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정부)] [include(틀:김영삼)]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gcolor=#003990> '''{{{#fff [[제6공화국|{{{#fff 제6공화국}}}]][br]{{{+1 문민정부}}}[br]文民政府 | Civilian Government}}}''' || ||<-3><bgcolor=#fff,#1f2023> '''{{{#003990 [[1993년|{{{#003990 1993년}}}]] [[2월 25일|{{{#003990 2월 25일}}}]] ~ [[1998년|{{{#gray 1998년}}}]] [[2월 24일|{{{#gray 2월 24일}}}]]}}}''' || ||<-2><width=50%> '''{{{#fff 출범 이전}}}''' ||<width=50%> '''{{{#fff 이후}}}''' || ||<-2><rowbgcolor=#fff,#1f2023> '''[[노태우 정부|{{{#gray 노태우 정부}}}]]''' || '''[[국민의 정부|{{{#009A44 국민의 정부}}}]]''' || ||<width=25%> '''{{{#fff 대통령}}}''' ||<-2><colbgcolor=#fff,#1f2023>'''[[김영삼]]''' ,,,(14대),,,|| || '''[[국무총리/명단|{{{#fff 국무총리}}}]]''' ||<-2>'''[[황인성(1926)|황인성]]''' ,,,(1993.2.25~1993.12.16),,, [br]'''[[이회창]]''' ,,,(1993.12.17~1994.4.21),,, [br]'''[[이영덕]]''' ,,,(1994.4.30~1994.12.16),,, [br]'''[[이홍구(정치인)|이홍구]]''' ,,,(1994.12.17~1995.12.17),,, [br]'''[[이수성(정치인)|이수성]]''' ,,,(1995.12.18~1997.3.4),,, [br]'''[[고건]]''' ,,,(1997.3.5~1998.3.2),,, || || '''[[여당|{{{#fff 여당}}}]]''' ||<-2>'''[[민주자유당|{{{#003990 민주자유당}}}]]''' ,,,(1993.2~1996.2),,, [br]'''[[신한국당|{{{#003990 신한국당}}}]]''' ,,,(1996.2~1997.11),,, || [목차] [clearfix] == 개요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500><tablebordercolor=#003990><tablebgcolor=#f7f7f7,#1f2023>{{{#!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영삼 취임식 사진.png|width=100%]]}}}|| ||<bgcolor=#003990><color=#ffffff> {{{-1 '''▲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취임선서'''}}} || '''문민정부''' 또는 '''김영삼 정부'''는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삼]]이 이끌었던 정부이다. [[제6공화국]] 2기격인 정부로 1993년 2월 25일 자정 출범해 1998년 2월 25일 자정까지 5년간 존속하였다. 주요 슬로건은 신한국 창조, 국제화, 세계화.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집권 정부 중 하나이다. 문민정부에서 ''''[[문민]]''''의 뜻은 '일반 국민'으로,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재임기간이 짧았던 [[최규하]]는 제외. 다만 최규하도 결국 군사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유신체제]] 하에서 대통령에 올랐으므로 김영삼이 강조한 '문민정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32년간 이어진 군부 출신의 대통령이 아닌 '민간인 출신'에 의한 정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선 정권들과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 국정지표 == * 신한국 창조 * 깨끗한 정부 튼튼한 경제 * 건강한 사회 * 통일된 조국 == 출범 == 1992년 12월 당시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은 당시 경쟁상대였던 [[민주당(1991년)|민주당]]의 [[김대중]], [[통일국민당]]의 [[정주영]]과 대선경쟁을 벌이게 된 끝에 압도적인 승리로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3년 2월 [[서울특별시]] [[여의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32년 군사정권의 종식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청렴과 민생을 중시하며 국가안보에도 힘쓰는 정부를 표방하며 임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 임기 중의 일들 == 임기 첫해인 1993년에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여[* [[하나회]]를 숙청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의 개혁적인 태도는 집권 초반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게 만들어 주었다.] 정치자금 등 검은 돈이 거래되지 못하도록 하고 금융권에 새로운 방식을 불어넣었다. 또한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정부 각료들의 재산내역을 전면 공개하였으며, 정치자금 및 뇌물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표방하였다. 또한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여 공직자들의 윤리적인 행동 강화와 부정부패 척결[* 임기 초반 점심 식사를 국수로, 골프 안 치기 등의 조처를 내놓았고, 집권 첫날 [[청와대]] 집무실 내부 모퉁이에 있는 금고를 김영삼 대통령이 발견하고 어이없다 생각하여 기중기를 동원하여 금고를 떼어내라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강 바로잡기 등을 통해서 임기 초부터 공무개혁을 표방하였다. 