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스탠드 <ruby>에피타프<rp>(</rp><rt>묘비명</rt><rp>)</rp></ruby>, rd1=에피타프)] {{{+1 墓碑銘 / Epitaph}}} ||<tablealign=right> [[파일:attachment/묘비명/a0017838_4cabdb4dc0c56.jpg|width=300px]] || ||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 || [목차] == 개요 ==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 >상상력에 한계가 없었을 때, >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 >바꿀 수 있었을 것을. > >그리고 누가 아는가, > >세상도 변화되었을지! >------ >웨스턴민스터 성당의 어느 주교의 묘비명. 묘표에 새겨 [[고인]]을 기념하는 명문(銘文)이나 시문(詩文).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한국사의 주요 사료인 [[광개토왕릉비]], [[문무왕릉비]]도 묘비명이다. 고대 인물의 경우 묘비명에 가계도나 대표적 업적 같은 것을 역사서보다 상세하게 적어놓아 좋은 사료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경우 유교적인 관습에 따라 관직명을 올리는 게 보통. 대다수 일반인의 경우 관직이 없기에 관직에 오르지 못한 학생이라는 의미로 '''학생부군신위'''라고 쓴 게 보통이다. 이런 관습은 꽤 최근 까지 남아있어, 공무원들의 경우 5급 사무관 이상들의 경우 묘비에 직급을 쓸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이든 6급 [[주사]]들은 묘비명 때문에 승진을 하려고 했을 정도. 전통적 의미의 관직(공직)이 아닌 사기업에서 근무한 사람들의 경우 아무리 대표이사, 전문경영인 (CEO) 등의 최고 자리에 오르더라도 관직이 없기 때문에 "학생부군신위"라 쓰는 게 보통이었다. 서구권의 경우 [[사람]]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이며 대부분 고인이 죽기 전에 새겨달라고 부탁했던 말이나 고인을 기리는 좋은 말을 써준다.[* 그는 좋은 [[남편]]이었으며 훌륭한 [[아버지]], 믿음직스러운 [[친구]], 인생의 업적 등.] 그러나 [[위인]]들 중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유언]]이나 부탁을 통해 뭔가 이해가 안 되는 문양이라든가 [[암호]]를 써놓기도 한다. 간혹 고인의 삶을 단문이나 [[시]] 등의 문학적 형태로 새겨넣는 때도 있다. 문학적인 묘비명에는 작자와 시대의 취향에 따라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우스꽝스러운 것, 때로는 죽은 사람에 대한 냉소(冷笑)를 나타내는 것 등의 여러가지가 있다. [[게임]] 및 [[영화]] 등에선 뭔가 숨겨진 [[보물]]창고의 입구나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기도 한다. == 역사 == 묘비명은 매장의 양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묘비명은 [[미라]]를 넣은 [[관(장례)|관]](棺)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죽은 사람의 나이와 관직, [[이름]] 등의 간단한 사실들만 새긴다. [[그리스]] 묘비명의 대부분은 단순히 이름과 고별의 뜻을 나타낸 것이 많으나, 거기에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곁들인 것도 있다. 이는 엘레지조(調)의 형식이며, 묘비명의 걸작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의 명예로운 전사자를 애도한 시모니데스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묘비명은 다른 기념 각문(刻文)과 함께 발달하여 '에피그램'이라는 [[문학]] 장르의 일부를 형성하였다. [[로마]]의 묘비명은 그리스와는 달리 원래 단순한 [[사실]]만을 새겼다. 그리고 로마 묘비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지나가는 사람의 주의를 끄는 말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통행인이 많은 길가에 묘를 세웠다. [[기독교인]]의 묘비명은 고전시대의 그것을 계승한 것으로 실제로 13세기까지는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그대 위에 흙이 가볍기를(sit tibi terra levis)"이라는 로마 이래의 상투문구를 그대로 썼다. 16세기에 들어와 묘비명은 문학으로 취급되어 유명한 비명(碑銘)이 시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 유명한 사람들의 묘비명 == *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던 사람, 여기에 잠들다. * 근대인의 고뇌를 그린 장편 철학시 〈[[오디세이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등으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는 평소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잘 담아낸 묘비명을 남겼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ό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εύθ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인간의 존재와 고독을 평이하고 자연스런 언어로 표현한 [[시인(문학)|시인]] '''조병화'''는 자신의 묘비명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정확히는 묘비명이 아니다. 조병화 서재이자 오늘날 조병화문학관으로 쓰이고 있는 경기도 안성 편운재의 조형물에 새겨진 시로 제목은 <꿈의 귀향 >이다. 