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강순희(姜順熙) || || 이명 ||강대연(姜大淵) || || 본관 ||[[진주 강씨]] || || 생몰 ||[[1868년]] [[10월 3일]] ~ [[1929년]] [[9월 19일]] || || [[출생지]] ||[[충청도]] 제천현 읍내면 두학리[br](현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 || || 사망지 ||[[충청북도]] [[제천시|제천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강순희는 1868년 10월 3일 충청도 제천현 읍내면 두학리(현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충절과 기개가 있었다고 하며, 1895년에 [[을미사변]]이 벌어지고 [[단발령]]이 반포되자 이에 반감을 품고 [[유인석]]이 제천에서 일으킨 의병에 가담했다. 이후 유인석 의병대를 따라 종군하다가 고종이 의병 해산령을 내리자 자택에 돌아와 학문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그는 1906년 9월 정운경(鄭雲慶) 의병대에 가담했지만 정운경이 원주진위대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자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퇴위되고 [[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그는 [[이강년]] 의병대에 가담해 문필(文筆)에 관한 일을 맡았다. 이후로 그는 이강년 의진과 함께 종군하면서 문사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하는 한편 전투에 참여하고 보고들은 바를 기록했다. 이것이 후에 이강년 의병장의 문집인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강년이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교수형에 처해지자, 그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택에 은거하여 지내다가 1929년 9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순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진주 강씨]][[분류:제천시 출신 인물]][[분류:1868년 출생]][[분류:192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