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1978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 문명진(文明鎭) || || 생몰 || [[1888년]] [[3월 3일]] ~ [[1978년]] [[1월 6일]]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염동 ||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 위패 || [[국립대전현충원]] || || 추서 ||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문명진은 1888년 3월 3일 서울 종로구 도염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상하이로 이주해 그곳에서 런던상회 사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1919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김보현(金甫鉉)으로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할 것을 권유받자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그해 5월 31일 임시대통령 [[이승만]] 명의로 <동포(同胞) 2천만에게 고(告)함>이라는 제목의 통유문 100부를 가지고 귀국했다. 이후 그는 포고문을 김홍작(金鴻爵) 등에게 교부하였고, 김홍작은 그 중 일부를 윤혜자(尹惠子)에게 교부하여 임시정부 선전 활동을 펼쳤다. 또한 문명진은 6월 상순경 서울 종로와 남대문 등지에서 포고문을 위익환(魏益煥)·박용남(朴容南)·이운룡(李雲龍)·김길훈(金吉勳) 등 다수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8년 1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문명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2년에 [[국립대전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