다만 조병화 시인의 묘소가 편운재 바로 옆에 있고, 시인 본인도 이 시를 자기 묘비명으로 삼겠다고 말했으니 묘비명으로 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생전에도 "내 사상적인 모체도 어머니이다"라며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시인의 모친 묘소도 함께 있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칭송받는 '''스탕달'''(Stendhal). [[카이사르]]의 [[명언]]을 패러디했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 대철학자이자 [[계몽주의]] 사상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묘비명은 윤리의식 강한 학자의 사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날이 갈수록 내게 더욱더 새로워지는 것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이는 칸트의 대표적인 철학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 소설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은 [[CF]]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과 생활 속에서 늘 풍자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인만큼 묘비명도 익살적이다. >'''내 언젠가 이 꼴 날줄 알았지.'''[*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직역하면 「내가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지」이다.] * 통계역학의 기틀을 설립한 열/통계물리학의 아버지인 이론물리학자 '''[[루트비히 에두아르트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의 묘비명은 극단적으로 짧으면서도 지극히 강렬하고 아름답다. >'''S=klnΩ'''[* [[엔트로피]]를 나타내는 공식이다. S=엔트로피, Ω=해당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 그리고 k='''볼츠만 상수'''를 의미한다. Ω를 W(앙상블)로 쓰기도 한다.] * 대수학의 아버지인 '''[[디오판토스]]'''의 묘비에는 수학 문제가 적혀 있는데, 방정식을 풀면 디오판토스의 사망 당시 나이가 나온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들 한 번씩은 보게 되는 유명한 묘비명 덕분에 간혹 [[고인드립]]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보라 ! 여기에 디오판토스의 일생의 기록이 있다. 일생의 6분의 1은 소년이였다. 그리고 12분의 1 후에 수염이 자라고 다시 7분의 1이 지나서 결혼을 하였다 5년이 지나 아들을 낳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나이의 꼭 반을 살았으며 아들이 죽은후 4년뒤에 죽었다.[* 디오판토스의 나이를 x로 놓으면, 'x/6 + x/12 + x/7 + 5 + x/2 + 4 = x'라는 식이 성립된다. 양 변을 계산하여 해를 구하면 디오판토스의 나이는 84세이다. 정상적인 풀이는 그렇고…. 사실 1/7, 1/12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곧 나이가 이들의 공배수였다는 것과 같고, 7과 12의 공배수 중 사람의 나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최소공배수이기도 한 84뿐이다.] *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오명으로 잘 알려진 [[니콜로 파가니니]]의 묘비명은 의외로 평범하다. >제노바 태생의 천재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 여기에 잠들다 * 제3대 [[미국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의 묘비명은 이렇다. 대통령을 지냈으면서도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넣지 않았다는 게 포인트. 사실 이 생몰년을 제외한 문장은 제퍼슨이 사망하기 전에 직접 정한 묘비명인데 이렇게 정해 놓은 후 가족들에게 여기서 단 한 단어도 추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의 제안자,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여기 잠들다. 율리우스력 1743년 4월 2일 나서 1826년 7월 4일 졸하다 * [[조선]]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묘비명은 이렇다. 이 묘비명은 퇴계가 죽기 직전에 직접 정한 묘비명이라고 하는데, 이게 특이한 이유는 퇴계도 조정에서 벼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함들을 다 빼고 적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묘비명에는 죽은 사람이 관직에 몸담았을 경우 그의 관직들을 다 넣는 것이 관례.[* 가령 [[충무공 이순신]]의 묘비에는 '증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덕풍부원군 행 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전라경상삼도수군통제사 시 충무이공순신지묘'라는 엄청 복잡한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그런데 퇴계와 대립했던 남명 [[조식(조선)|조식]]은 이를 두고 "벼슬 안 한 나도 처사 칭호가 부끄럽거늘 지가 무슨..."이란 식으로 비꼬았다고 한다.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 도산에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 이씨의 묘) * 고대 [[그리스]] (정확히는 [[시칠리아]])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에는 원통에 내접하는 구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사망 당시 로마군의 시라쿠사 함락으로 난리통인 상황에서 여전히 그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기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고 한다. 