또한 '[[역사바로세우기]]'를 실시하여, 이전 정부(특히 [[5공]] ~ [[6공]])에 가려져 있었던 정치사 및 과거사 문제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전면 재조사하고 [[하나회]] 숙청을 단행했으며, 그동안 [[광주광역시|광주직할시]] 주관으로 열렸던 5.18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격상시켜서 [[국가보훈처]]로 이관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 힘썼다. 또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을 정치자금,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대한 과거사 청산도 병행하여 [[1995년]] 2월에는 정부 차원에서 [[쇠말뚝]]을 대대적으로 뽑아냈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도시전설에 정부가 낚여 시행한 뻘짓. 일제는 풍수지리 자체를 전근대적 사상으로 간주해 아예 믿지도 않았다.], [[8월 15일]] [[경복궁]]에 남아있던 [[조선총독부]] 본청을 철거하였고 경복궁 복원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0.26 사건]]이 있었던 궁정동 안가를 철거하여 시민공원으로 개조하였다. 또한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전면 개방하여 국민들이 이 일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국민학교]]와 [[국민학생]]을 [[초등학교]]와 [[초등학생]]으로 개칭하고, 1914년 [[조선총독부]]가 단행한 [[부군면 통폐합]]의 잔재였던 도농(시군)분리 행정구역들을 통합하여 [[도농통합시]]들을 출범시키는 등 [[일본 제국|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데에도 힘썼다.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지방자치제]]도 본격 시행되었다. 또한 정부기구를 일부 축소 및 통합하여 기존의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하고 건설부와 교통부를 '''건설교통부'''로 통합하였으며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칭하여 정보통신 분야의 지위를 격상시키기도 하였다. 한편, 1993년 [[의약 분업]]을 처음 입안했는데 숱한 논란을 거쳐 다음 정부인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 시행된다(2000년). 국제대회 분야에서는 1993년 [[대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1997년에 열렸던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1996년에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유치하는 데에도 성공하였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유치에도 성공하였다. 그리고 1995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고, 이듬해인 1996년에 [[OECD]] 가입에도 성공하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파일:attachment/ys_clinton.jpg]] 외교적으로는 [[한미관계|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미국]]과의 외교안보적 혈맹관계를 이어나갔으나, 1994년에 북한 핵 문제로 전운이 감도는 긴박한 상황에서 오히려 엇박자가 나는 등 다소 혼선이 있기도 했었다. 한국은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입장인데 반해 미국은 영변 폭격을 시작으로 전쟁에 돌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었으니..... [[일본]]과의 관계는 아예 대놓고 안 좋았다. 광복 50주년 + 수교 30주년을 맞은 1995년 와타나베 전 외상, 시마무라 요시노부 문부상 등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과거사 및 [[위안부]] 관련 망언이 줄줄 나왔고, 심지어 김영삼 본인이 한중정상회담 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는 ~~명언~~극언을 공식 석상에서 내뱉었을 정도로 한일 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르렀다. 다만 [[일본사회당(1945년)|일본사회당]] 소속으로 총리에 오른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광복절]]을 맞아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으면서 어찌 회복되었다.[* 그러나 두 달 후 무라야마 총리도 "한일합방은 국제적으로 유효하다"며 망언했다가 11월 한일정상회담 때 결국 시인했다.] 그러나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자민당 내각 수립 후 독도 영유권 문제, 1998년 한일어업조약 체결 등으로 다시 안 좋아졌다. 대북 정책의 경우, 출범 직후에는 남북 대화에 비중을 뒀다.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이전 정권에 비해 명확했으며,[* '''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김 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에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3173_13445.html|#]]] 먼저 그는 보수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인사 한완상을 통일부총리에 임명하고 비전향 장기수였던 리인모를 전격적으로 북한에 송환시키는 등의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물론 북한의 버르장머리는 변할 기미가 안 보여서-- 그러나 1992년 미국의 북핵문제 제기와 한미 팀스피릿 훈련 재개로 이미 경색된 남북갈등은 몇 달 뒤, [[NPT]] 탈퇴에 이은 [[1994년]] 3월의 '''[[서울불바다|서울 불바다]] 망언'''[*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이 [[개성특급시|개성]]에서의 회담 도중 '''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라는 발언을 했다. 