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경희궁)] [목차] == 개요 == {{{+1 慶熙宮 開陽門}}} [[경희궁]]의 남쪽 궁문이다. [[http://www.dapsa.kr/blog/?p=31211|이 포스팅]]에 따르면, 현재 [[경희궁 흥화문|흥화문]]이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궁궐]] [[정문]]은 남쪽에 두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경희궁의 지형 특성 상 정문은 동쪽 문 흥화문이 되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table width=662>[[파일:Heunghwamun.jpg|width=100%]]|| || 개양문 터에 현재 들어선 흥화문 || == 이름 == '개양(開陽)'은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 [[별]]로[* [[별자리]]로는 [[큰곰자리]]의 제타성에 해당한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등장인물들이 언급했던 '개양성의 주인'할 때의 그 개양 맞다.] '[[음양#s-2.2|양(陽)]]의 [[기(기운)|기운]]을 크게 연다(開)'는 뜻이다. 양은 전통적으로 남쪽을 상징했기 때문에 남문의 이름으로 쓴 듯 하다. == 역사 == 1617년([[광해군]] 9년)에서 1620년(광해군 12년)에 [[경희궁]]을 창건할 때[* 당시에는 경덕궁(慶德宮). 1760년([[영조]] 36년)에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었다. [[신하]]들이 궁에 드나들 때 주로 이용했다. 정전 [[경희궁 숭정전|숭정전]]과의 거리가 [[경희궁 흥화문|흥화문]]보다 더 가까웠으며 문 안쪽에는 궐내각사[* 궁궐 안에 세운 [[관청]]들.]가 있었기 때문이다. 1860년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대부분 [[경희궁]] 건물들을 [[공사]] 자재로 쓰려고 없앴다. 그러나 영역만은 살아남았고, 개양문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890년대에 그린 [[서울]] 지도 《[[수선전도]]》[* [[장로회|북장로교]] 의료선교사였던 헤론(J. W. Heron) [[박사]]의 유품으로, [[김정호]]의 《수선전도》를 [[펜]]으로 새로 필사한 후 [[한글]]과 [[영어]]로 지명을 수록한 것이다. 제작 연대의 경우 1890년([[고종(대한제국)|고종]] 27년)에 지은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러시아공사관]]인 아라사공사관이, 1896년([[건양]] 원년)에 헐리는 [[서대문]] 밖의 모화관이 적혀 있어 그 사이에 필사한 듯 하다.]를 보면 경희궁 궁장과 궁문을 확인할 수 있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A%B0%9C%EC%96%91%EB%AC%B8(%E9%96%8B%E9%99%BD%E9%96%80)|#]]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 제국|일제]]가 [[경희궁]] 터에 경성중학교[* 현재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중학교와는 전혀 다르다. 그 곳은 1967년 개교했으며 한자가 '景'城으로 다르다.]를 짓고, 그나마 남아있던 경희궁 건물과 영역을 일반에 매각하면서 개양문도 같이 헐렸다. ||<table width=662>[[파일:대성문 개양문.png|width=100%]]|| || 성균관대학교 대성문으로 바뀐 개양문 || 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었던 〈경희궁 특별전〉 전시 내용에 따르면, 처음에는 [[남산(서울)|남산]]에 있는 [[일본]] [[절(불교)|사찰]] 서본원사(西本願寺)에서 사들여 [[정문]]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이후 [[조선방송협회|경성방송국]]을 거쳐 1964년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옮겨다가 정문 대성문으로 활용했다. 대성문은 1960 ~ 1970년대 성균관대학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차량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76년에 학교 측에서 교문을 석조로 교체했다. 이후 [[신라호텔]]로 옮겼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그 행방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https://cafe.daum.net/distorted/2xbP/496?q=%EA%B2%BD%ED%9D%AC%EA%B6%81%20%EB%AC%B4%EB%8D%95%EB%AC%B8|이 글]]에 따르면, [[성균관대학교]] 대성문은 [[환구단]]의 석고단 광선문(光宣門)을 옮겨온 것이며 개양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윗 링크 본문에서는, 이철원이 지은 책 《왕궁사》에서 광선문을 경희궁 항목에 적었고, 이게 와전되다가 개양문으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하고 추정한다. 만양 대성문이 개양문과 전혀 상관없다면, 개양문 건물이 없어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에 경희궁 영역을 매각할 때인 듯 하다.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경희궁, version=345, paragraph=3.4, title2=수선전도, version2=15, paragraph2=2)] [[분류:경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