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정치범수용소)]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0000><tablewidth=400><tablebgcolor=#ffffff,#191919><bgcolor=#000000> {{{#ffffff '''개천 수용소[br]价川 收容所 / 价川 第十四號 管理所[br]Gaecheon Internment Camp[* internment를 쓰는 이유는 개천교화소가 있기 때문이다.]'''}}}}}} || ||<:><-2>[include(틀:지도, 장소=개천 수용소, 높이=250px, 너비=100%)] || || '''정식 명칭''' ||14호 관리소 || || '''관할 집단''' ||북한 사회안전성 || || '''면적''' ||155㎢ (60제곱마일)[* 최근에는 수용소를 확장한다는 의혹이 있다.] || || '''위치'''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남도]] [[개천시]] 외동리 소재[br]대한민국 행정구역상: [[평안남도]] 개천군 봉동면 묵방산[* 광복 당시엔 고사산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동쪽 대동강 이북 일대[* 중리, 오봉리], [[덕천시|덕천군]] 잠상면 대동강 이북 전역(서학리 일대 제외) || || '''인근 교통편''' ||대동강을 따라 [[대건선]]이 통과하며 [[외동역]]이 설치되어 있음 || || '''수용 인원''' ||약 1만 5천 명 || || [[파일:개천 수용소_구글 어스.png|width=100%]] || {{{+1 价川 收容所 / 价川 第十四號 管理所 }}}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목차] == 개요 == 정식 명칭은 개천 정치범 수용소. 북한 내에서 불리는 정식 명칭은 제14호 관리소이다. 참고로 요덕 정치범 수용소의 정식 명칭은 제15호 관리소. 참고로 [[개천 교화소]]랑은 다른 곳으로 그곳은 1호 '''교화소'''이다. 이둘은 20km정도 떨어져 있다. == 상세 == 혁명화 구역이 존재하는 [[요덕 수용소]], [[북창 수용소]]와는 달리 이곳은 철저한 '''완전통제구역'''. '''석방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완전통제구역은 처음부터 '''수용자를 가둬두고 착취하다가 죽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나치나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와 동일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수감된 사람은 처음부터 짜낼 수 있을 때까지 짜낸 다음 죽도록 방치해두는 노예로 취급되며 이는 수감된 경우와 현지에서 태어난 경우 모두 동일하다] [[대건선]] [[외동역]] 인근에 있으며 [[대동강]]이 수용소 남쪽을 가로막고 산이 수용소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개천시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넓이 155㎢, 수용인원 1만 5천 명.[* 5만 명이란 설도 있는데 산악지대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무리가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Human_rights_in_North_Korea#Internment_camps_for_political_prisoners|출처]] 이 155㎢라는 면적이 '''서울특별시의 1/4'''이며 [[개천시]] 전체의 면적의 1/5 수준이기 때문에 사실 신뢰하기에는 충분히 무리가 갈 만한 수치지만 독일의 [[슈피겔]] 지에서 위성 사진으로 표시한 [[화성 수용소]]의 충격적인 넓이를 보면(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 이 넓이가 신뢰할 만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동강이 있기 때문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18호 수용소인 [[북창 수용소]]와는 직선거리상으로만 놓고 보면 불과 3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수용소의 분리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수용소 인근에서 대동강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대건선]]의 철교를 건너는 것 뿐이다. '''그쪽에도 [[북창 수용소|수용소]]가 하나 있다는 문제만 빼면'''.[* 북창 수용소의 경우 본래 완전통제구역으로 여겨졌으나 이곳에서 석방된 뒤 [[탈북]], [[한국]]에 온 김혜숙은 이곳이 혁명화구역이라고 주장한다. 완전통제구역일 경우 신동혁처럼 기적적인 탈출 또는 김씨일가의 아주 특별한 사면 조치 외에는 살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증언이 맞다면 석방되어 나온 만큼 혁명화구역이 아니라고 보기도 어렵다. 참고로 북창 수용소는 2013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해체되었다고 결론이 났지만, 2016년 다시 개장한 상태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포로]]가 된 미군이나 [[영국군]]도 이곳에 수용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지만[* 증언 당사자도 직접 보거나 이야기 한게 아니라 그냥 풍문으로 들은것] [[한국전쟁]] 당시 포로 관리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51년부터 포로 관리는 100% [[중국군]]에 이관되었다. 이미 20명 이상의 자발적 미송환자를 확보한 중국의 뜻을 어기고 북한이 임의로 수십년 동안 미국인 포로를 억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물론 한국전쟁 전후로 극동에서 격추된 후에 석연찮은 이유로 미귀환한 조종사들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억류되었다는 의혹과 증거가 있다.] 오히려 [[월북]] 미군이나 석연찮은 이유로 외국에서 실종 납치된 외국인이 여기에 들어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80년대 월북한 미군의 경우 다른 월북미군과는 달리 대외 활동도 없었으며 미국의 [[가족]]들에게 '''대동강에서 [[수영]]하다 죽었다'''는 통보와 함께 유해나 묘지사진도 없이 처리된 경우도 있는걸 보면... [[http://www.nkd.or.kr/news/story/view/475|출처]] 김용이 탈북에 성공한 후 인터뷰한 기사. 탈북 가수 [[김용(1960)|김용]]과는 동명이인이다. 단 그가 탈북에 성공한 것은 이곳과 대동강을 마주 보고 있는 18호 관리소로 이송된 덕분. 링크를 따라가면 여러 가지 충격적인 일화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처절한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체육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농구]] 선수가 있는데 아버지가 지주였던지라 이 수용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수용소의 참상은 [[정치범수용소/북한]] 항목에 나와 있으니 잘 알겠지만 먹을 것이 극도로 부족한데 이 농구 선수가 소 꼬리로 만든 [[채찍]]을 물에 삶아서 먹었다. 그러자 열 받은 감시관이 죽도록 매질하고 변소에서 [[회충]]을 억지로 먹인 것. 결국 그는 3일 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신동혁]]이 쓴 <북한 정치범 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책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동혁]] 항목에 보충된 것처럼 신동혁은 실제로는 개천 수용소 인근이지만 덜 가혹한 [[북창 수용소]](18호 관리소)에 수감되었었으며, 개천 수용소에 대한 그의 증언 일부가 심하게 과장되었음을 본인이 시인하였다. 이후로도 14호 수용소 출신이라고 했다가 다시 18호 수용소 출신이라고 하는 등 주장이 계속 바뀌고,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인해 거짓말이 여럿 드러나면서 현재로서는 거의 신빙성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는 칼럼에서 그가 일반적인 수감자가 아니라 해제민 출신으로 보았다[* [[http://news.donga.com/3/all/20150127/69297930/1|#]]]. 해제민이란 형기를 다 살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계층을 말하는 것으로 일단 죄수가 아니기에 수감자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016년에 사격장과 양식장을 설치하는 등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했다.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0929044300014&mobile|#]] 영문 이름이 Internment Camp라고 되어 있는데 Intern에는 '인턴으로 일하다'라는 뜻과 '억류, 구금되다'라는 뜻이 있다.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 === 참고 링크 === * [[외동역]] * [[정치범수용소]] [[분류:정치범수용소/북한]][[분류:평안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