사실 그 뒤에 ''' " 이 회담에서 우리가 심사숙고를 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한걸보면 저게 전쟁 위협이라기보다는 엄포 정도로 해석할 여지도 있으나, 남북 대치 상황하에서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망언을 한 것은 명백히 전쟁 선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박영수의 망언 직후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 "[[북한]]이 도발할 경우 통일의 기회로 삼겠다." 는''' 강경한 발언을 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그 뒤로 한동안 북한 대표단에서 빠졌다. [[김일성]]조차 박영수의 망언이 도가 지나쳤다고 했을 정도니. [[https://imnews.imbc.com/replay/1994/nwdesk/article/1927028_30690.html|#]] 다만 박영수 본인은 1998년에 열린 남북 해외학자 통일회의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22100289102012&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02-21&officeId=00028&pageNo=2&printNo=3122&publishType=00010|"남북간에 전쟁이 터지면 북한은 물론이요 서울도 똑같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해명을 남겼고 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유사하다. ~~그냥 전쟁의 ㅈ자도 꺼내지마~~]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사실상 대북 강경책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다가 1년 뒤 1994년 6월 --영리한 암살자-- [[지미 카터]]의 방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김일성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면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지만,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김정일]]이 사실상 권력을 승계하면서 [[북한]]은 '''전쟁론 불사''' 등의 강경 일변도로 나오면서 결국 경색관계만이 남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1996년에는 [[강원도]] [[강릉시]]에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하는 바람에 대북경협까지 동결되어 관계가 더 나빠졌다. 다만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전역이 개판이었던 것을 어느 정도 돕는다는 명분으로 쌀을 지원한다거나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는 등의 제한적인 대북 지원은 있었다.[* 물론 이후의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매우 적은 규모였다.] 범민족대회나 범청학련 통일대축전과 같은 민간 교류도 활발하게 일어나려는 듯 했으나, 정부는 안보상의 문제점을 우려하여 이를 철저히 통제했다. 이러한 기조는 김대중이 집권하기 전인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문민정부는 역대 정권 중에서 [[사형]] [[엄벌주의|집행이 가장 활발]]했던 정부이기도 하다. 이름도 유명한 [[지존파]]와 [[온보현]] 등이 이 시기에 처형됐다. 굉장히 사형이 활발히 이루어져서 [[김수환]] 추기경이 사형 집행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지만 바로 다음날에 사형수가 이미 많다는 이유로 23명을 한꺼번에 사형에 처했는데 4공화국 때인 1976년 27명을 사형 집행한 이래로 가장 많은 수였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70173-00_01012006.jpg]]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70173-00_01032211.jpg]]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세 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C%A0%9C15%EB%8C%80_%EB%8C%80%ED%86%B5%EB%A0%B9_%EC%84%A0%EA%B1%B0#cite_ref-12|위키백과 15대 대통령선거, 대선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공약 대결 논란]]] 결국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후인 [[12월 20일]] 김대중 당선자의 국민 대통합 명분에 따른 요청을 김영삼 대통령이 수락하면서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복권되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221_19482.html|전두환 노태우 사면 결정 정부]]] 당시엔 [[김영삼 정부]] 및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후보가 이 전노 사면을 추진하고 전노사면에 여야 모두 찬성의사를 밝혔던 것이라 전노사면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전노 사면에 대한 청와대 정치권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그러나 5공 시절 간첩조작으로 복역된 김성만, 양동화, 강용주, 함주명, 그리고 노태우 때 구속된 [[서경원]] 전 의원, [[박노해]], 백태웅 등 장기복역 시국사범(양심수)들의 석방이 불발되었다. == 평가 ==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추진''', '''[[역사바로세우기]]''', '''공직자 재산공개'''와 같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적폐청산]]과 정치개혁을 시도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반대로는 극도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발생한 한보사태와 이에 대한 김현철씨의 연루, 그리고 [[1997년 외환 위기]]를 불러온 정부라는 점[* 외환위기를 김영삼 정부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하고,종금사를 24개나 인하가해주면서도 관리에는 소홀했던 것은 실책으로 꼽힌다.]