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StickySableAlikeRose,합의사항1=경의선 분류를 추가하는 것)] ||<-3><tablealign=right><table width=360px><bgcolor=#ffffff,#191919> {{{+2 '''개풍역'''}}} || ||<-3> [include(틀:지도, 장소=개풍역, 너비=100%, 높이=250px)] || ||<-3><bgcolor=#c0c0c0,#3f3f3f> '''다국어 표기''' || || [[영어]] ||<-2> Kaep'ung || || [[한자]] ||<-2> 開豐 || || [[중국어]] ||<-2> 开丰 || || [[일본어]] ||<-2> ケプン || ||<-3><bgcolor=#c0c0c0,#3f3f3f> '''주소''' || ||<-3>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개풍동 || ||<-3><bgcolor=#c0c0c0,#3f3f3f> '''역 등급''' || ||<-3> 중간역[br](평양철도총국 관리) || ||<-3><bgcolor=#c0c0c0,#3f3f3f> '''운영 기관''' || || [[평부선]] ||<-2><bgcolor=#ffffff,#19191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파일:DPRK_railway_logo.png|width=200px]]]] || ||<-3><bgcolor=#c0c0c0,#3f3f3f> '''개업일''' || || [[경의선]] ||<-2> 1906년 4월 3일[* 1945년 8월 15일 ~ 1950년 6월까지 [[남한]] 소속, 1950년 ~ 1953년까지 [[6.25 전쟁]]으로 인한 영업 중단] || ||<-3><bgcolor=#c0c0c0,#3f3f3f> '''노선거리표''' || ||<width=34%><bgcolor=#ffffff,#191919> [[평양역|{{{#585858 {{{#!html<div style="font-size:13px">평양 방면</div>}}}}}}]][[려현역|려 현]][br]← 7.8 ㎞ ||<width=32%> '''[[평부선]]'''[br]개 풍 ||<width=34%><bgcolor=#ffffff,#191919> [[도라산역|{{{#585858 {{{#!html<div style="font-size:13px">도라산 방면</div>}}}}}}]][[개성역|개 성]][br]9.1 ㎞ → || {{{+1 開豐驛 / Kaep'ung Station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개풍동(광복 당시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에 위치한 [[평부선]]의 [[철도]]역. 역사 1동, 플랫폼 2개, 대형창고 3동, 구내선 5개와 기관차 방향 전환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 역 정보 == 1906년 개업 당시에는 '''토성역'''(土城驛)으로 개업했으나 1952년 12월에 개풍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북한]]에 있는 [[38선]] 이남에 있는 역의 마지막 역이다([[려현역]]부터는 38선 이북에 있다). 이 역에서 [[해주시]]로 가는 [[토해선]]이 분기했었다. 다만 토해선은 [[협궤]]이기 때문에[* 현재의 배천선은 표준궤로 바뀜] [[표준궤]]인 [[경의선]]과 호환이 안되므로 열차간의 이동은 불가능하며, 토해선을 타고 온 인원과 물자가 토성역에서 하차한 다음, 경의선에서 오는 열차에 타는 [[환승]]역 역할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분기역과는 다르다. 1995년쯤 발간된 <최신북한지도 부 중국주요지도부> 지도에서는 토해선 중 [[배천역]] ~ [[개풍역]] 구간이 끊어지고 [[배천역]]에서 [[은빛역]]을 연장하여 구 토해선의 대부분은 [[배천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게 일부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선로의 일부를 끊어 놓은 것은 [[한국전쟁]] 당시 북진 작전이 개시되자, 개성 북방의 험준한 산과 38선 일대에 미리 건설해놓은 진지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군의 잔여병력중 장비가 충실하고 조직적으로 훈련된 마지막 정예군이 UN군과 싸우면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것을 막고 있었는데, 미 제1기병사단의 제7기병연대가 [[토해선]]의 '''예성강철교'''가 멀쩡한 것을 보고 강행 돌파한 다음, 배천을 점령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경의선이 예성강을 건너는 지점인 '''한포리'''를 점령하는 바람에 북한군이 포위망에 걸려버렸고, 결국 포위망 안의 북한군이 [[T-34]] 전차같은 중장비를 몽땅 버리고 사람만 간신히 원산방면의 산악지대로 도망치는 바람에 더 이상 북한군은 조직적으로 UN군을 막을 수 없었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전혀 예상치 못한 다리 하나 때문에 망한 셈이며, 지금도 휴전선에서 해당 철교가 상당히 가까운 관계로 철교를 복구 시 재수 없으면 북한의 입장에서 앞서 말한 참극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으므로 일부러 복구하지 않은 것이다. [[평양역]] 기점 177.1km, [[개성역]] 기점 9.4km. [[분류:북한의 철도역]][[분류:1906년 개업한 철도역]][[분류:평부선]] [[분류:경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