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의 왕립 사찰)] [목차] == 개요 == [[파일:external/www.cha.go.kr/1661321.jpg]] 開泰寺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11[* 舊. 천호리 29-1]에 있는 사찰이다. 인근 [[개태사역]]이라는 역명의 유래가 된 절이기도 하다. 현재 존재하는 개태사와 처음 창건시의 개태사는 위치가 약간 다르며, 현 개태사는 구 개태사지 아래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반면 구 개태사지는 산자락에 위치한 전형적인 신라시대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개태사지는 충남도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어 있다. == 역사 == [[고려]] [[태조(고려)|태조 왕건]]이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한을 통일한 것을 기념(+덤으로 전몰 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http://younghwan12.tistory.com/3590|#]] [[http://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1748&categoryType=4&categorySeq=0|#]] 태조 19년([[936년]])부터 짓기 시작해 4년 만인 23년([[940년]]) 완성되었으며, 개태(開泰)라는 절 이름은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泰)를 열었다(開)''''는 뜻이다. 절이 완성된 뒤 절 뒤쪽의 산은 천호산(天護山)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완성된 해 12월에 낙성을 기념하는 법회가 있었는데, 이 법회에서 '''태조 왕건 자신이 직접 발원문을 지어올렸다'''고 한다. 이 발원문은 <동인지문사륙>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개태사가 위치한 곳은 천혜의 관문이라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물론 20세기에도 굽이굽이 돌아서 들어가야만 했던 천혜의 관문이다.~~ 태조 왕건 자신이 발원문을 지은 만큼 고려 왕조가 존재하던 내내 왕실의 존숭을 받았고, 태조 왕건의 어진이 절에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가 1199년 당시 동경(경주)과 명주(강릉)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봉기를 진압하기에 앞서 개태사를 찾고 태조의 어진 앞에서 반란을 진압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글을 올렸으며, [[공민왕]] 때에도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야 될지 말지를 개태사에 대신을 보내서 점을 치도록 했다고 한다.[* 개태사의 태조 어진에 대한 제사는 [[공양왕]] 3년(1391년), 그러니까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에도 있었다.] 지금은 개태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영정을 그려 봉안하고 있는데 이는 [[태조(고려)]] 항목 참조. 개태사가 몰락하게 된 원인은 우선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들 수 있다. [[우왕]] 2년([[1376년]]) [[부여]]로 해서 침범한 왜구가 [[공주]]에서 고려군을 패배시키고 개태사까지 밀고 올라왔고, 당시 양광도원수였던 박인계가 개태사 앞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싸움에서 그만 낙마해 죽기도 했다. 이때 개태사도 왜구에게 함락되어 절이 박살이 났다.[* 여담으로 유명한 [[최영]]의 [[홍산대첩]]이 이때의 전투와 관련이 있다. 박인계가 개태사 앞에서 왜구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최영이 "내가 가서 왜구를 막겠다"고 자청해 출정했고 홍산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 우왕 9년(1383년)과 14년(1388년)에도 왜구가 개태사에 주둔했었다.[* 출처: 고려사절요.] > 林回溪轉越橋矼 숲 사이 계곡을 돌고 돌아 돌다리를 건너니 > 罨戶花光暗似幢 문을 가린 꽃 그림자가 깃발처럼 어둑하네 > 過客問程登古砌 지나는 손은 길을 물으러 섬돌을 오르는데 > 居僧紉衲坐晴牕 머무는 중은 창 앞에 앉아 가사를 깁는구나 > 雲煙此日空遺跡 운연이 스쳐간 듯 오늘은 흔적만 남았지만 > 棟宇當時信少雙 큰 전각들은 당시에 참으로 둘도 없었다네 > 堪笑王公眞作俑 나쁜 전례 만든 왕공[* 고려 태조 왕건을 가리킨다.]이 참으로 가소로워라 > 幾多苗裔信紛哤 수많은 후손들이 그 얼마나 떠들어댔던고 > ---- > 성현(成俔, 1439년∼1504년), '개태사' <허백당시집> 권6[* 여담으로 '''불교에 너무 빠져서 나라 말아먹은''' [[암군]]의 대명사인(...) [[무제(양)|양 무제]]가 세운 절 이름에도 개태사가 있다 보니...