은 문민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다. 때문에 문민정부는 호평과 혹평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정부이기도 하다. 실제 문민정부는 여러 개혁을 시도해 호평을 받은 집권 초반에는 '''83%'''라는 매우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인기를 구사했지만 1994년 이후 지지도가 점점 떨어져 [[IMF 사태]]가 터진 집권 말기에는 지지율이 한 자릿수인 '''6%'''까지 추락하고, 1998년 3월에는 PC통신 유니텔 설문조사 결과 [[https://www.google.com/amp/s/www.donga.com/news/amp/all/19980317/7329910/1|가장 지탄받아야 할 인물 1위에 뽑히는 굴욕]]을 겪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돌파에 OECD 가입 등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1996년에 세계 경제력 11위를 차지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80년대 만큼 이 정권 시기인 90년대도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느끼고[* 일례로 2010년대에 김영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7|두]] [[응답하라 1994|편]]이나 나왔으며, 두 드라마 모두 당시를 살았던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해 성공했다. 그래봤자 일종의 추억 보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그런 추억 보정을 일으킬만한 시대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풍성한 문화적 성장이 있던 시기였다. 사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김영삼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굉장히 좋었다.폭등했던 노태우 정부 시기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었고[*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전국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은 0.3%에 불과했다.] 연평균 7.10%의 고성장을 이룩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이 노태우 정부 시절의 연평균 7.38%에서 연평균 4.98%로 크게 내려왔기 때문에 그만큼 여유가 넘쳤던 것이었다. 그러나 경상수지와 외채 관리에 실패한 결과로 '''[[1997년 외환 위기]]'''가 찾아왔고 그래서 이런 경제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게 만든 측면도 있다. === 사건·사고와 실책 === 임기 중 대형사고가 많은 편이다. 1993년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인천/부천 세무비리사건,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사고 공화국]]" 이라는 오명을 낳았다. 임기 중반 이후부터는 대형사고는 많이 사라졌으며, 임기 초반부에 나타난 대형 사고들은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정경유착에 따른 부실, 졸속 허가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자율화된 언론과 민주화된 사회 분위기가 만나 그 동안 철저히 은폐되었던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었다. 한편 위와 같은 대형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상부는 즉각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관료제는 복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 못해 국가행정 전반의 난맥상 및 마비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결정적으로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1959)|김현철]]의 비리와 한보그룹의 정경유착이 밝혀지면서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고, 집권 초반 국내 사회 시스템 개혁에 주목했던 반면 집권 후반기에는 외교/경제부문 개방에 집중적으로 주력했다. 1997년에는 정경유착 등 그동안 한국 사회에 축적되어온 경제시스템의 문제로[* 한보그룹의 정경유착은 청렴을 강조했던 문민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다. 결국 1997년은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기아자동차]] 등등 많은 회사들이 부도났다.]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되면서 [[1997년 외환 위기|결국 경제면에서 대실패]]한 정부라는 오명과 단점을 안게 되었다. 