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광주광역시의 자연지리)]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ordercolor=#1d3a5a><tablebgcolor=#1d3a5a> {{{#fff '''{{{+1 경양방죽}}}'''[br]景陽防築[* 한자음 그대로 읽으면 경양방'''축'''이지만, '방죽'으로 고유어가 되었다. 다만, 방축이건, 방죽이건 '''모두 둑이라는 의미'''이지 저수지라는 이름이 아니다. 둑을 막아서 만들어진 인공호라서 그냥 둑 이름이 호수 이름으로 굳어진 것.]}}} || ||<-2><bgcolor=#fff> [include(틀:지도,장소=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505-900,너비=360px,높이=320px)] || ||<width=80> {{{#fff '''위치'''}}} ||<bgcolor=#fff>[[광주광역시]] [[동구(광주광역시)|동구]] 계림동 일대 || || {{{#fff '''수심'''}}} ||<bgcolor=#fff>약 10m, 1차 매립 후 1~4m || || {{{#fff '''면적'''}}} ||<bgcolor=#fff>약 150,000㎡, 1차 매립 후 60,000㎡ || [목차] ||<tablebordercolor=#1d3a5a>{{{#!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gwangjuin.com/67634_11940_515.jpg|width=100%]]}}}|| || [[1946년]], 만수위가 된 경양방죽의 풍경.[* 이때 이미 3분의 2가 매립된 상황임에도 이런 풍경을 보여주었을 정도니...[[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634|#]]] || == 소개 == 경양방죽은 1960년대까지 현 [[광주광역시]] [[동구(광주)|동구]] [[계림동(광주)|계림동]](계림1동)에 있었던 [[저수지]]이다. == 역사 == ||<tablealign=center><#FFF>[[파일:광주_1910년대_지적.jpg]]|| || 1910년대 경양방죽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지도. [[http://greengj21.or.kr/contents/board/default/view.php?top_menu=board&menu=10&sub_menu=&bbs_uid=4231|출처]] || 1440년 [[조선]] [[세종(조선)|세종]] 22년에 광주목사로 부임한 김방이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3년의 공사기간을 들여 완공했다는 설,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되었고 조선 시대에 보수했다는 설이 있다. 규모는 대략 15 헥타르, 수심은 10m에 달했고 규모로 볼 때 호남 지역 최대의 인공호수였다. 경양방죽 안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있었고 호수의 주변으로는 수백년된 팽나무, 왕[[버드나무]], 귀목나무 고목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1940년대]]~[[5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시민들의 사랑받는 명소였는데,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모여들어 뱃놀이를 했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경양방죽 위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탔다고 한다. === 1차 매립 === > '''"장차 광주가 대도시로 발전할 때를 대비해서 경관이 수려한 풍치지구로 보전되어야 한다."''' >---- > -경양방죽 매립반대투쟁위원회의 매립 반대 이유 중에서. [[1935년]], 당시 [[전라남도]] [[도지사]]였던 야지마 스기조(矢島杉造)를 중심으로 매립 계획이 세워졌다. '일본건국기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계림초등학교 뒤에 있던 경호대라는 산을 헐고 일본인들의 거주구역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1936년]] 광주부는 공유수면 4만여 평의 매립을 허가한다. 당시 급격히 증가하던 인구를 수용하고, 공유수면매립을 통해 땅을 팔아 재원을 충당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주부민들은 이에 반대해 저명한 인사였던 최흥종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여 '경양방죽 매립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조선총독부]]에 청원을 하는 등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총독부는 이를 묵살했고 결국 매립이 강행되었다. 