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신라의 공예]][[분류:화장실]]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1.jpg]]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2.jpg]] [목차] == 개요 == 2017년 9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8호 [[동궁과 월지]](옛 사적명 : [[안압지]]) 일대에서 출토한 7세기 경 [[신라]]시대의 수세식 [[화장실]] 유구. == 내용 == || [youtube(uuoLs1BEjuE)] || || [youtube(A1qlLMAo6D4)] || 1,300여년 전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로, 2017년 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운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다. 첫 조사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3만 여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부터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지금까지 대형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우물 등 동궁 관련 시설을 확인하였다. 이 수세식 화장실은 2017년에 발견한 것으로, 편의상 동궁에서 출토되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동궁 우측의 귀족 및 백성들 주거지역이었던, [[황룡사]] 역사문화관 주차장 도로 건너편 2차선 도로와 동해남부선 철도가 지나는 곳 바로 아래 가장 자리에서 발굴되었다.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7.jpg]]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8.jpg]] 돌을 깍아 만든 수로관이 여러대의 수세식 화장실 구멍들과 연결되어 지하 배수로로 내려가는 구조가 보인다. [[http://www.asia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50|사진 출처]] 이 신라시대 화장실은 화장실 건물 내에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까지 함께 발굴됐다. 초석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이다. 변기형 석조 구조물은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앉는 판석형 석조물과 그 밑으로 오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이며, 구조상 변기형 석조물을 통해 내려간 오물이 하부의 암거로 배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땅 밑과 위에는 수십미터에 달하는 거대하고 기다란 화강암 배수로가 있는데, 현재는 땅 위에 있는 일부 배수로만 확인되며 실제로는 그 밑에 엄청난 길이의 배수로가 존재한다. 일부 배수로는 이를 따라서 월지 내부로 이어져 있어, 당시 건축기술과 배수기술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9790668|뉴시스 : 좌변기에 배수시설까지?…동궁서 드러난 신라의 화장실]]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3.jpg]] [[http://blog.daum.net/kinhj4801/10259299|사진 출처 : 신라의 측간(화장실)돌]]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4.jpg]]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5.jpg]] [[https://ilsik.tistory.com/entry/동궁과-월지에서-수세식-화장실-발굴|사진 출처 : 불국사 화장실 주춧돌]] 이 [[동궁과 월지]] 외에도 [[불국사]]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라시대 수세식 화장실이 발견되어 7세기 경 당시 신라인들이 광범위하게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수세식 화장실들은 신라가 멸망한 후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는데, [[조선]] 후기에 서양인들이 수도 [[서울]]을 여행하며 쓴 글에 따르면 집집마다 [[요강]]을 이용했고 오물은 그냥 창밖으로 내버려 밟고 다녔다고 기록되어 있어 기술 전승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경주 동궁 출토 신라 화장실6.jpg]]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백제]] 30대 [[무왕]](600~641) 때 조성된 궁성 유적으로 추정되는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에서도 화장실이 발견된 적이 있다. 직사각형 형태의 구덩이 3기와 종이 대신 뒤를 닦을 때 사용한 반원형 나무 막대가 발견됐는데, 화장실에 쌓인 배설물이 일정량이 넘으면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길을 파놓았고, 구덩이 토양을 분석한 결과 [[회충]]·편충 등 [[기생충]] 알이 확인돼 화장실 유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따로 물을 사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아 [[재래식 화장실]]로 확인된 바가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21974776|#]] 동궁과 월지에서 발굴된 수세식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한국사]]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한국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http://www.gj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81|#]] 2018년 8월, 이 월지의 배수로 중 일부가 [[화재]] 대비용 소화전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421977|한겨레 : 신라 궁궐정원 굽이굽이 물길은 ‘소화전’이었네]]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소화전이다. 1,300여년 전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로, 당시 한국인들의 위생관념 및 일상생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