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국군기무사령관, 명칭=육군보안사령관)] [include(틀:한나라당 총재 및 대표)] [[파일:/image/032/2015/03/01/l_2015030201000103300009881_99_20150301234815.jpg|align=right&width=150]] 姜昌成 1927년 9월 1일~2006년 2월 14일 (향년 78세)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 생애 == 1927년 9월 1일 [[경기도]] 포천군(現 경기도 [[포천시]])에서 출생하였으며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인데 동기생들 중에는 [[김종필]], [[김형욱]], [[길재호]], [[오치성]], [[차규헌]][* [[후배]]인 전두환에게 빌붙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등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사람이 많았으나 그는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박정희]]의 신임을 받아 5사단장, [[중앙정보부]] 차장보, 육군보안사령관 등 군 내 요직을 거쳤으며 육군보안사령관 시절 [[김복동(1933)|김복동]]의 장성 진급 누락 계획을 알고 이를 막는데 기여하였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박정희의 명령으로 [[조윤형]], [[김상현(1935)|김상현]], [[이세규]], [[강근호]], [[이종남(1919)|이종남]], [[김경인]], [[김녹영]], [[김한수(1935)|김한수]], [[나석호]], [[홍영기(1918)|홍영기]], [[조연하]], [[최형우(정치인)|최형우]], [[류갑종]], [[박종률]] 등을 고문하는데 관여하였다. [include(틀:국군기무사령관, 명칭=보안사령관)] [[파일:attachment/kcs17.jpg|align=center&width=300]] 1973년 4월 육군보안사령관으로서 박정희의 명령에 의하여 [[윤필용 사건]]을 수사하게 되었다. 10월 유신 직후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각하(박정희)가 노쇠하였으니 물러나고 형님(이후락)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강창성은 처음에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윤필용을 살려 주려고 하였으나 박정희는 더욱 분노하였고 결국 윤필용과 주변 사람들을 수사하게 되었다. [[쿠데타]] 혐의가 나오지 않자 군무 이탈 등의 다른 죄를 적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노태우]] 등이 조직한 군부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하나회를 뿌리뽑으려고 하였으나 이것이 문제가 되어 1973년 8월 [[제3군관구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보안사령관 시절 그의 [[부관]]이었던 [[이준(군인)|이준]] [[소령]]도 하나회의 견제를 받아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때까지 주로 [[강원도]] 오지에서 근무했다.] 윤필용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인물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으며 1976년 예비역 [[소장(계급)|소장]]으로 예편하게 되었다. 예편 이후 해운항만청장을 역임했던 강창성은 1980년 3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초대로 국정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두환이 집권욕을 드러내자 "이번만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뽑은 민간 정치인에게 정부를 이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며 비판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전두환은 1980년 여름 강창성을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여 고문을 하고 나서 해운항만청장 시절 [[뇌물]] 수수 혐의를 씌워 [[징역]] 3년을 때린 뒤 [[서울남부교도소|영등포교도소]]에 보내 버렸다는 주장이 있다. 투옥 2년 동안 4번에 걸쳐 일반 재소자들과 함께 하루 4시간씩 [[교도소]]에서 실시한 재소자 특별순화교육(소위 [[삼청교육대]])으로 수난을 겪은 강창성은 [[체중]]이 70kg대에서 40kg대까지 빠진데다 [[당뇨병]]까지 얻었다고 한다. 출옥 이후 강창성은 [[일본]] 유학을 하고 잠시 [[명지대학교]] 교수가 되었다가 명지대학교 일본문제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군벌>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파일:external/image.pressian.com/10101025181154(1).jpg]] 오른쪽 끝이 강창성 의원. 왼쪽 끝은 [[노무현]]. 1992년 [[민주당(1991년)|민주당]] [[국회의원]](전국구 3번)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93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국정조사]]가 열리자 [[야당]]의 공격수로 활동했다. 국정조사 중 [[민주자유당]]의 [[권익현]] 국회의원(하나회 출신)은 강창성에게 "[[씨발|XX]].. 자기가 보안사령관 시절 나를 잡아넣을 때는 영장을 갖고 했어?"라며 욕설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권익현은 하나회의 대표적인 구성원일뿐더러 윤필용 사건 당시 윤필용 계열로 몰려 징역형을 선고받고 예편했기 때문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1100209104005&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9-11&officeId=00020&pageNo=4&printNo=22284&publishType=00010|權翊鉉의원 원색욕설]].]