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북청군 출신 인물]][[분류:1894년 출생]][[분류:193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고두환.png|width=300px]] || || 성명 ||고두환(高斗煥) || || 생몰 ||[[1894년]] [[1월 1일]] ~ [[1932년]] || || [[출생지]] ||[[함경남도]] [[북청군]] 대속후면 하천리[[http://db.history.go.kr/id/haf_117_0600|#]][br](현 함경남도 [[금호지구]] 속후리) || || 사망지 ||함흥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고두환은 1894년 1월 1일 함경남도 북청군 대속후면 하천리(현 금호지구 속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직후 [[만주]] 관전현(寬甸縣)[* 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으로 망명한 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국내특파원에 임명되어 [[민양기]]·[[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6227|이명서]](李明瑞)·박기영(朴技榮) 등과 함께 [[의주군|의주]]·[[구성시|구성]] 등 [[평안북도]]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다. 1920년 8월에는 만주독립단원으로 민양기·이명서·[[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1072|이근영]](李根永)·[[박기수#s-1|박기수]]·[[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72770|주의환]](朱義煥)·[[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72398|이지표]](李芝杓)·[[원사현]]·박기영(朴基永) 등과 함께 [[황해도]] [[송화군]] [[구월산]]에서 무장독립대를 결성한 후 부근 전역에 독립단 기관을 조직하고 활동을 개시[* 구월산에서 조직했다고 하여 구월산대(九月山隊)라고도 한다.], 같은 해 8월 15일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은율군수(殷栗郡守) 최병혁(崔丙赫)을 사살하고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 일본 밀정의 밀고로 [[신천군|신천]]경찰서 일본 경찰과의 교전 끝에 경미한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1921년 7월 20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으며[[http://db.history.go.kr/id/npda_1921_07_20_v0003_0390|#]]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http://db.history.go.kr/id/su_006_1921_08_19_0500|#]] 평양·경성 두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그 사이 두 차례 감형을 받아 1932년 12월 15일 오전에 10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른 끝에 만기출옥하였다.[[http://db.history.go.kr/id/npda_1932_12_17_w0002_0330|#]] >"구월산에서 경관대와 충돌하야 창상(創傷)을 네곳에나밧고형무소에 수용되엇슬 당시에는 다시세상을 보지못할줄 알엇습니다마는 지금세상과 다시대하게되니 다만감개만 무량합니다 >그때에 현장에서 죽은5명과 역시창상을밧고 체포되어 [[민양기|사형을바든사람]]의 셍각을하니 그때의 사람으로는 나혼자남어잇는 셈이올시다 >그동안 가정에 변화도잇섯슴니다 어머니께서는 지난9월에 도라가섯고 안해는 무긔징역을 바덧다는 소식을듯고 개가하얏습니다" > ---- >1932년 12월 15일 오전, 고두환이 만기출소하면서 남긴 소회.[*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옮겨 적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2121700209202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2-12-17&officeId=00020&pageNo=2&printNo=4311&publishType=00020#|#]] 그러나 옥고의 여독으로 해를 넘기지 못하고 그해 고향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