다만 여론을 의식했는지 본래의 전면 매립에서 계획이 변경되어 1/3은 호수로 남게 되었다. 매립 이후 1940년부터 2년간 매각이 진행되었고, 1941년에는 매립지에 부영주택을 건설하기도 했다. === 2차 매립 === [[8.15 광복]] 이후 광주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불과 5년 사이 8만([[1944년]])에서 14만([[1949년]]) 가까이 증가하여 남한 5대 도시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1950년대]]에 경양방죽은 늘어난 광주 인구로 인해 오염되어 저수지 기능을 상실했고 수질은 점점 악화되었다. [[1966년]], 광주시는 위와 같은 이유로 남은 경양방죽마저 매립을 결정했다. [[태봉산]]을 헐어 그 토사로 경양방죽을 매립했는데,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었다. 광주시는 시내의 중심도로인 금남로를 당시로선 파격적인 8차로로 확장하려고 했는데 정부는 '''[[광역시|광주같은 작은 도시에 왕복 8차로 도로가 가당키나 하나]]'''[* 이 때도 광주가 전라남도 도청이 소재한 전남의 중심도시 이기는 했지만 지금의 광주에 비해서는 인구나 여러 면에서 전국적으로 봤을 때는 작은 도시이긴 했다.]라면서 예산을 주지 않았다.[* 사실 1968년이면 한국에 8차선 이상 도로가 정말 드물긴 했다. 기껏해야 [[서울특별시|서울]] [[세종대로|세종로]]정도였는데 이 도로는 조선 건국 때부터 계획된 도로였다. 비슷한 규모의 도시였던 인천 역시 왕복 6차선 도로가 가장 넓은 도로였다. 1970년대 들어서야 넓은 도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968년 자동차 대수는 전국에 약 35,000대였고, 당시 광주 인구는 60만 명 정도였다. 당연히 정부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돈이 필요해진 광주시는 [[태봉산]]을 헐어 그 토사의 일부를 팔고 경양방죽을 매립해 만든 계림동 신시가지를 분양해 그 돈으로 금남로 확장공사를 했다. [[1968년]]의 일이다. ||<tablealign=center><#FFF>[[파일:gybj.jpg]]|| || {{{#07F ■}}}-1930년대 1차 매립, {{{#00F ■}}}-1960년대 2차 매립 || === 현재의 모습 === 경양방죽은 사라졌지만 골목길 구획으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계천로6번길---동계천로5번길--[* 현재 아파트 공사로 도로가 사라졌다.]-무등로306번길-무등로307번길 라인이 원래 경양방죽의 서쪽 경계, 경양로217번길과 중흥로209번길을 반달 모양으로 잇는 골목길 라인이 1960년대 매립 직전 경양방죽의 동쪽 경계였다. 이 길들은 2011년에 '''경양방죽 둑방길'''(일명 '개미길')이라는 산책길로 조성되었다. 경양방죽이 메워진 자리에는 1969년 시청을 지어 이전하였다.[* 최초의 시청은 광산동(서남동)에 있었다. 흔히 '구시청'이라 불리는 곳.] 2004년에 다시 [[상무지구]]로 이전해 건물은 빈 상태가 되었다가 철거되었고 지금은 [[홈플러스]] 계림점이 들어서 있다. 사라진 것이 상당히 아쉬운 명소로, 오늘날까지 남아있었다면 시내 중심부에 거대한 [[호수]]가 있는 도시로 널리 유명해졌을 테지만 이제 와서 복구하는 것도 무리라서 결국 추억의 명소로만 남게 되었다. == 여담 == * 계림동에 있었던 [[유은학원]]에 속한 학교들의 교가에 경양호가 등장한다. --사실 4개 학교 모두 가사가 똑같고 중간에 광주동성, 광주여상, 동성여중으로 바꿔부른다-- == 참고문헌 == * 박선홍, 「광주 1백년」, 심미안, 2012. * 광주일보,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337094000467949188|1930년대 물길 덮어 도로·주거지로 … 개발에 묻힌 '물의 도시']] * 광주드림,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73895|경양방죽이 간직한 비밀]] * 광주광역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http://greengj21.or.kr/contents/board/default/view.php?top_menu=board&menu=10&sub_menu=&bbs_uid=4575|경양방죽 이야기]] * 한국시민기자협회, [[http://www.civilreport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43|광주이야기-경양방죽]] [[분류:사라진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