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3.jpg]] [목차] == 개요 == 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37호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기의 사리장엄구 일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4.jpg]] 금동사리외함 상판에 새겨진 황금글씨들 [[파일: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2.jpg]]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파일: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5.jpg]] 금제, 은제 고배 [[파일: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6.jpg]] 금제방형합 1942년, 국보 제37호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제, 수리하던 중 석탑 2층 지붕돌 상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 사리갖춤이다. 제작 연대는 692년([[신라]] [[신문왕]] 12년, [[효소왕]] 원년)과 706년([[신라]] [[성덕왕]] 5년)이다. 두 황금 불상이 담겨있던 금동제 사리외함의 뚜껑 안쪽에는 [[해서체]]로 1행에 20자씩 총 18행의 명문과 99기의 작은 탑들이 새겨져 있는데, 명문에 따르면 692년에 [[신문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목태후]]가 왕위를 이은 아들 [[효소왕]]과 함께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선원가람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이 사리갖춤들을 봉안했다고 되어 있으며, 이후 706년에 성덕왕의 명으로 불사리 4과(顆)와 6촌(寸) 크기의 순금제 아미타상 1구, 그리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1권을 추가로 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파일: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1.png]] 706년에 이 사리장엄구에 수록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기록상으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판본이다. 위의 유물들 외에도 은제방형합, 유리판, 유리구슬 등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현재 이 사리장엄구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이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다수의 황금 유물과 공예품들이 발견되어 과거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 바깥고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807&cid=42679&categoryId=42679|한국 미의 재발견 - 금속공예 : 경주 황복사터삼층석탑 사리장엄구]]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7627&cid=58840&categoryId=58851|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 황복사 터 삼층석탑에서 나온 금제 불입상과 아미타불좌상]] * [[http://blog.daum.net/inksarang/13941511|황복사 터 삼층석탑 사리갖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사리장엄구]][[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