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기)] [목차] == 키르기즈 고원에 위치했던 국가 == [include(틀:터키 민족의 역사)] 康居 Kangha, Kangju [[파일:880B2BA6-ACE5-4E8C-9207-C91F7B3C8AB7.png]] 중앙 아시아의 [[인도유럽어족]] 유목민족들이 세운 [[시르다리야 강]] 중류 지역에 건설한 나라. 시르다리야 강 유역에서 발견된 말 뼈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이들이 [[사르마트]]인처럼 중무장하고 싸웠으며, 대게 장두형에 턱이 발달하고 매부리코였음을 알 수 있다. > 강거는 [[페르가나]]에서 북서쪽으로 2천리 가량 되는 곳에 있다. 이는 유목 국가로 그 풍습이 [[월지]]의 풍습과 같다. 병사는 9만 명이며, 나라의 힘이 약해 남쪽의 월지와 동쪽의 흉노에 복속되어 있다. [[알란|엄채]]는 강거에서 북서쪽으로 2천 리 되는 곳에 있다. 이는 유목 국가로 그 풍속이 강거의 풍속과 같으며, 병사의 수가 10만을 넘는다. 근처에 큰 호수가 있으며 호안의 높이는 높지 않다. 후에 이들은 서진한 튀르크계 민족과 통혼하면서 캉글리, [[페체네그]]족의 기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 [[페체네그]]는 ‘캉가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모든 페체네그인을 이렇게 칭하지는 않는다. 세 지역, 즉 야브디이르티, 쿠아르치추르, 하북신길라 출신의 누구보다도 용맹스럽고 고결한 페체네그인만을 이렇게 부른다. 이것이 바로 캉가르라는 별칭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 - [[콘스탄티노스 7세]]의 기록 == [[후한]] 말기의 남[[흉노]] 선우 == [include(틀:역대 흉노 선우)] || '''[[왕호|칭호]]''' || 강거선우(羌渠單于) || || '''[[성씨|성]]''' || 난제(攣鞮) || || '''[[휘]]''' || 강거(羌渠) || || '''생몰기간''' || ???년 ~ 188년 || || '''재위기간''' || 179년 ~ 188년 || [[후한]] 말기 남[[흉노]]의 제18대 선우. [[어부라]], [[호주천]]의 아버지이자 [[거비]]의 형으로 후한서집해에 따르면 원굉의 한기에는 강심(羌深)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성은 난제(欒提). 178년에 [[호징]] 선우가 즉위할 때 우현왕이 되었으며, 179년에 호징 선우가 사흉노중랑장 장수와 반목했다가 장수에게 살해되자 선우가 되었다. 184년에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아들인 우현왕 [[어부라]]에게 군사를 이끌게 하여 황건적 진압을 도왔다. 187년에 중산태수였던 [[장순]]이 선비족을 이끌면서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여러 군을 공격했는데, [[영제]]가 군사를 일으켜 유주목 [[유우]]에게 배속해 토벌하게 하자 좌현왕을 보내 유주로 나가도록 했다. 188년에 흉노에서 끊임없이 한나라를 위해 군사를 동원할 것을 두려워 해 우부의 혜락에서 휴저각호, 백마동 등의 세력과 합세해 10만여 명으로 이뤄진 반란이 일어나 공격을 당해 죽임을 당했다. == [[후한]] 말의 인물 == 康巨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승려. 강거 사람으로 강신(康臣)으로 쓰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며, 고승전이나 출삼장기집 등에서 수록된 [[지루가참]]의 열전에 [[지요]], [[강맹상]] 등과 함께 짧게 수록되어 있다. [[영제]] 때부터 [[헌제]] 때까지 활동한 인물로 지요, 강맹상 등과 함께 슬기로운 배움이 있다고 이름이 나 낙양까지 알려졌다고 하며,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는 것에 마음을 두거나 법을 널리 펴는데 뜻을 두었다. 187년에 낙양에 와서 문지옥사경을 번역했는데, 말이 올바르고 이치가 있으면서 꾸미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한 문지옥사경은 현재는 남아있지 않으며, 이 문지옥사경은 [[주사행]]이 저술한 한록과 고승전에 잠깐 언급되기 때문에 한 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궐본이라는 것 이외에는 책 속에 어떠한 내용을 다루었는지 알 수 없다. === 관련 사료 === * 고승전 * 한글대장경 목록부 개원석교록 [각주] [[분류:동음이의어/ㄱ]] [[분류:선우]] [[분류:188년 사망]] [[분류:살해된 인물]] [[분류:서역의 승려]] [[분류:한나라/인물]] [[분류:중국의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