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상 국왕)]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E16350><tablebgcolor=#E1635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16350 0%, #E16350 20%, #E16350 80%, #E16350)" {{{#ece5b6 '''{{{+1 상(商) 17대 국군[br]3대 왕[br]문명왕[br]文明王}}}'''}}}}}} || ||<-2> '''[[묘호|{{{#ece5b6 묘호}}}]]''' ||<bgcolor=#FFFFFF> '''[[태종]]^^(太宗)^^''' || ||<-2> '''[[시호|{{{#ece5b6 시호}}}]]''' ||<bgcolor=#FFFFFF> 문왕^^(文王)^^ / 명왕^^(明王)^^ || ||<-2> '''[[왕호|{{{#ece5b6 왕호}}}]]''' ||<bgcolor=#FFFFFF> 태갑^^(太甲)^^ || ||<-2> '''[[성씨|{{{#ece5b6 성}}}]]''' ||<bgcolor=#FFFFFF> 자^^(子)^^ || ||<-2> '''[[휘|{{{#ece5b6 휘}}}]]''' ||<bgcolor=#FFFFFF> 지^^(至)^^ || ||<-2> '''{{{#ece5b6 아버지}}}''' ||<bgcolor=#FFFFFF> [[태정]]^^(太丁)^^ / 대정^^(大丁)^^ 자이질^^(子以跌)^^ || ||<-2> '''{{{#ece5b6 아내}}}''' ||<bgcolor=#FFFFFF> 비무^^(妣戊)^^ || ||<:> '''{{{#ece5b6 생몰 기간}}}''' || {{{#ece5b6 음력}}} ||<bgcolor=#FFFFFF> 기원전 ????년 ~ 기원전 1571년(?) || ||<-2> '''{{{#ece5b6 재위 기간}}}''' ||<bgcolor=#FFFFFF> [[갑골문]]:기원전 ?년 ~ 기원전 ?년[br][[사기(역사책)|사기]]:기원전 1582년 ~ 기원전 1571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의 고대국가 [[상나라]]의 제3대 왕으로 묘호는 태종(太宗), 시호는 문왕(文王) 또는 명왕(明王)이다. 휘는 [[자지|자지]](子至). 다른 이름은 태갑(太甲)이며 [[탕왕]]의 손자이자 [[태정]](太丁)의 아들이면서 [[애왕(상)|외병]](外丙)의 형이다 == 재위의 관한 기록 == === [[사기(역사책)|사기]]의 기록 === 아버지 태정이 할아버지 [[탕왕]]의 왕위를 계승해야 하였으나, 즉위하기 전에 죽어 숙부 외병(外丙, 자승)이 즉위하였다. 하지만 3년만에 죽었기에 외병의 동생인 중임(中壬, 자용)이 즉위하였으나 4년만에 죽어 상왕조 건국에 공을 세운 [[이윤(상)|이윤]](伊尹)이 태정의 아들 태갑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 갑골문의 기록 === [[갑골문]]에서는 아버지인 태정이 탕왕의 왕위를 계승하였고, 태갑도 왕위를 승계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사기에서의 전대 왕인 [[의왕(상)|중임]]은 갑골문에서는 이름이 언급조차 되지않는다. == 생애 == 태갑은 왕이 된 후 3년이 지나도 깨닫지 못하고 포악해졌으며 탕왕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덕을 어지럽혀 이윤은 태갑을 동궁(桐宮)으로 내쫓고 3년동안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사기에선 태갑이 3년동안 동궁에서 머무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자 이윤이 다시 태갑을 맞이했다고 나오며 태갑이 나라를 덕으로 다스리자 제후들은 모두 상나라에 복종하고 백성들도 평안해졌다고 한다. 이윤은 이를 기뻐하고 그에게 태종(太宗)이란 묘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죽서기년]]의 기록은 좀 다르다. 태갑 원년에 이윤이 태갑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고, 7년 뒤에 동궁에서 몰래 빠져나온 태갑이 이윤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분류:상 군주]] [[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