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중국 삼국시대 황후)] ||<-2><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bordercolor=#008000><tablebgcolor=#008000><tablecolor=#000,#fff> '''{{{#ece5b6 촉한의 황후[br]{{{+1 穆皇后 | 목황후}}}}}}''' || ||<width=20%> '''[[시호|{{{#ece5b6 시호}}}]]''' ||<bgcolor=#fff,#1f2023><(> 목황후(穆皇后) || || '''[[성씨|{{{#ece5b6 성}}}]]''' ||<bgcolor=#fff,#1f2023><(> 오씨(吳氏) || || '''{{{#ece5b6 출생}}}''' ||<bgcolor=#fff,#1f2023><(> 불명 || || '''{{{#ece5b6 사망}}}''' ||<bgcolor=#fff,#1f2023><(> 245년 || ||<|6> '''{{{#ece5b6 재위}}}''' ||<(> '''{{{#ece5b6 후한의 한중왕후}}}''' || ||<bgcolor=#fff,#1f2023><(> 219년 ~ 221년 || ||<(> '''{{{#ece5b6 촉한의 황후}}}''' || ||<bgcolor=#fff,#1f2023><(> 221년 ~ 223년 || ||<(> '''{{{#ece5b6 촉한의 황태후}}}''' || ||<bgcolor=#fff,#1f2023><(> 223년 ~ 245년 || ||<|2> '''{{{#ece5b6 부군}}}''' ||<bgcolor=#fff,#1f2023><(> [[유모(삼국지)|유모]](劉瑁) || ||<bgcolor=#fff,#1f2023><(> [[유비|소열제]](昭烈帝) || || '''{{{#ece5b6 가족}}}''' ||<bgcolor=#fff,#1f2023><(> 오빠 [[오의(삼국지)|오의]](吳懿) || [목차] [clearfix] == 개요 == [[촉한]] 선주 소열제 [[유비]]의 황후로, 유장 정권 출신인 [[오의(삼국지)|오의]]의 여동생이다. 본적은 연주 진류군. == 정사 ==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목황후의 부친이 [[유언(삼국지)|유언]]과 막역한 사이었기에 유언에게 의지했다. 일찍이 한 관상쟁이가 목황후를 보고 고귀한 신분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목황후의 상이 귀인의 상이었기 때문에 유언이 자신의 아들 [[유모(삼국지)|유모]]와 혼인시켰다. 유모가 광증으로 사망하자 과부로 혼자 기거했다. 유비가 익주를 제패하였으나 부인들이 모두 사망하거나 부재 중[* 정실인 [[손부인]]이 유비가 입촉한 후 오나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인 상태였기 때문에 신하들은 목황후와 혼인하기를 권했다. 유비가 목황후의 전 남편인 유모와 동족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으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법정(삼국지)|법정]]이 진언하여 말했다. >만일 관계의 친함과 소원함을 논한다면, 어찌 춘추시대 [[진문공]]과 자어에 비교하겠습니까?[* 진문공은 진회공 자어와 숙부와 조카 사이인데 자어가 진(晉) 공작자리 쟁탈을 위해 본국으로 몰래 떠나면서 자어의 아내인 회영은 버려진 상태였는데 진공자 중이가 제, 초나라등을 거쳐 진(秦)으로 망명해오자 진목공이 딸 회영을 부인으로 맞아들이라 권했고 중이는 자어와 관계때문에 꺼려했지만 주변의 권유와 진목공이 강력한 배경이 될거란 생각에 회영과 결혼한다. 이 후 중이는 진목공의 도움으로 본국에 돌아가 진문공이 된다. 그러니까 목황후의 전 남편인 유모가 유비와 동족이라고 해도 진문공의 사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목황후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목황후도 한중왕후에 책봉되었고, 221년에 유비가 황제를 칭하자 목황후도 황후가 되었다. 223년 5월에는 유선의 즉위에 따라 황태후가 되었다. 유염전에 따르면 234년 정월에 [[유염]]의 처 호씨(胡氏)가 목황후에게 하례하러 갔고 목황후가 특별히 명을 내려 호씨를 한 달 넘게 머무르게 했다.[* 헌데 호씨의 남편 유염은 아내가 황제와 간통을 했다고 의심하여, 호씨가 귀가하자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얼굴을 구타한 후 쫓아내 버렸다. 이에 호씨가 남편을 고소했고, 유염은 구금되었다가 사형에 처해졌다.] 245년에 목황후가 세상을 떠났고, 유비의 혜릉에 합장되었다.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모와 결혼까지는 아니고 약혼만 했던 사이로 나온다.[* 이는 삼국지 시대와 달리 나관중이 살던 시대엔 과부의 재혼을 안 좋게 봤기 때문에 고친 것이다.[[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687076&cid=60582&categoryId=62895|출처]]] 목황후가 유비와 혼인하는 시기도 익주 평정 직후에서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로 바뀌었다. 연의에서는 유비와의 사이에서 [[유영]]과 [[유리(삼국지)|유리]]를 낳았다. 참고로 정사에서는 유영과 유리의 친모가 목황후라는 언급이 없다. == 기타 == 목황후의 이름은 정사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오씨 족보에서는 목황후의 이름이 오현(吳莧)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족보는 신빙성이 낮은 사료이기 때문에 확정할 수는 없다. 어찌보면 예언으로 인해 황후가 되긴 하는데 정작 본인 말고 그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김칫국만 마셨다는 점에선 선대 [[고황후 박씨]]와도 닮았다. == 기타 창작물 == || [[파일:57f94743fbf2b211b1796a0bc48065380dd78e65.jpg]] || || 100만인의 삼국지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오의의 열전에서만 언급이 되고 본인은 미등장하다가 100만인의 삼국지에서 직접 등장했다. 미부인이나 손부인에게도 없는 유비와의 투샷이 있다. 성능은 평범하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오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촉서)] ||||||||||||<:><tablealign=center><#a11> '''[[촉한|{{{#ffffff 한나라의 역대 황후(촉한)}}}]]''' || ||<width=30%> [[후한]] [[헌목황후 조씨]] || {{{+1 ←}}} ||<width=30%> '''목황후 오씨''' || {{{+1 →}}} ||<width=30%> [[경애황후 장씨]] || [[분류:생년 미상]][[분류:245년 사망]][[분류:삼국시대(중국)/황후]][[분류:촉한의 인물]][[분류:허난성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