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황남대총 남분 은반지1.jpg]]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황남대총 북분 금반지]], [[황남대총 남분 은반지]]와 함께 전시된 모습. [목차] == 개요 == [[경주시]] 노서동 214-3번지에 위치한 노서동 138호분에서 발견된 7세기 [[통일신라]]시대 초기 [[금(원소)|금제]] [[반지]] 일괄.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노서동 138호분 금반지.jpg]]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황남대총 북분 금반지]], [[경주 율동 금반지]], [[경주 황오동 금반지]], [[경주 황오동 5호분 금반지]] 등과 함께 전시된 모습. [[http://www.dapsa.kr/blog/?p=25160|사진 출처 : [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신라인과 황금]] 1953년 6월 25일부터 7월 6일까지 김원룡이 1차 발굴한 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경주 노서동 138호분에서 출토된 7세기 경 신라시대 [[금반지(동음이의어)|금반지]]들이다. 노서동 138호분은 흔치 않은 신라의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축조 시기가 7세기 중엽 쯤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유물들도 대략 7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량의 경우 정확히 몇 개가 발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많은 수가 발굴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 당시 노서동 138호분에서는 [[경주 노서동 138호분 금귀걸이]]를 비롯한 금반지, 은반지, 금․은팔찌, 은제 과대(銀製 銙帶 : 은으로 만든 혁대), 은제 요패(銀製 腰佩 : 은으로 만든 띠드리개) 등의 수많은 장신구와 함께 청동제 용기, 각종 토기, 칠기 제품 등의 용기류와 철모 4개, 철촉 1개 등 무기류, 마구(馬具 : 말에 사용하는 기구) 및 각종 철기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신라]]는 삼국 중 유일하게 반지 문화가 성행하였던 국가로, [[고구려]]의 경우 안학궁지 제2호분에서 청동제 반지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유물이 많지 않고 형태도 조잡하며, [[백제]] 역시 각종 호화스러운 유물이 출토된 [[무령왕릉]]에서조차 반지는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521&cid=46671&categoryId=46671|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반지]] 두 국가 모두 반지 유물, 특히 금반지가 발견된 경우는 고구려는 총 2점, 백제는 공주읍 우금리 고분에서 단 1점이 나왔을 뿐이다. 반면에 신라는 고분을 하나 조사할 때마다 금반지들이 쏟아지는데, 특히 이 노서동 138호분 금반지들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경 한국의 반지 주조 기술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반지들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