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이걸로도 까댔다.] 또 고려 말 왜구의 침입 외에도 조선 중기 그 유명한 [[정여립의 난]]의 주동자로 알려진 [[정여립]]이 이 절에 왔다가 "손이 되어 남쪽 지방 노닌 지 오래인데/계룡산이 눈에 더욱 환하여라/무자ㆍ기축년에 형통한 운수 열리거니/태평 성세 이루는 것 무엇이 어려우랴"라는 시를 썼다고 하는 데서[* [[정감록]]으로 유명한 '''정도령의 도읍지가 다름 아닌 개태사 자리'''라고 했다...만 [[세종(조선)|세종]] 때에 연산현의 현청을 개태사로 옮기려는 계획이 있었다가 '''개태사 자리는 현청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이의가 있어서 중지되었기 때문에[[http://db.itkc.or.kr/dir/item?itemId=JT#/dir/node?dataId=ITKC_JT_D0_A20_05A_16A_00010&solrQ=query%E2%80%A0%EA%B0%9C%ED%83%9C%EC%82%AC$solr_sortField%E2%80%A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JT_BD$solr_toalCount%E2%80%A06$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JT_D0_A20_05A_16A_00010|#]] 한 고을의 관청 부지로도 못 쓴다고 여겨지던 곳에 정도령이 도읍을 정할 리가... 뭐 [[계룡산]]이 가깝기는 하지만.] 당연히 정여립이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뒤로는 역도들의 소굴로 여겨져 개태사가 몰락하는 원인이 된다. 현재 개태사 위치는 세종 10년(1428년)에 옮겨진 것이며, 건물들은 1934년에 김광영이라는 스님이 개태사를 중창할 때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으로 개태사가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유물은 개태사 삼존석불이라고 불리는 석불과 5층석탑이 있다. 현재 논산시에서는 논산 8경의 하나로 개태사를 지정해 관광 코스로 이용하고 있다. == 주요 유물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116412|개태사 탐방]] === 개태사 가마솥 === [[파일:external/www.heritagechannel.tv/11101811102673.jpg|width=500px]] 이 곳에는 [[크고 아름다운]] [[가마솥]]이 유명하다. 개태사의 가마솥은 '개태사 철확(鐵鑊)'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는데, 직경 289cm, 둘레 910cm, 높이 96㎝, 두께 3cm이다. 현지 전승에서는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죽은 영혼에게 '''이승에 있을 때 개태사 가마솥과 [[관촉사#s-3|관촉사 은진미륵]]을 봤느냐'''고 묻고 봤다고 하면 칭찬하고 못 봤다고 하면 살면서 그것도 한 번 안 보고 뭐 했냐며 버럭 화를 낸다고...~~먹고 사느라 바빴습니다~~ 일제 시대인 [[1935년]]에 시라이(白井)라는 일본인이 이 솥을 탐내서 일본으로 훔쳐가려고 부산항까지 가져갔는데 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솥이 사흘 밤낮을 큰 소리로 슬피 울기 시작했고, 겁에 질린 인부들이 말리는 데도 듣지 않고 솥을 화물선에 실으려던 시라이는 '''[[번개]]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 해 4월에 경성에서는 조선산업박람회가 있었는데 이 박람회장에 개태사 가마솥도 함께 전시되었고, 전시가 끝난 뒤에도 문화재로써 그대로 경성박물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국적인 가뭄으로 모든 농작물이 말라 죽어가자 주민들은 개태사 가마솥을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니 가마솥을 원래 위치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열차편으로 [[연산역(호남선)|연산역]]까지 가져오자 비가 쏟아져 그 해는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연산공원(連山公園)에 옮겨 놓았으며, 1981년 6월 충남문화재위원회가 이 가마솥을 옛 절터로 옮겨도 좋다고 승인, 연산리 주민대표와 신도대표의 원칙 합의하에 1981년 8월 22일 솥은 개태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http://www.victor.or.kr/kor/sn_news/2014/01/657-2.htm|#]]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개태사 철확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 금동탑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금동탑)]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개태사역, version=87)] [[분류:대한불교조계종 말사]] [[분류: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