또한 대통령 선거 당시 영남지역의 압도적인 지지에 등을 업고 출범한 정부라는 점 때문에 영남지역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반면 김대중을 지지하는 호남지역에서는 혐오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하기사 13대 대통령 선거 때 단일화 실패 사례도 있고(...)-- 다만 임기 초반에 [[하나회]] 척결이나 [[금융실명제]] 실시 등으로 지지율이 90%대를 넘나드던 시절에는 호남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이 점차 떨어지면서 호남에서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과 야당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호남에서의 혹평이 많아졌고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과 갈등도 이 때 들어서도 이어나가게 되었으며 대통령 김영삼 자신도 [[김대중]]과 갈등을 빚으며 사이가 멀어지고 나빠지는 아이러니까지 보였다.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 정부입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5264_13445.html|#]] 다만, 김영삼 본인이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였던지라 호남 지역의 울분이 서려있었던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취임 직후인 1993년 5월 13일 전격적으로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진상 규명을 다짐했으며 특히 담화의 첫 부분은 당시까지만 해도 대놓고 발표하기 힘든 수준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신한국당]]과 문민정부는 [[1997년]] 대선 당시 [[전두환]] 사면을 추진하여 논란을 빚었다. [[김영삼 정부]] 및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후보가 이 전노 사면을 추진하고 전노사면에 여야 모두 찬성의사를 밝혔던 것이라 전노사면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전노 사면에 대한 청와대 정치권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 주요 사건 == 사건/사고의 경우 '''굵은 글씨'''로 표기 === [[1993년]] === *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 * [[3월 2일]] 인권운동사랑방 출범 * [[3월 6일]] 재소자 41,886명 특별사면 * [[3월 8일]] [[하나회]] 숙청 시작 * [[3월 12일]] 북한,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 [[3월 19일]]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송 * '''[[3월 28일]]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 [[3월 31일]]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 * [[4월 2일]] 환경운동연합 출범 * [[4월 19일]] 논산 정신병원 화재사고 * [[4월 22일]] 소말리아 상록수부대 발대식 * [[4월 27일]] 소설가 황석영 귀국 및 연행, [[한총련]] 출범 * [[6월 1일]]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결성 * [[6월 10일]]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 [[6월 11일]] 제2차 보궐선거 * '''[[6월 14일]]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 * [[7월 1일]] 「新경제」 5개년 계획 발표 *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 [[8월 7일]]~[[11월 7일]] [[1993 대전 엑스포]] 개최 * [[8월 9일]] 태풍 '로빈' 상륙 *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 * [[8월 20일]] 제 1회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 * [[9월 3일]] 한의사-약사 분쟁 * [[9월 23일]] 민가협, 첫 목요집회 시작 * [[9월 24일]] 남매간첩단 사건 발표 * '''[[10월 10일]]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 [[10월 18일]] 서울대 우조교 성추행 사건 * [[12월 4일]] 농림부장관 허신행, 쌀개방 발표 * [[12월 7일]] 여의도광장 쌀개방 반대 농민시위 * [[12월 8일]] 천리안 '현대철학동호회' 사건 * [[12월 9일]] 김영삼 대통령, 쌀개방 발표 * [[12월 23일]]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 [[1994년]] === * [[3월 2일]] 전교조 해직교사 1,135명 복직 * [[3월 7일]]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결성 * [[3월 15일]] 상문고 비리사건 * '''[[5월 26일]] [[박한상(범죄자)|박한상]] 사건''' * [[6월 4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결성 * [[6월 14일]] 아르헨티나 인권단체 '5월광장 어머니회' 방한 * [[6월 20일]] 한국통신, 상용 인터넷 서비스 실시 * [[6월 23일]] [[전국철거민연합]] 결성 * '''[[6월 23일]] ~ [[6월 30일]] 철도/지하철 총파업''' * [[6월 28일]] 통신비밀보호법 시행 * [[6월 30일]] 체신부 우정연구소 폐지 * '''[[7월 8일]] [[김일성]] 사망''' * [[7월 11일]] '''김일성 조문파동''' * [[7월 18일]] ~ [[8월 25일]] '''[[1994년 주사파 파동]]''' * '''[[8월 10일]] [[대한항공 2033편 활주로 이탈 사고]]''' * '''[[8월 11일]] 미전신호소 열차 충돌 사고''' * '''[[9월 21일]] [[지존파]] 검거''' * [[9월 27일]]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 * [[10월 1일]] [[KBS 1TV]] 상업광고 폐지 *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 * [[10월 24일]]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 '''[[12월 7일]]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발생''' === [[1995년]] === *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 * 직할시의 명칭을 광역시로 변경[* [[부산직할시]], [[광주직할시]], [[대구직할시]], [[대전직할시]], [[인천직할시]] 등이 포함되었다. 