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그리스의 역사]][[분류:동로마 제국]][[분류:유럽의 군주국]][[분류:15세기 멸망]] [목차] [[파일:DwC6IWNVYAAI6Iv.jpg]] * [[그리스어]]: Δεσποτᾶτον τοῦ Μορέως * [[영어]]: Despotate of the Morea == 개요 == [[동로마 제국]]의 제후국으로 수립되어 본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존속하다가 내분으로 멸망한 나라(1349~1460). == 역사 == [[4차 십자군]] 이래 [[모레아]][*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중세 시대에 모레아라고 불렸다.]는 십자군 국가인 아카이아 공국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재건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는 모레아의 일부 지역을 탈환한 뒤 [[1308년]]에 미하일 칸타쿠지노스에게 '데스포테스' 작위를 하사하고 통치하게 했다.[* 데스포테스는 직역하면 [[전제군주제|전제군주]], 의역하면 [[친왕]]이나 [[대공(작위)|대공]], [[공작(작위)|공작]]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인데, 통일된 번역 방법이 없어서 편의상 문서의 제목은 모레아 전제군주국으로 했다. 데스포테스는 본래 동시대 [[서유럽]]의 작위들과는 달리 궁정에서 황족이나 대귀족이 사용하는 칭호였으며, 특정한 영지의 소유자에게 붙는 작위는 아니었다(자세한 것은 [[에페이로스 전제군주국]] 문서의 데스포테스 문단 참고).][* 미하일의 가문명을 보고 눈치 챘을 수도 있겠는데, 훗날 일시적으로 [[팔레올로고스 왕조]]로부터 제위를 찬탈하는 [[요안니스 6세]]와 같은 칸타쿠지노스 가문 출신이다.] 이후 일시적으로 [[불가리아 제2제국]]의 아센 가문 출신인 안드로니코스 아센이 재위하던 기간을 제외하면 계속 칸타쿠지노스 가문이 세습하다가, [[1383년]]에 황가인 팔레올로고스 가문에 넘어갔다. 동로마의 국운이 다해서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 없던 [[요안니스 8세]] 재위 기간 동안 모레아는 요안니스 8세의 동생인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디미트리오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토마스]]가 공동 통치하고 있었다. 그 중 콘스탄티노스와 디미트리오스는 요안니스 8세 사후 제위 계승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는데, 콘스탄티노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트 2세]]의 지지를 받아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로 즉위했다.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오스만 제국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지만 오스만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여,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마지막 전투]]에서 [[최후의 저항|최후까지 결사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는데]], '''그의 죽음과 함께 2,200여년을 이어온 [[로마 제국]]은 최후를 맞이했다.''' 이렇게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후국인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당분간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공동 통치자인 디미트리오스와 토마스가 권력 투쟁을 벌이면서 암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레아의 단독 통치자가 되고 명목상의 [[로마 황제]] 칭호를 계승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였는데, [[1460년]]에 이르러 정쟁이 극에 달하자 디미트리오스는 동생 토마스를 축출하기 위해 형을 죽인 원수인 [[술탄]] [[메흐메트 2세]]를 끌어들였다. 토마스는 오스만 제국과 디미트리오스의 연합군을 이기지 못하고 [[교황령]]으로 망명했다. 디미트리오스는 술탄의 제후가 되어 모레아의 단독 통치자가 되길 희망했으나, [[토사구팽|술탄은 그를 가택연금에 처하고 모레아를 오스만 제국의 직할령으로 만들었다.]][* 이후 디미트리오스는 [[에디르네]]에서 감금 생활을 하다가 [[1470년]]에 사망했다.] 이로써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본국과는 달리 내분으로 허무하게 멸망하였고, 교황령으로 망명했던 토마스는 [[교황]]에게 명목상으로나마 황제 대접을 받다가 [[1465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명목상의 로마 황제위와 모레아 전제군주 작위는 그의 아들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가 승계했는데, 안드레아스는 방탕하게 살면서 교황에게 지원받은 돈을 탕진하여 [[프랑스 왕국|프랑스]]의 [[샤를 8세]], [[스페인]]의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에게 제위를 팔아넘기고 비참하게 살다가 [[1502년]]에 사망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페인의 왕들은 진지하게 황제 칭호를 산 것이 아니라, 거지에게 적선하는 마음가짐(...)으로 돈을 준 것이라서 실제로 칭제하진 않았다.] 이때 안드레아스에겐 자식도 없었기에 동로마의 마지막 황실인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직계 혈통은 단절되었다.[* 안드레아스의 누나 조이가 소피아로 개명하고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와 결혼하여, 그녀의 후손들이 [[차르]]로 군림하긴 했는데, 그녀의 혈통은 [[17세기]] 초에 단절되어 이후에 제위를 차지한 [[로마노프 왕조]]에는 팔레올로고스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탈리아 반도]]의 몬페라토 변경백국은 [[안드로니코스 2세]]의 아들을 시조로 하는 팔레올로고스의 방계 가문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만토바 공국의 곤차가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곤차가 가문에 그 혈통이 섞이게 되었고, 다시 곤차가 가문의 일원이 로렌 가문의 일원과 혼인했고, 나중에는 로렌 가문 출신의 [[프란츠 1세|프랑수아 에티엥]]이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여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에 미약하게나마 팔레올로고스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 다만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위를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위는 요구하지 않고 있다.] 모레아의 수도였던 미스트라스는 그 유명한 [[스파르타]]와 가까우며, 변변한 옛 유적이 남아 있지 않는 스파르타에서 유적이라 하면 이 시기에 세워진 유적이 많다. == 역사보기 틀 == [include(틀:로마의 역사)] [include(틀:그리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