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이 민주당의 [[동교동]]계 국회의원들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으나 따라가지 않았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용산고등학교를 나온 인연으로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출마했으나 3위(21%)로 낙선했다.[* 당시 당선자인 신한국당 [[서정화(1933)|서정화]] 후보와 새정치국민회의 [[오유방]] 후보의 격차가 4%가 안됐으니 의도치 않게 신한국당 서정화 후보의 승리에 공헌한 바가 된다.] 1997년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민주당(1991년)|민주당]]이 1995년 말 개혁신당과 통합하여 만들어진 [[정당]]이다.]이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는데 이 때 권익현 국회의원과 한솥밥을 먹게 되어 험악한 분위기까지 가기도 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4번으로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는 당론에 따라 [[앰뷸런스]]를 타고와서 [[휠체어]] 신세로 [[탄핵]] 표결에 참석하였다. 2004년 제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로는 교도소 시절의 후유증 때문에 [[암]]과 당뇨병으로 고생하다 2006년 2월 [[별세]]하였다. 강창성은 [[6.25 전쟁]]에서 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로 본래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지만 '금고 2년 이상 선고받은 자'는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만들면서 1980년 [[신군부]]에게 탄압받는 과정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그도 국립묘지 안장이 부결되었다. 규정에 따르자면 비록 [[사면]]은 받았어도 [[실형]]을 선고받은 신군부 인사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탄압받은 강창성까지 대상이 된 셈이다. 2012년 재심의에서도 거부되었는데 정작 비슷한 시기에 죽은 하나회 출신의 [[안현태]] 前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경호실장]]은 같은 상황임에도 [[대전광역시|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575309|관련 기사]] == 대중매체에서 == * 1993년작 [[MBC]] 드라마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에서는 배우 [[서상익]]이 연기했다. * 1995년작 [[SBS]] 드라마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배우 겸 성우 [[이도련]]이 연기했다. * 1996년작 MBC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는 배우 겸 성우 [[조명남]]이 연기했다. 강창성이 윤필용 사건에 연루된 전두환을 보안사로 체포해서 하나회 명부를 내놓으라고 하면서 싸대기를 날리고 12.12 군사반란 때 입장이 바뀌어 보안사령관이 된 전두환이 착복 혐의를 뒤집어씌워 체포한 강창성에게 "아직도 하나회 명부가 필요합니까?"라며 싸대기를 더 세게 날리고 [[감옥]]에서 총을 맞는 장면이 강창성의 꿈으로 나온다. * 1998년작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배우 [[최동준]]이 연기했다. * 2005년작 MBC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이영후]]가 연기했다. 전두환과 대화 도중 그가 권력에 대한 야욕을 엿보이자 "[[박정희|박 대통령]]이 [[10.26 사건|왜 죽었는가?]] 총으로 흥한 자는 총으로 망하는 법이야! 자네도 박 대통령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어."라고 직언을 하였는데 강창성이 떠나자 전두환은 재떨이를 내던진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강창성을 고문한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로 보내버려!"라고 한 걸로 보아 원래 제작진은 강창성이 전두환의 보복으로 삼청교육대에 가게 되는 장면을 넣어 [[방송]]을 하려 했지만 아들 강규형 교수가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간 일은 없으며 교도소에서 ‘삼청교육’을 받은 사실만 있다"라고 밝히자 자구책으로 각색을 했다는 식의 자막만 넣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외압 우려로 결국 [[http://feidy.com/zeroboard/zboard.php?id=feidy&page=39&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F%20e%20i%20d%20y&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1&PHPSESSID=73a723c9f0b74b9fc96d7e7c48a7a621|편집했다.]] 하지만 연병장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이영후가 등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조교들이 항명한 사람을 패자 교육생들이 항명한 사람의 밥을 자신들이 먹으려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밥을 먹지 않고 정좌한채 착잡해 하는 이영후를 [[https://www.youtube.com/watch?v=HpI43vLQX70|볼 수 있다.]] == 기타 == * 아들이 [[강규형]] 명지대학교 [[http://record.mju.ac.kr/user/archives/index.action|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이다. 