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학, rd1=게이오기주쿠대학)]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철도 회사, rd1=케이오 전철)] [include(틀:일본의 연호)] ||<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D60033><tablebgcolor=#fff,#1f2023> [[일본어]] ||[ruby(慶, ruby=けい)] [ruby(應, ruby=おう)] || || [[그레고리력]] ||[[1865년]] [[5월 1일]] ~ [[1868년]] [[10월 22일]] || || 이전 ||[[겐지(1864년)|겐지]] || || 다음 ||[[메이지 시대|메이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메이 덴노]]와 [[메이지 덴노]] 시절에 사용했던 연호. [[메이지]] 시대에 일세일원제가 확립되기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혁명개원(革命改元)'이라 하여 역학적으로 큰 변화의 기운이 일어나는 [[신유]]년과 [[갑자]]년에 연호를 바꾸어서, 반역의 기미를 차단하고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액땜을 하는[* 마치 압력솥으로 밥을 지을 때 솥이 폭발하지 않도록 증기를 빼주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주술적인 관습이 있었다. 1865년 역시 갑자년이라서 연호를 바꾸어야 했던 일본 조정은 신하들(실질적으로는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연호를 건의받아 그 중에서 채택했는데, 구와나 번 번주인 마쓰다이라 사다아키(松平定敬)가 올린 연호 후보 중에서는 간에이(乾永), 분류(文隆), 다이레키(大暦), 만토쿠(万徳), 게이오(慶応), 메이테이(明定), 덴세이(天政)가 있었고, [[공가]]인 다카쓰지 오사나가(高辻修長)가 올린 연호 후보로는 '''[[헤이세이]](平成)'''가 있었다. 이를 받은 당시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무엇으로 채택되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려(叡慮)하신 바와 같이 게이오(慶応)가 마땅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何以被採用所存無之候」「叡慮之通慶応可然被存候」]'라며 [[고메이 덴노]]의 의향을 전적으로 따를 것이라는 의향서를 조정에 바쳤다. 이로써 에도 시대 내내 관습적으로 막부가 건의해서 결정하던 연호제도는 끝을 고하게 되었고, 얼마 안 가 1868년 10월 23일에 메이지(明治)로 개원하면서 일세일원제가 시작된다. 해당 연호의 출전은 [[소명태자]]가 편집한 [[문선]](文選)의 다음 구절이다. >'''慶'''雲'''應'''輝,皇階授木。 >상서로운 구름이 응하여 밝게 빛나매, 황위는 [[전한|목덕(木德)]]에게 하사되었도다[* 고대 중국에서는 [[오행]]의 순서에 따라 천명이 이어진다고 여겼는데, 이를 '오덕종시설'이라고 한다. 선양의 경우에는 상생, 선양이 아닌 경우에는 상극으로 보았다. [[황제(중국 신화)|헌원황제]]는 토덕, [[하나라]]는 목극토의 목덕, [[은나라]]는 금극목의 금덕, [[주나라]]는 화극금의 화덕, [[진나라]]는 수극화의 수덕, 전한은 토극수의 토덕이었다가, [[한무제]] 때 상생설을 받아들이면서 수생목의 목덕이 전한을 상징하게 되었다.]. >---- >《문선(文選)》, [[https://zh.wikisource.org/wiki/%E6%BC%A2%E9%AB%98%E7%A5%96%E5%8A%9F%E8%87%A3%E9%A0%8C|한고조공신송(漢高祖功臣頌)]] 중에서 [[분류:일본의 연호]][[분류:에도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