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복궁)] [목차] ||<table width=700>[[파일:경복궁 함화당.png|width=100%]]|| || 함화당 외경 || || [[파일:경복궁 집경당.png|width=100%]]|| || 집경당 외경 || == 소개 == {{{+1 景福宮 咸和堂 · 緝敬堂}}} [[경복궁]]의 건물이다. [[경복궁 흥복전|흥복전]]의 북쪽, [[경복궁 향원정|향원정]]의 남쪽에 있다. 서로 별개의 건물이나 [[복도]]로 이어져있다. 그리고 한 권역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도 두 건물을 함께 다룬다. == 역사 == [[1860년대]]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다. 그러다 1890년([[고종(대한제국)|고종]] 27년)에 옛 춘희당과 보광당 자리에 새로 지은 것이 함화당과 집경당이다.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의 [[전각]]이 대부분 헐렸을 때도 함화당과 집경당은 살아남았다. 일제는 전각 주변의 행각과 문을 헐었고,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24년에는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이곳에 조선민족박물관을 개설하여 [[유물]]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 [[2000년대]] 후반에 [[건물]] [[수리]] 및 행각 [[복원]]을 하여 오늘에 이른다. == 용도 == === 함화당 === [[후궁]] 권역에 있어 후궁들의 처소였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2007년 함화당 수리 도중 상량문을 발견하여[[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l4J4kiZxBjxzwnqjX49i9T7gwvGbS7OXhuXfBSos1ijb1wQfya3QGXtGnLLdNa43.cha-was02_servlet_engine1?nttId=5444&bbsId=BBSMSTR_1008&pageUnit=10&searchtitle=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 정확한 용도를 확인하였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침전으로 지은 것이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함화당(咸和堂)|#]] 함화당 · 집경당 일대는 당시 [[고종(대한제국)|고종]]이 머물던 [[건청궁]]과 가까웠다. 왕의 침전을 [[후궁]] 영역에 굳이 지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함화당과 집경당은 후궁 권역보다는 건청궁과 하나로 묶이는 공간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함화당을 [[신하]]들을 만나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1892년(고종 29년)부터는 외국 공사 접견소로도 활용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2908001_001|#]][[http://sillok.history.go.kr/id/kza_13106021_003|#]] === 집경당 === 집경당은 주로 [[신하]]들과 경서를 읽는 곳으로 활용하였다.[[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27_12A_18A_00360|#]][[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30_02A_17A_00190|#]][[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30_03A_10A_00350|#]] 그리고 건청궁 관문각을 서양식으로 다시 지을 때 그곳에 있던 [[글]]과 [[책]], [[그림]]을 잠시 이곳에 보관하기도 했다. 이 물품들은 1891년([[고종(대한제국)|고종]] 28년)에 왕실도서관 [[경복궁 집옥재|집옥재]]를 건립한 뒤 그곳으로 옮겼다. ==== 외국 공사를 접견한 집경당? ====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보면 [[외국]] [[공사]]들을 접견한 곳으로 집경당이 나온다.[[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29_07A_18A_00180&solrQ=query%E2%80%A0%EC%A7%91%EA%B2%BD%EB%8B%B9$solr_sortField%E2%80%A0$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ST_AA$solr_toalCount%E2%80%A022$solr_curPos%E2%80%A09$solr_solrId%E2%80%A0GS_ITKC_ST_Z0_A29_07A_18A_00180|#]][[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29_07A_25A_00570|#]][[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30_02A_08A_00350&solrQ=query%E2%80%A0%EC%A7%91%EA%B2%BD%EB%8B%B9$solr_sortField%E2%80%A0$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ST_AA$solr_toalCount%E2%80%A022$solr_curPos%E2%80%A014$solr_solrId%E2%80%A0BD_ITKC_ST_Z0_A30_02A_08A_00350|#]]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집경당의 한자는 ‘緝敬堂’인데 [[외교관]]들을 만났다는 기사에는 표기가 ‘集慶堂’인 것이다. [[경희궁 회상전#s-4.1|‘集慶堂’ 한자를 쓰는 건물]]은 [[경희궁]]에 있었다. 침전 [[경희궁 회상전|회상전]]의 부속건물인데, 정황 상 [[고종(대한제국)|고종]]이 그곳에서 [[외국]] [[공사]]들을 만났을 리 없다. [[1860년대]]에 지은, [[경복궁]] 중건과정을 다룬 책인 《경복궁 영건일기》에는 [[경희궁]]에서 5채의 건물을 제외하고 전부 헐어와 자재로 썼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남은 건물들 중 집경당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를 보아 [[189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설령 남아있었다 해도 허허벌판이 되어 이미 다른 용도로 쓰고 있던[* 경희궁 터에 경작지로 만들고, [[뽕나무]] [[숲]]을 일군 뒤, [[창고]]와 양잠소까지 세웠다.] 