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무한도전]][[분류:무한도전/2007년 이전]] ||<tablewidth=100%><#CCCCCC> '''[[무한도전/역대 코너와 특집|문서가 존재하는 무한도전 특집]]''' 이 외의 특집은 해당문서 참조. || [include(틀:무한도전)] [include(틀:무한도전/역대 프로그램)] [목차] == 개요 == [[무한도전]]의 초기 시즌인 [[무리한 도전]]이 단 6회[* 불끄기편을 상/하편으로 나누어 2주로 방영했기 때문에 에피소드로 치면 5회만에 종결.]만에 종결되고, 새로운 형식으로 실내촬영을 하게 되면서 토크쇼 '무한도전 - 퀴즈의 달인'이란 코너가 새로 생기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3기로 정리하고 있으나, 무한도전 제작진이 역사를 정리할 때 퀴즈의 달인은 무리한 도전과 같은 2기로 취급했다. 애초에 회차가 이어져 있고, 2006년 1월 7일 방송까지는 무리한 도전의 로고가 계속 쓰였다. == 코너 == 주력코너는 두 가지가 있었으며 몸풀기였던 [[거꾸로 말해요 아하]][* 퀴즈의 달인 2회인 크리스마스 특집 편에서 아하가 1라운드, 퀴즈가 2라운드라고 소개한다.]와 본편이라 할 수 있는 퀴즈의 달인 코너였다. 아하로 연습을 하고[* 정식 명칭은 두뇌훈련프로젝트로 그 이전 방송에서 보여지던 본 도전 직전의 훈련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퀴즈의 달인으로 퀴즈대결을 한다는 컨셉이었다. === [[거꾸로 말해요 아하]]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거꾸로 말해요 아하)] === 퀴즈의 달인 === [[파일:external/i.imgbox.com/euq2WTRw.jpg|width=478]] 퀴즈를 풀면 다리미판이나 빗자루같은 생필품이나 양파 한 망, 참치 선물세트, 군고구마, 호빵 같은 먹거리 등을 상품으로 주었으며 재미가 없었는지 '''1회'''만에 '''정답을 알려주는 퀴즈 - 방석라이더'''로 내용이 바뀌었다. 이 때는 상품이 라면이었으며 등수에 따라 20~30상자 정도를 주었다. 그리고 무한이기주의는 어디 가지 않아서 정답을 말하기 못하기 위한 방해 공작도 은근 많은 편이었다. [[파일:external/i.imgbox.com/vL9V7I9w.jpg|width=478]] 그러다가... 또 2회만에 다시 본래의 퀴즈의 달인으로 바뀌는 등 자리를 못잡는 모습을 보였다. 정답을 맞히기 위한 퀴즈대결이라기 보다 실제로는 웃기기 위한 '''무식대결'''이었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고(문제가 초등학교 4~6학년 정도 수준인데도 못 맞혔다.), 이윤석의 경우 대학 강의를 하고 있던 상태라서 무작정 못 맞힐 수만도 없는 등 문제가 많았던 터라 간판격인 퀴즈의 달인 코너가 단 6회만에 없어졌다.[* 05.12.17(퀴즈의 달인) → 05.12.24/31(방석 라이더) → 06.01.07/14/21(퀴즈의 달인).] 다만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2006년 1월 14일 방송에 처음 나온 무한도전 로고(무도리)에 퀴즈의 달인이라는 이름을 2006년 5월 독립 프로그램이 된 뒤에도 4회차 웨딩특집까지 사용했다. 2006년 1월 28일 설 특집부터 [[거꾸로 말해요 아하]]와 멤버간의 --비난--잡담으로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고 그 이전부터 해 왔던 앙케트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출연자들끼리 벌인 여러가지 시덥잖은 앙케트도 원초적인 것이라 가장 공부를 잘 했을 것 같은 사람, 가장 여자친구를 잘 지켜줄 것 같은 사람같은 것들이다. 첫 앙케트는 '가장 잘 생긴 사람은?' ~~이때 싸움이 [[무한도전 미남이시네요|7년이 넘어서도]] 계속될 거란 생각은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아무도 못했겠지]]~~ 이 앙케트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네티즌]]들이 선정하는 것이라 인기몰이와 인터넷상의 팬들을 양산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평균 3만 명 정도가 앙케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앙케트에서 [[박명수]]와 [[정형돈]]이 고정 5~6위를 한 경우가 많았는데 박명수는 비호감 요소가 많았고 정형돈은 [[공기]]화 되면서 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둘은 항상 "이래서 안 뽑았다." 발표 때 [[꾸준글|고정 멘트가 있었는데]], 박명수는 얼굴이 XX다를 비롯해 다양한 외모, 호통드립이 있었고, 정형돈의 경우는 그냥 '''건방진 뚱보'''다 라고 멘트가 붙었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누가 잘났네'라며 싸워댔다. 결국 시청자들의 항의로 [[국가인권위원회]]에 회부되어 권고를 먹었으며,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5~6위의 공개가 금지되어 5~6위는 개인 통보로 바뀌었다. 이때는 박명수와 정형돈이 자주 묶였는데 주로 박명수가 헛소리를 하면 정형돈이 [[츳코미]]를 거는 식이었다. 