 [[조선청자]]는 [[고려청자]]와 색감이 다르고 좀 더 백색에 가깝다. 청자가마, 백자가마는 불의 온도에서 차이가 난다. 백자가마가 더 고화력으로 온도를 더 높인다. 이렇듯 고려백자와 조선청자는 당대의 주류에서 벗어난 [[마이너]]였다. 더욱 마이너한 것으로는 철유자기, 흑유자기, 연리무늬자기, 도칠자기, 잡유가 있다. == 형태적 특징 == 고려백자의 가장 큰 특징은 색감이다. 조선백자와는 확연히 다른데, 사실 색감의 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석고 같은 빛깔이라고 하면 좋게 표현한 것이다. 색 자체를 잘 내지 못하여 한 도자기에서도 색깔이 균일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어느 쪽은 푸르스름하고 어느 쪽은 누렇고... 화려한 청자와 고려, 순박한 백자와 조선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실은 백자가 더 만들기 힘든 하이테크놀로지이다. 아직 조선시대만큼 외면적 기술과 장인들의 노하우가 발전하지 않아 못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백자는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한다. 그렇지 못한 고려백자들은 소성이 완벽하지 못했다. [[편견 및 고정관념/문화#s-5|편견 및 고정관념/문화]] 참조. 태토를 성형할 때는 그 두께가 상당히 얇으며 바닥은 편평하게 만들고 유약을 바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려 청자를 만들 때에는 굽받침에서 내부 깊은 곳까지 손이 닿는 부분이라면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유약을 발랐다. == 가치 == 앞서 기술적으로 볼때 [[조선백자]]보다 질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중세의 고려가 근세의 조선보다 더 옛날이라 기술발전 단계가 아직 미치지 못했을 뿐, 고려백자도 청자만큼이나 고급스러운 명품들이었다. 색감이 순백이 아니고 균일하지 못할 뿐, 성형부분에선 사치스러운 귀족 취향 도자기였다.[* 오히려 기술이 더 발달된 조선시대의 백자보다도 더 화려한 면이 있다. 고려는 화려한 귀족문화였으나 조선은 사대부문화여서 검소하고 질박한 것을 추구하는 사상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백자를 만들려면 청자보다 더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했고, 당시에는 재료가 되는 백토가 귀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땅 파서 회흑색토를 보는 확률과 백색토를 볼 확률을 생각해보자.] 고려청자 중에는 최상품도 있지만 품질이 조잡한 하품도 굉장히 많은 반면, 백자는 거의 상등품만 있다.[* 사실 현존하는 수량 자체가 드물어서 고려백자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적게 만들었으니 적게 남았다는 것이다.] 청자는 대량생산되어 상류층부터 서민까지 사용하지만[* 물론 주사용품은 목기나 토기가 더 많았을 것이다.] 백자는 오직 상류층용 소량 생산품이었다. 수요도 꾸준해서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거의 동일한 시점에 그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수요량도 꽤 되는 편이라 부족한 물량은 중국에서 수입했다. 안 만든 게 아니라 실은 못 만든 거였다. 결국 시간이 지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둘의 지위가 역전되어 백자 우위 시대가 되었다가[* 조선에서는 왕과 왕비는 그릇으로 백자를 사용하였고, 왕세자와 왕세자빈은 청자를 사용하였다. 백자가 청자보다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조선 초중기의 이야기이고 후기에는 아예 청자는 궁에서 퇴출되어버렸다. [[고종황제]]는 청자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조선에는 이런 도자기가 없다고 할 지경이었다. 물론 민간에서는 일부가 보존되어 있었을 것이다.] 청자는 끝내 실전되어버리고 말았다.[* [[중국]]이나 [[일본]]은 청자도 꾸준히 제작했다. 그러나 백자가 청자보다 어려운 기술임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 청자 이후 백자기술이 발전하였다.] 고려백자도 고려청자처럼 귀족문화의 유산인 것이다. 현재도 완형으로 남은 고려백자 유물은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있으므로 가치가 높으며, 대체적으로 유물들의 예술적 수준 역시도 높다. == 고려백자 고미술품 목록 == === 국가 지정 문화재 === ====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 ====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 * 보물 제238호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 * 보물 제345호 백자 상감모란문 매병 * 보물 제1058호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 === 시도 지정 문화재 === === 일반 동산 문화재 === * 고려 백자철화 국화나비무늬 매병 * 고려백자향합 *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고려 백자 일괄 === [[해외 소재 문화재]] === == 같이보기 == * [[백자]] * [[고려]]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의 도자사)] [[분류:도자기]][[분류:고려의 문화]][[분류:고려의 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