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강석기.jpg|width=300px]] || || 성명 ||강석기(姜錫箕) || || 이명 ||강우(姜虞), 강호석(姜湖石) || || 생몰 ||[[1862년]] [[6월 29일]] ~ [[1931년]] [[2월 13일]] || ||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 || 사망지 ||[[충청남도]] [[부여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강석기는 1862년 6월 29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에 [[대종교]]에 입교했고 1914년 여름에 백두산 최고봉에 올라가 [[단군]]에게 제향(祭享)을 드리고 팔과 가슴을 칼로 긋고 그 피를 내서 글을 써 조국을 회복하기를 기도했다. 이후 1915년 7월에는 백두산 아래 내도산(內都山)에서 수도 및 선교하면서 <초홍호자동포문(招紅子同胞文)>, <조만동포동맹서(朝滿同胞同盟書)> 등을 지어 만주에 사는 한인들에게 배포해 단군을 섬기며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을 호소했다. 1918년 교주 다음의 최고위 직책인 사교(司敎)에 임명된 강석기는 1920년 서울에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고 유지들을 포섭해 대종교에 입교시켰으며, 다시 마니산 제천단, 구월산 삼성사 등 단군유적을 받들고 선교해 민족문화 선양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1931년 3월 13일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석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종교 신자]][[분류:부여군 출신 인물]][[분류:1862년 출생]][[분류:193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