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복궁)]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bf14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ffd400 '''경복궁 관련 틀'''}}}}}} || ||<bgcolor=#fff,#1f202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조선의 5대 궁)] ----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bg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30&height=30]] '''[[대한민국의 사적#s-2|{{{#fff 대한민국의 사적}}}]]''' || ||<width=30%> 116호 ||<|2> ← ||<width=30%> '''117호''' ||<|2> → ||<width=30%> 118호 || || [[해미읍성|서산 해미읍성]] || '''경복궁''' || [[진주성]] || ---- [include(틀:아관파천)] ---- }}} || ----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315288><table bgcolor=#fff,#1f2023>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 ||<-2><colbgcolor=#315288> {{{#fff {{{+1 '''경복궁'''}}}[br]{{{-1 景福宮 | Gyeongbokgung}}}}}}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Gyeongbokgung palace, 너비=100%, 높이=200px)]}}} || ||<width=90>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서울)|사직로]] 161 ([[세종로]])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 || '''{{{#fff 면적}}}''' || 432,703㎡ || || '''{{{#fff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 '''{{{#fff 축조시기}}}''' || [[조선시대]], 1395년 || || '''{{{#fff 링크}}}''' || [[http://www.royalpalace.go.kr/|공식 홈페이지]]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hulsa.kr/1ce2d1dc327f2490183f3837dc6c2f83.jpg|width=100%]]}}}|| || 경복궁 전경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yeongbokgung_map.jpg|width=100%]]}}}|| || 북궐도, 혜촌 김학수, [[1975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include(틀:영상 정렬, url=TKLdb8Q9rZ8)]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짓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시옵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옵니다.''' >---- > [[정도전]],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8권, [[태조(조선)|태조]] 4년 10월 7일 정유 2번째기사 中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조선의 궁궐|궁궐]] 중 하나이자 조선의 정궁, 법궁이다.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서울)|사직로]] 161 ([[세종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일대] 소재. [[태조(조선)|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 천도하기 전에는 [[개성특급시|개성]] [[수창궁]]에서 기거했고, 천도한 뒤 경복궁이 다 지어지기 전까지는 한양부 객사를 임시 궁궐로 사용했다.]하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어진 궁궐이다. == 경복궁의 이름 == 경복궁의 이름을 지은 이는 [[정도전]]이다. <[[시경]]> 주아편의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끝의 景福을 딴 것으로 큰 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잔치 끝에 천자에게 바치는 노래였는데, 정도전은 연회 중 대취한 [[태조(조선)|태조]]가 "경은 이번에 새로 지은 궁궐의 이름을 지어서 우리 왕조가 만 대까지 빛나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자마자 즉석에서 일어나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으로 지었다고 한다.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경복궁의 주요 전각들의 이름도 모두 정도전이 붙였다.[* 고려의 궁궐은 이름이 없었다. 단지 본궐(本闕)로만 불리다가 나중에 그 터가 [[만월대]]로 불렸다.] 다만, 정도전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면서 정도전이 경복궁 건축의 실질적 책임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정도전이 경복궁에 개입한 것은 위치를 잡는 데 왈가왈부한 것과 건물에 이름 붙인 것뿐이다. == 건축자 == 경복궁 건설을 위해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이 설립되었고, 그 책임자로는 조선개국공신이었던 [[심덕부]]가 임명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경복궁 건축을 한 인물은 또 따로 있다. 바로 [[환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9310|김사행]](金師幸)이다. 김사행은 원래 고려인이었지만 [[원나라]] 환관으로 차출된다. 그런데 김사행이 원의 환관으로 있으면 있었던 곳이 원의 궁궐 수리를 담당했던 관청 전연사(典涓司)였다. 이후 김사행은 [[노국대장공주]]가 고려로 오면서 같이 고려 땅을 밟게 되는데, 이후 최고의 건축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환관을 총감독하는 판내시부사까지 올랐다. 