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복궁)] [목차] ||<table width=662>[[파일:external/dunggu.com/gyeongbokgung11_1.jpg|width=100%]]|| || 집옥재 || == 소개 == {{{+1 景福宮 集玉齋}}} [[경복궁]]에 있는 [[중국]] [[양식]]의 [[전각]]이다. [[어진]]과 [[도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경복궁의 북문인 [[경복궁 신무문|신무문]]의 동남쪽, [[경복궁/건축물#s-.3.6|경복궁 건청궁]]의 서쪽에 있다.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있다. 서쪽에 팔우정, 가운데에 집옥재 본채, 그리고 동쪽에 협길당이 있으며, [[전각]]끼리 [[복도]]로 연결되어있다. [[중국]] 풍인 집옥재와 달리 팔우정과 협길당은 전통 한국 양식이다. 이름은 ‘[[옥]](玉)과 같이 귀한 [[보배]]를 모은다(集)’는 뜻이다. [[현판]]은 [[중국]] [[북송]]의 유명한 서예가였던 미불의 글씨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 역사 == 원래 [[창덕궁 수정전|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다.[* [[덕수궁 함녕전]]과는 이름만 같은 별개의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창덕궁 수정전|수정전]]이었는데 1881년([[고종(대한제국)|고종]] 18년)에 함녕전으로 고쳤다.] 1891년([[고종(대한제국)|고종]] 2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이곳을 [[어진]]을 모시고, [[책]]을 보관하며,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서양]] 문물과 관련된 책을 [[청나라]]에서 대량으로 구입했는데, 대부분을 집옥재에 비치했다. 1896년([[건양]] 원년) [[아관파천]]으로 [[고종(대한제국)|고종]]과 [[왕실]]이 [[경복궁]]을 떠나자 집옥재는 빈 건물이 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이 이 일대에 주둔하면서 한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1996년에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이 부대 이전을 한 뒤 [[복원]], [[수리]] 작업을 거쳐 2006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어 오늘에 이른다. == 구조 == *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88885124&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4&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4|이 포스팅]]을 참조. == 부속 건물 == === 팔우정 === ||<table width=662>[[파일:경복궁 팔우정.png|width=100%]]|| || 팔우정 || {{{+1 景福宮 八隅亭}}} 역사는 집옥재와 같다. 서책을 보관하던 곳이다. 건물의 특징은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88885124&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4&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4|이 포스팅]]을 참조. === 협길당 === ||<table width=662>[[파일:경복궁 협길당.png|width=100%]]|| || 협길당 || {{{+1 景福宮 協吉堂}}} 역사는 집옥재와 같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이 휴식을 취하며 머물던 곳이다. 건물의 특징은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888885124&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4&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4|이 포스팅]]을 참조. == 여담 == * 집옥재에서 보관했었던 [[도서]]들에 대한 [[책]]으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 중인 《집옥재서목(集玉齋書目)》과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집옥재목록외서책》이 있다. 집옥재에 있던 도서 목록은 [[경술국치]] 이후 《집옥재서적조사기》로 다시 정리되었다. 1915년에 집옥재 도서의 대부분은 [[조선총독부]] 소유로 넘어갔다. 이후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에 있었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보관 중이다. 저 때 조선총독부가 아닌 이왕직으로 넘어간 도서들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 중이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집옥재(集玉齋)|#]] === 집옥재 작은도서관 === ||<table width=662>[[파일:집옥재 도서관 내부.png|width=100%]]|| || 집옥재 도서관 내부 || 2016년 4월 27일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은 집옥재의 실내를 작은도서관으로 꾸며 일반에 개방하였다. [[조선시대]]의 [[역사]], [[인물]], [[문화]] 등과 관련한 [[도서]] 1000여 권과 왕실 자료 영인본 350여권, 그리고 한국문학 책 번역본 230여 권이 비치되어 있다. 대청 양쪽에 있는 [[방]]에 [[책상]]과 [[의자]]를 두어 편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팔우정은 궁중 [[차|다]][[과자|과]]와 [[책]]을 파는 북카페로 활용되고 협길당은 열람실로 개방된다. 북카페의 운영 주체는 한국문화재재단이다.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경복궁]] 개관 시간대(오전 9시 ~ 오후 5시 30분)에 한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정기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왕실문화강좌도 열고 있다. 신청은 [[http://www.royalpalace.go.kr/content/guide/guide21.asp|경복궁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하면 된다. [[분류: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