당시 [[울산광역시|울산]]의 경우 아직 시였으므로 포함되지 않았다.] * [[도농복합시]] 제도 실시 * '''[[2월 7일]]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화재사고''' * [[3월 1일]] [[케이블 방송|종합 유선방송]][* 케이블 SO] 정식 송출 시작 * '''[[3월 14일]] 김형진 금룡학원 이사장 패륜살해사건''' *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 창당 * [[4월 13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출범 *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 [[5월 12일]] 김숙희 교육부장관 사퇴파동 * [[5월 19일]] 김영삼 대통령, 한국통신 파업 사태를 '국가전복 기도'로 간주함. * [[5월 31일]] 5.31 교육개혁방안 발표 * [[6월 6일]] 조계사 한국통신 노조간부 체포사건 *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 *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 '''[[7월 18일]] 대검, [[5.18]] [[광주학살]] 관련자 [[불기소처분]]''' * '''[[7월 23일]] [[씨 프린스호 좌초사고]]''' * [[8월 1일]] [[한국통신]], 무궁화 1호 위성 발사 * [[8월 11일]] [[국민학교]] 명칭 변경 [* [[1996년]] [[3월 1일]]부터 적용되었다.] * '''[[8월 15일]]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 '''[[8월 21일]]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 [[9월 5일]] 김대중 정계 복귀 및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 [[10월 19일]] 박계동 의원, 노태우 비자금 폭로 * '''[[10월 24일]] 부여 무장공비 사태''' * '''[[11월 2일]] [[온보현]] 및 [[지존파]] 6명에게 [[사형]] 집행''' * [[11월 11일]] [[민주노총]] 출범 * [[11월 15일]] [[수도권 전철 5호선]] 개통 * '''[[11월 17일]] 호남사파이어호 침몰 사고''' * [[12월 6일]] [[팔만대장경]], [[불국사]], [[종묘]]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 지정 * '''[[12월 18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 [[12월 21일]] 5.18 특별법 제정 * 국민소득 1만 [[미국 달러|달러]] 돌파 === [[1996년]] === * [[1월 14일]] 무궁화위성 2호 발사 * [[2월 29일]] '전자주민카드' 시범도입 실시 * [[3월 29일]] 노수석 학생 사망사건 * [[4월 11일]]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 * '''[[5월 31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확정]]''' * [[6월 7일]]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 * [[7월 1일]] * [[코스닥]] 개장 * KBS위성1, 위성2 개국 * 영화 사전심의제도 폐지 * '''[[8월 13일]] ~ [[8월 20일]] 제7차 범민족대회 및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한총련]] [[연세대 사태]])''' * [[8월 26일]] [[전두환]] 사형, [[노태우]] 무기징역 선고 * '''[[9월 18일]]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 [[10월 4일]] 영화 사전심의제도 위헌 판정 * [[10월 11일]] [[OECD]] 가입 * [[10월 11일]]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 * [[10월 14일]] 김영삼 대통령,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 발표 * [[10월 31일]] 음반 사전심의제도 위헌 판정 * [[11월 23일]] [[서울 지하철 8호선]] 개통 * [[12월 26일]] [[1996년 노동법 날치기]] * [[12월 31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 제정 === [[1997년]] === * '''[[1월 1일]] [[당산철교]] 재시공 작업 시작''' * '''[[1월 23일]] [[한보사태]]''' * '''[[2월 12일]] [[황장엽 망명 사건]]''' * '''[[2월 15일]] [[이한영 암살 사건]]''' * '''[[3월 7일]] [[청소년보호법]] 제정''' * [[4월 1일]] 014XY 야간/할인시간 정액제 실시 * '''[[4월 10일]] [[공덕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 [[4월 17일]] 대법, 전두환 무기/노태우 17년형 판결. * [[4월 20일]] [[청주국제공항]] 개항 * [[4월 22일]] 5.18 항쟁일 국가기념일 확정 * '''[[6월 3일]] [[이석 치사 사건]]''' * '''[[7월 1일]] [[청소년보호법 파동]]''' * [[7월 23일]] 만화가 [[이현세]] 화백 검찰 소환으로 <[[천국의 신화]]> 사건 발생. *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8월 25일]] EBS 위성1, 위성2 개국 * '''[[8월 30일]]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 * '''[[9월 12일]] 위 사건 가해자 전현주 검거''' * [[10월 1일]] [[훈민정음]] 세계기록유산 등재 * [[10월 11일]]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 발족 * '''[[11월 21일]] [[문민정부]] [[IMF]]에 구제금융 신청. 