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일반적으로, 단체전으로 진행되는 [[택견]]을 의미한다. 택견이라는 기예가 [[개인]]에게 국한된 특정한 기예를 의미한다면 결련택견은 그 택견을 하는 방식이 단체전으로 승부를 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체전이며 이긴 사람이 질 때까지 계속 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으며 4~5번의 승리 후에는 들어가 쉴 수 있다는 구전이 있다.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된 택견에는 이것을 '결연택견' 이라 하여 결연하게 하는 택견, 즉 싸움수까지 포함하는 택견이라고 소개하는데, 택견 주요 3단체 중 [[신한승]] 택견을 계승하는 한국택견협회를 제외한 나머지 두 단체, 즉 대한택견연맹과 [[결련택견협회]]는 이를 신한승의 [[착각]]으로 간주한다. 이들 단체에서 '결련(결연)택견=쌈수택견'설을 부정하는 근거는,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결련택견은 [[마을]]과 마을간, 갑동과 을동이 서로 편을 나눠 하는 택견인 단체전 택견 경기를 의미하며, [[대한택견회]](구 대한택견연맹)가 문화재 관리국에 직접 클레임을 넣어 결련택견은 결연하게 하는 택견이 아니라 [[사전(책)|사전]]에 나온대로 단체전 택견이 맞다는 답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 논란 == === 결련택견에 대한 신한승의 설명이 오류라는 주장에 대한 의문점 === 양 단체에서 "결련택견은 쌈수를 포함한 택견"이라는 신한승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결정적인 근거로 '대한택견협회 측이 문화재관리국에 문의해서 그것이 [[오류]]라는 답신을 받은 사실'을 드는 것부터가 상당히 의아한 면이 있다. 상식적으로 택견 용어에 대한 전문성은 택견 단체에 있지 [[정부]]의 [[문화재]] 담당 부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택견협회 측에서 그러한 문의를 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에게 신한승의 그러한 [[주장]]이 오류임을 밝힐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택견협회에서 [[송덕기]]의 음성을 녹취한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음은 택견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대한택견협회의 관련자들이 그러한 녹취 자료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라도 신한승의 저런 설과 완전히 모순되는 발언을 발견했다면 굳이 전문성도 없는 문화재관리국에 문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1985년에 이보형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 송덕기를 [[인터뷰]]한 영상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타난다. >이보형(이하 '이'): 그 다음에, 그 임호 [[선생님]]이 택견 하실 적에 그 당시 마을끼리 하는 거 말고, 또 이렇게 '''[[호신술]]로도 이 택견을 했는지요?''' >송덕기(이하 '송'): 예, '''그건 '결련택견'이라고 하지요.''' > >이: 예, 결련택견. 그러면 마을로서 이렇게 민속놀이로 하는 택견이 있고, 이제 결련택견으로, 호신술로 하는 택견이 있군요? >송: 예, 예, '''막 찹니다''', 이렇게. > >이: 예, 그러면 그 임호 선생님이 하는 거는 그 마을끼리 하는 것도 있고, 그 결련택견도 두 가지를 다 하셨나요? >송: 네. > >이: 그럼 이 결련택견은 주로 어느 분들이 많이 했나요? >송: 그거 [[중인]]들이죠. > >이: 네, 중인들 요새로 하면 그, 에… >송: [[깡패]]. > >이: [[무술]]을 하는 분들… >송: 깡패 짓이라고 하죠, 깡패. > >이: 무결(武訣)을 하는 분들이 주로 인제 했군요. >송: 예. > >이: 그 밖에 인제 그, 에… 그 [[별기군]]이라든가 이런 [[별순검]]과 같은, 이런 저… 무술을 하는 그런 관직 분들도 했습니까? >송: 했어요. > >이: 네, 에… 그러고요, 그러면 인제 그… 옛날에… 그 마을끼리 하는 거하고 또 무술로 하는 결련택견이 이 두 가지가 있었겠군요. 물론 송덕기의 이와 같은 증언에 대해 대한택견협회나 결련택견협회의 관련자들은, 그것이 인터뷰어의 유도에 의한 실언이라는 식으로 가치를 절하하지만, 그에 대한 근거는 전무하다. 게다가 당시 [[기자]]였던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명곤이 1977년에 작성한 택견 관련 기사에서도, 아래대의 택견꾼이었던 김홍식이라는 [[노인]]이 송덕기와 비슷한 증언을 남긴 것이 확인된다. >김 홍식 노인은 세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도 스물 남짓한 젊은 시절에 태껸을 배웠다고 한다. 그때의 [[서울]]은 웃대와 아랫대가 엄격히 구별이 되어 있었고 문안과 문밖끼리도 구별이 엄했다고 하는데 웃대는 [[인왕산]] 아래 쪽 곧 [[경복궁|대궐]]에 가까운 쪽을 일컫는 말이었고 아랫대는 [[청계천]] 건너 쪽이며 문안은 서울을 둘러싼 성문의 안 쪽이고 문밖은 그 바깥 쪽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웃대는 주로 [[벼슬아치]]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세도가 대단해서 이것이 늘 불만인 아랫대 젊은이들이 가끔 웃대의 젊은이들에게 시비를 건네는 수가 있었다. 그러면 웃대에서는 태껸꾼들을 모아 아랫대에 시합을 청하게 되어 서로 시합을 벌이는데 보통으로 시합을 할 때에는 "서기 태껸"이라고 해서 먼저 넘어지는 사람이 지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지만 '''[[동네]] 사이의 [[감정]]이 나쁠 때에는 "결연 태껸"을 하는데 그것은 서로 겨루다가 사람이 죽게 되어도 살인죄로 치지 않는다는 서약 아래 행하여지는 무서운 [[싸움]]이라고 한다. 결연 태껸을 할 때에 쓰던 [[기술]]은 잘못 쓰면 위험하기 때문에 비법으로 전해져서 여간해서는 그 법을 배울 수 없었다고 한다.''' > > 김명곤, 「팽개쳐진 민중의 무술 태껸」, 『[[뿌리 깊은 나무#s-2]]』 통권 제19호(1977년 9월),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이처럼 송덕기, 김홍식 두 택견꾼이, 결련택견이라는 용어에 대해, 한 사람은 '호신술로써 익히는 택견'이라는, 다른 한 사람은 '과격한 형태의 택견'이라는, 일맥상통하는 증언을 남긴 것이다. 택견에 대해 잘 아는 두 사람이, 택견에 대한 동일한 오류를 우연히 반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한 문화재관리국에 소속된 그 누구도 저 두 사람보다 조선 말에 통용된 택견 용어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한승만 해도 송덕기에게 진득이 배우지 않아서 자신의 기술적 성취도는 높지 않았어도 어쨌든 전국의 택견—이나 그와 유사한 무술적 [[놀이]]—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던 사람이다. 그런 신한승의 말뜻 풀이가 조선 말에 택견을 실제로 해 본 두 사람의 증언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신한승의 ‘결련택견=쌈수택견’설은 착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한편 1930년대 출판된 [[조선어]] 사전에 그렇게 등재되어 있는 이상 결련택견에 ‘마을 간 대항전 형태의 택견’이라는 뜻이 있었음도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련택견은, 1. 마을 간 대항전 2. 무술성이 강한 택견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 조선 말의 마을 간 택견 대항전이라는 것이 흔히 상상하듯 친선을 도모하는 화기애애한 [[대동]]의 한마당이었던 것이 아니라 살벌한 싸움터에 가까웠으리라 본다면 그렇게 된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분류:택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