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1.jpg|width=430]] ||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2.jpg|width=430]] || 조각 복원 이전의 모습. [[http://www.k-heritage.tv/brd/board/242/L/CATEGORY/337/menu/246?brdType=R&thisPage=12&bbIdx=9554&searchField=&searchText=|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 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사천왕상 전돌(四天王像 塼)]] [목차] == 개요 == [[신라]] [[문무왕]] 19년인 679년에 [[경주 사천왕사지|경주 사천왕사]]에서 [[양지(신라)|양지]]에 의해 만들어진 녹유사천왕상 48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 [youtube(uzQYko0HNx0)] || ||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3.jpg|width=430]] ||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4.jpg|width=430]] || ||||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5.jpg|width=430]] || 흩어진 조각을 모아 복원을 완료한 모습. [[https://blog.naver.com/ohyh45/220897655782|사진 출처 : 사천왕사지 녹유신장벽전(四天王寺址 綠油神將壁塼)]]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6.jpg]] [[일제강점기]]이던 1915년에 [[https://ko.wikipedia.org/wiki/아유카이_후사노신|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경주시]] 배반동 사천왕사지에서 최초 발견한 사천왕상전이다. 여기서 '전(塼)'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을 뜻한다. 1915년에 서탑터에서 최초로 녹유전 조각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게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채라 다시 땅에 묻었다. 1918년과 1922년에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천왕상 파편들이 출토되었다. 시작하였다. 사천왕사는 [[삼국통일전쟁]]이 끝난 직후인 679년에 [[신라]]가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676년에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신라는 통일을 달성한 뒤, [[삼한일통|삼한(三韓)의 통일]]을 기념하고 통일 국가를 불법(佛法)의 힘으로 지키려는 염원을 담아 [[서라벌|수도 금성]] 낭산(狼山) 서쪽 기슭에 세웠다. 이 터에 사찰을 세운 이유는 당시 [[당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 여러 번 영검을 보인 신유림(神遊林)이었기 때문이다.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7.png]] 발굴 당시의 모습.[[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9103|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 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초화문 "아름답구나"]] 679년 사찰이 건립될 때 함께 조성된 탑은 2탑 1금당식, 즉 쌍탑가람제(雙塔伽藍制)를 따른 [[한국]] 최초의 탑으로 유명하다. 연구 결과 목탑은 석조를 이용하여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전돌(벽돌)을 쌓아올린 다음, 그 위에는 목조탑을 세웠다고 확인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종래 한국 불교건축계에서는 전혀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건축양식이다. 이 녹유사천왕전(綠釉四天王塼)들은 2개 탑의 기단면석으로 사용되었는데 총 48점이다.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10.jpg]] [[경주시]] [[석굴암]] 신라 사천왕상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8.jpg]] 경주 원원사지삼층석탑 신라 사천왕상 [[파일: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전9.jpg]] 경주 기림사 신라 사천왕상.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629|사진 출처: 신라 사천왕과 조선 사천왕은 지물과 방위가 다르다]] 녹색 유약을 바른 가로 약 70 cm, 세로 약 90 cm, 두께 7-9 cm인 사각형 전돌에 [[사천왕]]상을 새겼는데, 반부조(半浮彫)이지만 가슴, 손, 무릎 등은 고부조(高浮彫)로 하여 입체적 형태를 강조했다. 신라시대 다른 사찰의 사천왕상들이 악귀를 밟고 서 있는 데 반하여, 이 유물들은 특이하게 악귀를 깔고 앉은 좌상의 형식을 취했다. 특히 사천왕이 왼손에 칼을 세워들고 잡귀 두 마리를 꿇어 앉혀 그 등에 앉은 모습은 조각적 기량이 뛰어나다. 또한 흠잡을 데 없는 사천왕의 정확한 신체표현과 정교한 무늬, 그리고 악귀의 사실적 표현은 생동감과 현실감을 잘 살려주었다. 이러한 조형 감각은 기존 삼국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완벽한 기법이라고 평가받는다. == 의문점 == * 이 글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3044511|동아일보: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조각 한쪽 한쪽 맞추자…‘신라의 미켈란젤로’ 걸작이 생생]]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1976635|한겨레: 사천왕사터 ‘수호신상’ 수수께끼를 풀어라]], [[https://blog.naver.com/ohyh45/220897655782|사천왕사지 녹유신장벽전(四天王寺址 綠油神將壁塼)]] 등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이 유물들이 [[사천왕]]을 새긴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우선 이 녹유신장상은 일반적인 사천왕 조형물과 달리 네 가지 상이 아니다. 단지 사천왕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세 가지 상일 뿐이다. 머리에 우아한 보관을 쓴 A상, 화려한 투구를 쓴 채 [[화살]]을 든 정면의 B상, 옆이 말린 투구를 쓴 채 [[칼]]을 들고 반가부좌 자세로 앉은 C상 순서대로 탑 기단부 한 면마다 2번씩 되풀이하여 붙인 형태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기단부 한 면마다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녹유신장상 6개를 A-B-C, A-B-C 순으로 배치했다. 따라서 탑 하나의 기단부 사면에 붙은 신장상은 모두 24개이고, 동탑과 서탑을 합쳐 총 48개이다. 지금까지 불탑에서 사천왕상은 1좌, 또는 혹은 4좌를 배치함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사천왕사지 녹유신장상의 배치는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문명대 [[동국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일부 미술사학자는 이것이 사천왕이 아니라 [[팔부신중]]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서 이 상들을 팔부중(八部衆)이라고 기록했고[[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321&cid=42649&categoryId=42649|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 녹유사천왕상전]][* 링크에 따르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 유물이 사천왕상이 맞고 삼국유사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 하고 있다.] 양지(良志) 스님이 남긴 다른 불교조각 중, 천왕사(天王寺) 탑 하단에도 팔부신장(八部神將)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현재까지 확인된 녹유사천왕상을 적어도 신라 당대에는 팔부신중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미술사학을 전공한 [[경주대학교]] 임영애 교수는 '이 녹유전 상은 사천왕이 아니고, 그렇다고 팔부신중도 아닌 신왕(神王)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이것이 사천왕이라면 북방을 관장하는 사천왕은 반드시 손에 [[탑]]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은 없다. [[활]]이나 [[화살]]을 든 모습을 보고 사천왕상이라는 근거로 들기도 하지만, 이런 사천왕상이 등장하는 것은 9세기 이후로, 사천왕사는 그 전에 지어진 사찰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팔부신중이라면 신장의 수가 8개가 아니라 48점에 달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상 또한 8종류가 나와야 하는데 3종류밖에 없다.'면서, '각종 불교경전을 보아도 팔부신중은 8명이라 했지 그 외 숫자를 거론한 사례는 없다. 따라서 이 녹유전 상은 불법 전반을 수호하는 신왕(神王)'으로 보아야 하고, 이는 불설관정경과 같은 불교경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바깥고리 == * [[http://luckcrow.egloos.com/2434579|까마구둥지 : 한국의 사라진 대사찰(10) - 신라 사천왕사]]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321&cid=42649&categoryId=42649|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 녹유사천왕상전]]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