반대로 정형돈이 츳코미 걸었다가 박명수의 일갈(주로 공기드립)에 데꿀멍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준하 투입 이후 정형돈이 정준하 라인으로 가면서 전혀 엮이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2008년 7월 19일 대체에너지 특집에서 같은 팀이 된 것이 최초로 두 명이 같은 팀이 된 것이라고 한다. 정형돈이 1회(2005년)부터 출연했고 박명수도 3회부터(중간에 잘렸다가 다시 들어오기는 했지만)한 것을 생각하면 대략 3~4년간 팀이 된 적이 없는 것이다. [[파일:external/i.imgbox.com/FEnVhweZ.jpg|width=478]] [* 참고로 사진은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4회에서 나온 것이다.] 이 앙케트는 무한도전이 독립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한 뒤에도 유지되다가 4회차인 웨딩특집을 끝으로 사라졌다. 정확히는 웨딩특집에서 새 앙케트를 선정했으나 그 다음 주 방송인 월드컵 특집 1탄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모래공 차기 때 순서를 정하면서 정형돈이 "앙케트 1등 순부터 차죠?"라고 했는데 발표를 아예 안 했는지 발표를 했는데 편집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후 아무 언급없이 지나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드디어 시청률 3위권 내의 진입에 성공했다. == 6인의 출연자 == 퀴즈의 달인 이전 까지 초기에 출연자들은 상당히 들쭉날쭉하게 갈아치웠다가 실내로 옮긴 이후에는 [[김성수(쿨)|김성수]]가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 촬영을 이유로 하차했다.[* [[거꾸로 말해요 아하]] 코너에서 [[브라질]]을 거꾸로 말하려다가 '[[지랄|지X]]브'로 말하는 실수를 했기 때문에 하차했다는 [[농담]]도 있는데, 실제로는 지X브 말실수를 한 건 맞지만 하차와는 관계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불알|불X]]질이라고 말실수한 유재석도 하차했어야...-- 그러나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했던 탓인지, 이후 유재석의 퓨쳐라이거 공연에 응원차 찾아왔을 때 무한도전 하차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 때 출연했을 때에도 여러 번 아쉬움을 내비치며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으나 유재석이 "너무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라고 답했다. 당시에 시청률 10% 나올까말까하던 프로그램이 하차 후에 국민 예능이 되었으니 김성수 본인도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매우 안타까워했을 듯. ~~그러다가 무도작은잔치 특집에서도 노홍철이 나간후 생긴 빈자리를 노리면서 간만의 기회를 얻는가 했더니만 결과는...~~] 그 다음 주에 하하가 합류하면서 한동안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하하(가수)|하하]], [[노홍철]], [[이윤석]]의 6인 체제로 진행되었다. 이윤석이 중도 하차한 뒤 기본 5인 + 게스트 1인([[이효리]], [[이경규]])의 체제로 한 달가량 방송한 뒤, [[정준하]]를 고정멤버로 발탁한 뒤 고정 6인 체제로 회귀했다. 다만, 이 고정 체제는 시청률 문제와 스케줄 문제가 겹쳐 여러모로 불안한 구조였기 때문에 졸업 특집 때 하하를 판넬로 세워놓은 것과 같은 특이한 시도를 계속 벌였다. == 독특한 자막 == [[궁서체]] 자막은 [[무모한 도전]]에서도 이용되어 왔던 것이지만, PD의 변(辯)이라는 형태로 방송을 부연 설명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웃음포인트를 삼는 것은 이 시기가 처음이다. 예를 들어 자막으로 [[유재석|비디오 보이]], [[박명수|박사장]], [[하하(가수)|단신]], [[정형돈|건방진 뚱보]], [[노홍철|퀵마우스]] 등의 별명을 강조하며 캐릭터를 잡는 식으로. 실제로 이후 줄기차게 이용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는 거의 이 시기 형성되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자막의 최대 수혜자는 [[박명수]]인데 박명수는 2000년대 전부터 큰소리를 앞세우는 이른바 호통기믹이란 것을 사용했지만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매니아들이 주목했을 뿐 다른 방송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자막으로 재발굴되었다. 그것의 결정타가 [[이경규]]가 출연했던 전설의 맹비난 특집. 그리고 [[MBC]]의 별명중 하나인 [[마봉춘]]을 공식화한 프로그램이며 마봉춘 아나운서로 알려진 [[나경은]]은 이 시기부터 유재석과 연애를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작 마봉춘이라는 별명을 확정하는데 일조한 이윤석은 하차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