옛 [[궁]]에 굳이 가서 [[외국]] [[공사]]를 접견할 일이 없다. 그리고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외교관들을 만난 날의 《승정원일기》 기록은, 항상 '상(임금)이 [[경복궁]]에 있었다.'로 시작한다.[[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grpId=&itemId=ST&gubun=book&depth=5&cate1=&cate2=&dataGubun=최종정보&dataId=ITKC_ST_Z0_A29_07A_18A_00020|#]][[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grpId=&itemId=ST&gubun=book&depth=5&cate1=&cate2=&dataGubun=최종정보&dataId=ITKC_ST_Z0_A29_07A_18A_00020|#]][[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grpId=&itemId=ST&gubun=book&depth=5&cate1=&cate2=&dataGubun=최종정보&dataId=ITKC_ST_Z0_A30_02A_08A_00020|#]] 그래서 저기서 말하는 집경당은 [[경희궁 회상전#s-4.1|경희궁 집경당]]이 아닌, 경복궁의 집경당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集慶堂’이 [[오타|오기]]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공사]]를 만난 [[기록]]들마다 표기가 일관되게 ‘集慶堂’인 점이 걸린다. 그렇다면 외교관들을 접견하기 위한 ‘集慶堂’이 따로 있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용도에 따라 같은 건물의 [[한자]] 표기를 다르게 했던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 특징 == * 두 건물 및 행각과 문, 담의 자세한 구조는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84143043&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5&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5|이 포스팅]]을 참조. 굉장히 정리가 잘 되어있다. == 여담 == * 1897년([[광무]] 원년)에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지은 [[명성황후]] 지문(誌文)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4년(고종 30년) 6월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할 때 함화당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고 있었다. 고종이 명성황후와 [[순종(대한제국)|왕세자]]에게 잠시 건청궁으로 피하라고 권유해서 명성황후는 잠시 피신했지만 곧 되돌아와 함화당에 머물며 사람들을 안심시키겠다고 했다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11022_002|#]] * 2000년대 후반에 복원하기 전에는 건물 뒷편과 향원지 사이에 [[매점]]이 있어 [[관광객|관람객]]들이 쉬어가는 공간으로 기능했었다. * 경복궁 별빛야행의 코스 중 하나이다. 이 때 두 건물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 2010년부터 매년 설 연휴에 함화당과 집경당에서 ‘온돌방 체험 및 세배 드리기 행사’가 열린다. 이 때 실제로 아궁이에 불을 피우기 때문에 말그대로 전통 [[온돌]]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https://www.ytn.co.kr/_ln/0106_201002061153013623|#]][[https://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20124_0005766152|#]][[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16020400032|#]][[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90203000086|#]] * 2016년 4월 ~ 5월에 열린 궁중문화축전의 프로그램 중 궁중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고궁문화체험’의 공간으로 쓰였다.[[http://thekoreanews.com/detail.php?number=27394|#]] || [youtube(o28GsaRtw1k)] || * 2011년부터 [[문화재청]]은 함화당과 집경당을 소규모 회의장이나 교육장으로 쓸 수 있게 [[기업]]이나 [[단체]] 등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단, [[문화재]] 보존 및 관리에 영향이 없고 [[궁궐]]의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이다. 2011년에는 9월 ~ 10월, 2012년에는 5월 ~ 10월에 개방했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4월 ~ 10월에 개방한다. 사용료는 첫 1시간은 50만원, 추가 1시간 당 25만원이다. 경복궁 입장료는 별개로 내야한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041676|#]] 자세한 내용은 [[http://www.cha.go.kr/multiBbz/selectMultiBbzView.do?id=17815&no=24475&bbzId=newpublic&pageIndex=1&pageUnit=10&strWhere=title&searchWrd=%ed%95%a8%ed%99%94%eb%8b%b9&sdate=&edate=&mn=NS_01_01|이 곳]]을 참조. 2019년부터는 다자녀 부모[* 만 13세 이하 막내 포함, 자녀가 2인 이상인 부모.]의 경우 사용료가 50% 감면된다.[[https://newsis.com/view/?id=NISX20190404_0000609570&cID=10701&pID=10700|#]] == 매체에서 == * [[KBS 2TV]] [[드라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나온다. 초반에는 [[창덕궁 낙선재]]로, 중 · 후반에는 [[창덕궁 선원전|선원전]]으로 나온다. [[분류: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