때마침 약탈하러 온 로마 병사에게 '그 그림에 손대지 말라'라고 말했고, 이에 분노한 로마 병사의 칼에 죽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사령관 마르켈루스는 이 소식을 듣고 애석해하며 아르키메데스의 묘비명에 그가 마지막으로 연구했던 것을 묘비명을 새겨줬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묘비명/아르키메데스.jpg]] >'''원통의 부피와 원구의 부피의 비는 3:2다.'''[* r96 이전에는 '겉넓이'의 비로 잘못 적혀 있었는데, 실제 묘비에 적혀 있는 것은 부피의 비이다. 그런데 원기둥의 겉넓이는 6πr^^2^^, 구의 겉넓이는 4πr^^2^^이므로, 겉넓이의 비 또한 3:2이다.] *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의 묘비명은 소파의 일생을 간결하지만 확실하게 보여주는 묘비명이다. >童心如仙(동심여선: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 어린이의 동무 소파 방정환의 묘 * 미국의 위대한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묘비에는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의 마지막 대목이 살짝 바뀌어 적혀 있다.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I'm free at last!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 1666년 대화재로 전소된 런던 시가지와 [[세인트 폴 대성당]] 복구 작업에 참여한 '''크리스토퍼 렌'''은 자신이 설계한 세인트 폴 대성당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묘비명에는 건축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바쳐졌다. >여기 이 토대에 이 교회와 도시의 건축가이며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하여 90년 넘게 살았던 크리스토퍼 렌이 누워 있다. >'''읽는 이여, 그의 기념비를 찾고자 하거든 그대의 주위를 둘러보라.''' 1723년 2월 25일, 91세를 일기로 사망. * '''[[덕혜옹주]]'''의 묘비명은 [[대한제국]]의 황녀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세상을 떠난 옹주의 일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냈다. >大韓 德惠翁主之墓(대한 덕혜옹주지묘) * 대한민국의 공수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의 묘비명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비. 이게 특이한 이유는 정병주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데, 원래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된 묘에는 간단한 약력이나 추모 글귀가 새겨져 있기 마련이지만 정병주의 묘비에는 계급과 이름만 적혀 있고 이런 것이 하나도 적혀 있지 않다. 이는 유족들의 뜻인데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12.12 군사반란|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살아 있는 세상에서 돌아가신 분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뜻이라고 한다. >육군소장 정병주의 묘(앞면) >一九八九년 三월 四일 경기도 고양군 산중에서 별세(뒷면) * [[코미디언]] 김미화가 미리 지어놓은 자신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웃기고 자빠졌네 * 실제 [[아이작 뉴턴]]의 묘비명이 아니지만, 알렉산더 포프의 찬사는 너무나 유명해서 묘비명으로 잘못 알려져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신이 “뉴턴이 있으라! 하시자 세상이 밝아졌다 * [[고려]] 말의 명신 포은 '''[[정몽주]]'''의 묘비명은 이렇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미건조하고 특이점도 없는 평범한 묘비명이지만 영원한 고려의 충신으로 남은 그의 삶은 물론이고, 그를 존경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심정이나 평가도 모두 엿볼 수 있는 묘비명이다. 덧붙여 정몽주의 묘비는 조선 [[중종(조선)|중종]] 때 유학자들이 세운 것인데, 원래 당대의 묘비명에는 추증된 관직이나 생전에 몸담은 관직까지 모두 넣는 것이 관례이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이라는 이유로 조선 태종이 추증한 관직명은 빼고 이렇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 >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고려 수문하시중 정몽주지묘) * [[신라]] [[삼국통일]]의 제1공훈자인 '''[[김유신]]'''의 묘비는 두 개이다. 모두 당대가 아니라 후대인 조선시대에 세워진 묘비지만 살아서는 태대각간이라는 최고 직위를 누렸고, 죽어서는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묘비명이다. 