그의 주요 전공은 냉전사(Cold War History)인데 냉전사 연구의 대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의 제자이며 부친의 영향을 받았는지 [[우파]] 계열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시기 2015년 [[KBS]] 이사를 역임했는데 이사 시절 KBS는 단순한 오보를 넘어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29706|박근혜 정부의 폐해를 숨기려는 데에 공헌]]했다는 주장이 있으며 업무 추진비를 사적으로 쓰는 부정 행위 등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정부 임명 KBS 이사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의 총파업이 일어나자 노조원들과 갈등을 빚었으며 2017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에 해임안이 의결되면서 결국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서 해임되었다. * [[인터넷]]에서 강규형에 대해 검색해보면 '한나라당 의원 아들 병역 현황'이라는 제목으로 강규형이 체중 미달로 면제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 [[파병]]을 찬성했던 한나라당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돌던 명단이었는데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87031|이 기사]]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8월 26일에 나온 [[시사저널]]의 [[병풍]] 관련 기사에 각주 내용이 언급된다.[* 박노항·김도술 씨 등 병역 브로커들은 주로 군의관들을 통해 병역 면제 청탁을 해결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자 저울이 아니라 추를 매달아 사용하는 계측기로 체중을 측정했다. 브로커로부터 비밀리에 청탁받은 군의관은 신검 대상자의 체중을 5kg 가까이 부풀리거나 줄일 수 있었다. 아들이 체중 미달이나 초과로 병역을 면제받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강창성·신영균·유흥수·김덕룡 의원과 장영신 전 민주당 의원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년 전 강창성은 의원, 장성 자녀의 군면제에 대해 석연치 않다는 발언을 했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011021907421|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강창성(姜昌成) 의원은 2일 [[병무청]]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1월부터 8월 말까지 징병검사 병역 처분이 재검 이후 석연치 않게 변경된 건수는 23914건이며 이들 중 28026명이 현역 입영대상인 1·2·3급에서 보충역·제2국민역·면제로 변경됐다”면서 “당초 이들 중 1명도 없던 면제 대상자가 재검 후 544명으로 늘어나는 등 비리 의혹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 시절이었던 1994년 국정감사에서는 [[연예인]] 등의 병역 면제율이 일반인의 3배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40556_19434.html|링크]] 훗날 아들의 병역 면제 과정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것을 생각하면 [[내로남불]]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 [[16대 대선]] 당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의 아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에 강창성의 아들을 둘러싼 [[논란]]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회창 후보의 아들 이정연 씨를 둘러싼 의혹 또한 무혐의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자연히 사그러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병풍 사건]]과 [[이회창/일생]]을 참조할 것. == 선거 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 [[민주당(1991년)|민주당]] || - || '''당선 (3번)''' ||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구]]) ||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 24,023 (21.27%) || 낙선(3위) ||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 [[한나라당]] || - || '''당선 (4번)''' || || == 소속 정당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rowbgcolor=#808080> '''{{{#fff 소속}}}''' || '''{{{#fff 기간}}}''' || '''{{{#fff 비고}}}'''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987 - 1988 || 입당 || || [include(틀:무소속)] || 1988 - 1991 || 탈당 || || [include(틀:민주당(1990년))] || 1991 || 입당[br]정계 입문 ||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1991 - 1995 || 합당[*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 || || [include(틀:통합민주당(1995년))] || 1995 - 1997 || 합당[* [[개혁신당#s-1]]과 신설 합당] || || [include(틀:한나라당)] || 1997 - 2004 || 합당[*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 || || [include(틀:무소속)] || 2004 - 2006 || 탈당[br]정계 은퇴 || == 둘러보기 == [include(틀:제16대 국회의원/전국구)] [[분류:포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27년 출생]][[분류:2006년 사망]][[분류:제14대 국회의원]][[분류:제16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91년) 국회의원]][[분류:한나라당 국회의원]][[분류:한나라당 총재 및 대표]][[분류:군인 출신 정치인]][[분류:해운항만청장]][[분류:박정희 정부/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