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중국 삼국시대 황후)] ||<-2><tablealign=right><tablewidth=300><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tablecolor=#000> '''{{{#ece5b6 조위의 황후[br]{{{+1 明元皇后 | 명원황후}}}}}}''' || ||<width=25%> '''[[시호|{{{#ece5b6 시호}}}]]''' ||<bgcolor=#fff><(> 명원황후(明元皇后) || || '''[[성씨|{{{#ece5b6 성}}}]]''' ||<bgcolor=#fff><(> 곽씨(郭氏) || || '''{{{#ece5b6 출생}}}''' ||<bgcolor=#fff><(> 불명 || || '''{{{#ece5b6 사망}}}''' ||<bgcolor=#fff><(> 263년 12월 || ||<|4> '''{{{#ece5b6 재위}}}''' ||<bgcolor=#00008B><:> '''{{{#fff 조위의 황후}}}''' || ||<bgcolor=#fff><:> 238년 ~ 239년 || ||<bgcolor=#00008B><:> '''{{{#fff 조위의 황태후}}}''' || ||<bgcolor=#fff><:> 239년 ~ 263년 || || '''{{{#ece5b6 부군}}}''' ||<bgcolor=#fff><(> [[조예|명제]](明帝) || [목차] [clearfix] 明元皇后 郭氏 (? ~ 263년 12월) == 소개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성은 곽씨(郭氏), [[휘]]는 불명. [[조예#s-1|조예]]의 두 번째 황후. 서평군(西平郡) 사람으로서 대대로 하우(河右)의 호족이었지만 황초 연간에 그녀의 군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므로, 그녀는 신분을 박탈 당하여 관노가 되어 황궁으로 들어왔다. 조예가 황제에 즉위한 후 많은 총애를 받아 부인(여관의 지위)이 되었고 [[명도황후]] 모씨가 조예의 명으로 자결한 후 조예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드디어 황후로 옹립되었다.[* 즉 명원황후는 관노에서 황후라는 엄청난 인생역전을 보여준 인물이다.] 제왕 [[조방]]이 즉위하자 황태후가 되었고, 곽씨의 가족들은 작위와 영지를 받았다. 조방, [[조모(삼국지)|조모]], [[조환]] 시대에는 사마씨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나라의 큰 일은 곽태후에게 물어 명이 떨어진 후에 시행하는 체제를 취했다. [[고평릉 사변]]에서 사마씨가 명원황후의 허락을 받아 쿠데타를 정당화했고, 관구검과 종회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명원황후의 명령을 빙자하여 난을 일으켰다.[* [[종회]]가 난을 일으킬 때 명원황후가 사망하기 전 [[사마소]]를 주살하라고 했다는 조서를 [[위조#s-1|위조]]해 반란 명분에 사용했다.] 또한 사마사가 조방을 폐위할 때도 명원황후를 명목으로 이용했다. [[회황후]]가 죽고나서 조방이 [[폐후 왕씨]]를 황후로 삼으려는 것을 명원황후가 반대했다.[* 출처: 제왕기 주석 위서] 조방이 폐위되고 새로운 황제를 결정할 때 사마사는 조거를 추천했지만 명원황후가 강력히 조모를 천거해서 조모가 즉위하게 되었다. 조모가 가충의 부하 성제에게 죽자 사마소는 명원황후를 압박해 사실을 왜곡시켰다. 263년 12월, 명원황후는 죽고 264년 2월 고평릉(조예의 능) 서쪽에 묻혔다. == 평가 == 기본적으로 왕조에서 황태후라는 자리는 꽤 독특한 입지를 가지게 되는데, 수렴청정 같은 제도적 실권을 가지는 형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황태후란 그 존재 자체로 현 황제에 있어 효의 대상이므로, 어떤 의미로는 유일하게 황제의 윗사람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한 왕조를 반면 교사 삼은 조위 왕조는 외척은 물론 황실 혈족 전반의 정치 개입을 적극적으로 억제했고, 덕분에 과거 하태후와 하진처럼 황태후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곽 태후 본인도 사정이 상당히 미묘했다. 호족 가문이었지만 몰락하여 그 자신은 관노 신세였었고. 그마저도 황후로 인정 받은 것은 이미 조예가 맛이 간 뒤였으니, 세력을 형성할래야 할 수가 없었고 황태후라고 스스로 떵떵거리기에도 좀 껄끄러운 입장. 이렇듯 '상징적 지위'와 '실질적 권력(또는, 최소한 영향력)'이 엄청난 격차가 있는 그녀는, 결국 말년까지 사마씨가 황제를 한 번 갈아 치우고 한 번 시해할 동안 열심히 그들의 정당성에 도장이나 찍어주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런 그녀가 딱 한 번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 사건이, 바로 조모의 황위 계승. 사마사는 조방을 폐위한 뒤 조거로 뒤를 이으려 했지만 곽 태후는 제사관계가 꼬인다는 이유로 조모를 밀어 붙였고, '그' 사마사도 결국 자신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유교적 명분 앞에서는 방법이 없었는지 백기를 드는데...[[조모(삼국지)|결과적으로 이것이 사마사가 사마소에게 물려준 가장 무거운 숙제이자 사마씨 왕조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는 저주로 이어지고 만다.]] 사마씨 왕조 시대에 쓰여전 [[정사 삼국지]] 위서 후비전은 명원황후에 개인에 대해 이렇다 할 평은 내리지 않는다. 다만 위 왕조가 한 왕조의 실패를 경계 삼아 황후들의 정치 참여를 막은 것에 대해 훌륭하다 평가하며, 명원황후 역시 그 '나대지 않고 조용히 지내준 기특한' 여인들의 하나로 보고 있을 뿐. == [[미디어 믹스]] == ===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 [[파일:전략명원황후.png]] 사마의가 국정을 장악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본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위서)] ||||||||||||<:><tablealign=center><bgcolor=#00008B> '''{{{#ffffff 조위의 역대 황후}}}''' || ||<width=30%> [[명도황후 모씨]] || {{{+1 ←}}} ||<width=30%> '''명원황후 곽씨''' || {{{+1 →}}} ||<width=30%> [[회황후]] 진씨/견씨 || [[분류:삼국시대(중국)/황후]][[분류:위나라의 인물]][[분류:26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