이후 김사행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능의 건설을 주도했고, 이는 이후 조선왕릉의 기본이 된다. 경복궁 건설에 김사행이 차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구조 및 지리 == [[신진사대부]]가 계획한 궁궐이기 때문에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유교 이념을 반영하여 이전 왕조들의 궁궐에 비해 화려한 장식 없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다.[* 목재가 부족해 건축물의 규모가 작았다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현재의 경복궁은 과거의 경복궁과 차이가 있고 이전 국가들의 궁궐도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으며, 실질적 건축 책임자인 김사행이 원 황실 건축에서 배웠고 고려에서는 사원 건축 전문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당시 경복궁이 유교 이념을 얼마나 반영해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건축은 사원 건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원이 있다.] 조선 왕조의 원찰이었던 [[회암사]]는 구조가 경복궁과 상당히 유사하고, 초기에 경복궁에서 사용했다는 청기와도 회암사 터에서 발견된다. [[임진왜란]] 전 조선 전기 동안 조선 왕조의 법궁[* 법궁이 사무를 볼 수 없는 경우 역할을 이어받는 보조 궁궐 이궁, 궁 밖으로 나가서 기거할 행궁 등 여러 궁궐 중 왕이 평상시에 직접 사무를 보는 중심 궁궐이다.]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경복궁은 법궁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엄정한 기하학적 공간 분할, 반듯한 축선 상의 건물 배치, 정연한 대칭 구조로 설계되었다.[*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이궁인 [[창덕궁]](+[[창경궁]])과 양궐 체제를 갖췄는데, 임금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두 궁궐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그 자리만 출입이 금지된 채 200여년 동안 재건되지 못하다가 [[흥선대원군]]이 재건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참고로 흥선대원군이 지은 경복궁과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경복궁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다. [[세종(조선)|세종]]이 왕자 시절 2층에서 자다가 병이 났다는 등 다층 건물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띈다. 또한, 근정전에 청기와를 얹었다는 언급 등 차이점이 보이며,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 왕실에서 제작했다는 석가탄생도 등에서 묘사된 건축 양식을 통해 그 당시의 경복궁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대 규모 5,000칸까지 서서히 확장되었던 이전 건물과 다르게 흥선대원군은 단숨에 7,400칸짜리로 중건했다. 단숨에 1.5배 크기가 된 것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경복궁역]]이며, 5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안국역]]이나 [[광화문역]]에서도 걸어갈 수 있다. 경복궁 앞길에는 각종 관청이 있어 육조 거리라고 불렸으며, 이 길이 오늘날의 [[세종대로]]다.[* [[동(행정구역)|동]]의 이름도 [[세종로]]다.] 당대에도 국가의 중심 거리였기 때문에 육조 거리는 지금의 세종대로의 폭과 거의 같은 폭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세종대로 중앙에는 [[광화문광장]]이 있다. 주변에는 [[청와대]], [[헌법재판소]], [[정부서울청사]], [[주한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이 있으며, [[인사동(서울)|인사동]]거리도 경복궁에서 꽤 가깝다. == [[경복궁/역사|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경복궁/역사)] == [[경복궁/건축물|건축물]]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경복궁/건축물)] == [[경복궁/관람|관람]]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경복궁/관람)] == 기타 == * 2018년 2월 7일, 서울역사박물관은 2016년 공개구입 후 보존처리를 완료한 '경복궁도'를 최초 공개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경복궁내 건물(전각)들의 배치 모습을 그린 족자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35178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의 경복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는 경복궁도(국립중앙도서관), 경복궁전도(삼성출판박물관), 경복궁지도(장서각), 조선국왕성지도(일본 와카야마 시립박물관) 등이 있다. * 경복궁 재건에 기원을 둔 경기 민요인 경복궁타령이 있다. 합창을 위해 편곡된 것도 있다. * [[자금성]] 내에 경복궁이라는 이름의 전각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한자까지 똑같다. 자금성 내 동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http://blog.daum.net/dk-choi/7275193|관련 포스팅]] * [[파일:external/images.wikia.com/Kof97koreabg.gif]] [[KOF 97]] [[한국 스테이지]]로 등장했다. * [[파일:attachment/경복궁/info.jpg]] 2012년 9월 20일에 [[Apple|애플]] 지도에서 '청화대'로 오기되었다. == 관련 문서 == * [[경복궁과 자금성의 비교]] * [[석가탄생도·석가출가도]] * [[의령남씨가전화첩]] * [[첩종]] [[분류: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