신청은 12월 3일 수리되었으며, 이후 3년간 한국 경제는 IMF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일명 [[1997년 외환 위기]]'''[* 문민정부의 가장 큰 오점이자 [[6.25 전쟁]]이후 대한민국의 최대위기였다.] * 12월 [[수원화성]], [[창덕궁]] 세계문화유산 지정 * '''[[12월 19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로 [[김대중]] 당선. 그리고,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 야의 평화적 [[정권교체]]''' * '''[[12월 22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집행'''[* 이 것 또한 문민정부의 큰 오점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당시엔 [[김영삼 정부]] 및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후보가 이 전노 사면을 추진하고 전노사면에 여야 모두 찬성의사를 밝혔던 것이라 전노사면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전노 사면에 대한 청와대 정치권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사면을 안 했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 '''[[12월 30일]] 대한민국 마지막 [[사형]] 집행.'''[* 차기 정권에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이다.] 이후 한국은 사형집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 [[1998년]] === * [[1월 15일]] 제1기 [[노사정위원회]] 출범 * [[1월 23일]] 한일 어업협정 폐기 == 인사 == [include(틀:문민정부의 국무위원)] == 관련 문헌 == === 도서 === *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pageNum=1&pageSize=30&srchTarget=total&kwd=%EB%AC%B8%EB%AF%BC%EC%A0%95%EB%B6%80+1%EC%B2%9C2%EB%B0%B1%EC%9D%BC#viewKey=368290&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1|문민정부 1천2백일]] - 주돈식 저. 사람과책. 1997. *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pageNum=1&pageSize=30&srchTarget=total&kwd=%EB%8C%80%ED%86%B5%EB%A0%B9%EA%B3%BC+%EC%95%84%EB%93%A4#viewKey=427414&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1|실록 청와대 문민정부 5년: 대통령과 아들]] -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편. 한국문원. 1999. * 김영삼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 백산서당. 2000. *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srchTarget=total&pageNum=1&pageSize=10&kwd=%EA%B9%80%EC%98%81%EC%82%BC+%EC%9D%B4%EB%8D%B0%EC%98%AC%EB%A1%9C%EA%B8%B0+#viewKey=311549&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1|김영삼 이데올로기]] - [[강준만]] 저. 개마고원. 1995. *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pageNum=1&pageSize=30&srchTarget=total&kwd=%EC%8B%A0%ED%95%9C%EA%B5%AD%EA%B5%B0#viewKey=381034&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1|신한국군 리포트: 21세기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하여]] - 김성걸, 이상기 공저. 한겨레신문사. 1998. * 잃어버린 5년, 칼국수에서 IMF까지: YS 문민정부 1,800 일 비화([[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pageNum=1&pageSize=30&srchTarget=total&kwd=%EC%B9%BC%EA%B5%AD%EC%88%98%EC%97%90%EC%84%9C#viewKey=422756&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1|1권]],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pageNum=1&pageSize=30&srchTarget=total&kwd=%EC%B9%BC%EA%B5%AD%EC%88%98%EC%97%90%EC%84%9C#viewKey=422755&viewType=AH1&category=%EB%8F%84%EC%84%9C&pageIdx=2|2권]]) -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편. 동아일보사. 1999. *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1~3권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06. === 연재물 === *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Series/70000000000007|秘話 문민정부]]> - 1997.12.31. ~ 1998.12.28. 연재. [[분류:문민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