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구정동 3호분 종장판갑1.jpg]] [목차] == 개요 == 1982년 2월,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역]] 주변에 위치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7081&cid=40942&categoryId=33545|구정동 고분군]](九政洞 古墳群)에서 발견된 3세기 말~4세기 초 [[신라]]시대의 [[한국 갑옷|종장판갑]] 2점. 2020년 현재 [[한국]]에서 발굴된 갑옷 중 가장 오래된 [[판갑]]으로 유명하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구정동 3호분 종장판갑2.jpg]] [[경상북도]] [[경주시]] 구정동 145번지 주변에 위치한 구정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물 중 하나로, 당시 2호 묘에서는 길이 80cm 안팎의 [[창(무기)|쇠창]] 26점이, 3호 묘에서는 [[창(무기)|쇠창]] 25점과 함께 이 종장판갑 2점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신라]]시대 와질토기와 경질토기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연구 결과 이 무덤군은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축조된 [[돌무지덧널무덤]]으로 확인되었고, 이 유물들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묻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판갑]]은 [[고대]] [[한반도]] 남부 지역의 지휘관들이 입던 갑옷으로, 고대 한반도의 [[전쟁]]이 보병 전투 위주의 시대였음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특히 종장판갑의 경우 이러한 판갑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형태로, [[고구려]], [[백제]], [[일본]], [[중국]] 등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고 [[영남]] 지역, 그 중에서도 [[경주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김해시]] 쪽에서만 출토되고 있어 가야와 신라만의 독자적인 갑옷으로 분류된다. 종장판갑의 역사는 고대 [[삼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진한]]과 [[변한]] 지역에서 사용하던 고유 [[화폐]]인 [[덩이쇠]](鐵鋌)의 출현과 함께 고안된 갑옷으로 주로 [[화살]]을 막는데 특화된 기능을 보였다. 이러한 덩이쇠는 단타(鍛打)에 의한 여러 겹 상태, 미세한 조직결정, 낮은 탄소함량 등의 특징을 보여 화폐 뿐만 아니라 종장판갑을 비롯한 철기제조를 위한 중간소재로서도 사용된 것이다. 학계에 보고된 최초의 철정 자료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토된 철편(鐵片)이며, 이러한 철정은 7세기말에 편찬된 [[일본서기]]에도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화폐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덩이쇠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발견된 수백여점의 판상철부로, 이미 기원전부터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고도의 철기 제작기술이 발달하고 이를 통해 화폐제작과 국제교역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덩이쇠들은 10장씩 묶음이 된 ‘10배수 매납’ 형태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일정한 형태와 규격성은 화폐 기능이 있었음을 암시하며, 당시 북방의 [[고조선]]에서 사용하던 [[중국]] [[연나라]]의 화폐인 [[명도전]]이 노끈으로 묶인채 발견되는 것과 같다. [[파일:경주 구정동 3호분 종장판갑3.jpg]] 경주 구정동에서 발견된 이 종장판갑들은 [[울산]]에서 발견된 중산리 판갑, [[부산]]에서 발견된 복천동 판갑, [[김해]]에서 발견된 양동리 판갑과 칠산동 판갑, [[합천]]에서 발견된 옥전 판갑과 함께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갑옷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며, 이 여섯 중에서도 제작연대가 가장 빠른 것으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철제 갑주이다. 3세기~4세기 무렵 [[영남]]지역의 제철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파일:경주 구정동 3호분 종장판갑4.jpg]]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복원한 [[삼국시대]] 갑옷들. 장식 면에서 조미료를 좀 많이 치긴 했지만(...) 어쨌든 [[신라]]의 갑옷이 다른 국가와는 달리 판갑 형태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어떻게 보면 고증 오류라고도 할 수 있는게 신라와 가야가 오랫동안 판갑을 사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의 주무대인 [[삼국통일전쟁]] 시기에는 신라도 결국 고구려, 백제처럼 [[찰갑]]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 판갑은 편의성이 찰갑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 바깥고리 == *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8/2018050803338.html|[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32] 산꼭대기에 묻힌 신라 최고(最古) 철갑옷]] * [[http://yokeru.egloos.com/823859|판갑의 출현 | 가야 철갑옷 1 | 종장판갑 | 縱長板甲]] * [[https://blog.naver.com/zolaman_k/220003408017|한국 고대 판갑 후동부에 장착된 부속에 대한 의문]]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갑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