덧붙여 두 번째 김유신의 묘비에 물이 묻으면 '능(陵)'이라는 글자가 '묘(墓)'로 바뀐다는 사실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말라 있을 때에는 돌의 색상이 비슷해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재질의 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젖었을 때 글자 부분의 색상 차이가 선명하게 나기 때문이다.] >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 >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 * [[이소룡]]의 묘비명은 본명인 '이진번'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고 >founder of [[절권도|jeet kun do]]([[절권도]]의 창시자) 라고 새겨져 있다. 그 옆엔 아들 [[브랜든 리]]의 묘비가 나란히 있다. *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일본인임에도 발벗고 나섰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그의 인생 역시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 한때 전 세계의 절반을 호령하던 사상인 공산주의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묘비명은 공산당 선언에서 따 왔다. 짧고 강렬하며 자신의 사상을 가득 담은 묘비명이 특징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미국이 크게 자랑스러워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묘비명은 작가답지 않은 하나의 문장이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 중국 역사상 유일의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의 묘비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다.''' 이를 무자비(無字碑)라고 한다. 이는 측천무후의 유언을 따른 것으로,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내 업적은 참으로 크니 도저히 글로써 남길 수 없다'라는 극도의 자만에서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차마 글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겸양의 표현인지 확실하지 않다. 비슷한 것으로 명나라 [[만력제]]의 묘비 또한 무자비인데, 이 쪽은 확실히 전자의 자만이 맞다. 각 인물에 대한 평가도 측천무후는 '잔혹한 정치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부 통치는 잘했다'라는 재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만력제는 부정할 수 없는 명나라 최악의 암군으로 평가받는다. * [[터키]]의 국부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비는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을 담고있다. >Benim naçiz vücudum, bir gün elbet toprak olacaktır. Fakat Türkiye Cumhuriyeti, ilelebet payidar kalacaktır. >(나의 미천한 몸은 언젠가 당연히 흙이 될 것이다. 하지만 터키 공화국은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있으리라.) *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였던 [[https://en.wikipedia.org/wiki/Leonard_Matlovich|레오나드 메틀로비치]]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When I was in the military, they gave me a medal for [[살인|killing two men]] and a discharge for [[동성애|loving one]]. >(군은 내가 [[살인|두 명의 남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훈장을 주었고, [[동성애|한 명의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전역시켰다.) *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의 묘비명은 이렇다. >STEEL TRUE BLADE STRAIGHT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곧다) * [[천왕성]]의 발견자이자 별빛이 곧 과거를 보는 것임을 처음 깨달은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묘비명은 이렇다.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적절한 문장. >그는 하늘의 장벽을 돌파했다. == 그 외 == === 묘지명 === {{{+1 墓誌銘}}} 묘지에 담은 글으로, 죽은 이의 간단한 내력을 적은 글귀를 묘지에 담은 것이다. 묘비명이 비석에 새긴 것이라면 묘지명은 무덤 안에 같이 묻는 것이다. 묘지명은 [[어제의빈묘지명]]처럼 망자가 생전에 살았을 과거의 생활상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된다. === [[김광규]]의 [[시]] ===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물질만능주의|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반어법|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읽어보면 참 씁쓸하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현대시 파트에 [[이육사]] 시인의 「강 건너간 노래」와 엮여 출제되었다. === 킹 크림슨의 노래 Epitaph ===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킹 크림슨]]의 [[히트곡]]으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에 수록된 곡이다. [각주] [[분류:무덤]][[분류:금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