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1.jpg]] [목차] == 개요 == 松花山 石造半跏思惟像. 1909년에 [[경주시]] 서쪽의 [[송화산]] 기슭에 위치한 [[김유신]]의 재실(齋室) 금산재(金山齋)에서 발견된 7세기 초 [[신라]]시대 석조 [[불상]].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3.jpg]] [[https://blog.naver.com/jhsy37/30175888472|사진 출처 : 신라 천년의 보물들로 가득한_국립경주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경주]]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반가사유상으로, 제작 연대는 600년대 초이다. [[김유신]]의 재실(齋室)인 금산재(金山齋)에서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양팔과 머리 부분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윗 부분이 파손된 현재 크기는 약 125cm 정도이다.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허리는 가늘게 표현되었으며, 오른쪽 [[무릎]] 위에 걸쳤던 오른쪽 팔꿈치 부위와 왼쪽 발목을 잡고 있는 왼손 일부가 남아 있어 반가사유의 자세를 이루었던 신체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목]]에는 단순한 형태의 넓고 둥근 [[목걸이]]를 걸쳤으며, 왼쪽 어깨 부분에는 보발(寶髮)의 일부가, 왼쪽 손목에는 [[팔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파일: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4.jpg]] 하체에 걸친 군의는 두꺼워 두 다리가 풍만해 보이며, 따라서 상 전체에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옷주름은 모두 얕은 이중의 선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양식이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발견된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과 상당히 유사한데 특히 원각(圓刻)으로 된 대형의 석조반가사유상은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과 이 유물 외에는 전 세계적으로 현존 예가 드물다. || [[파일: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5.jpg|width=170]] || [[파일: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2.jpg|width=300]] || 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국보인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 상당히 흡사한 양식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의 재질을 확인해본 결과 일본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고 [[한반도]]의 [[경상북도]] 지역에서 자라는 적송으로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 외에도 다양한 반가사유상들의 재질, 양식, 형태 등이 [[신라]]의 목조 불상과 비슷해, [[신라]]에서 제작되어 [[일본]]으로 넘어간 불상들이라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다. 또한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도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다. == 바깥고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865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송화산석조반가사유상]]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불상]]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