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강일(姜日) || || 이명 ||강성구(姜星求) || || 생몰 ||[[1911년]] [[3월 25일]] ~ [[1974년]] [[1월 21일]] || ||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 || 사망지 ||[[충청남도]] [[부여군]] || || 추서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강일은 1911년 3월 25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6월 고향에서 군중과 함께 일본 학교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었지만 당시 15살이었기에 훈방 조치되었다. 이후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이에 호응하여 동조 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고 1930년 2월 유복윤(柳福允), [[노명우(1915)|노명우]](盧明愚) 등과 함께 항일격문을 제작하여 부여농업보습학교(扶餘農業補習學校)에 살포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31년, 강일은 비밀결사 대성당(大星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벌였지만 또다시 체포되어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1936년에 대성당 조직 재건을 시도하다 또다치 체포되어 1년간 구금되었다. 출옥 후 부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4년 1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부여군 출신 인물]][[분류:1911년 출생]][[분류:197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