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오스만 군주)] [include(틀:역대 보편 칼리파)] [[파일:Portrait_of_Sultan_Mehmed_V.jpg]] [youtube(kMNEUSrsNGc)] 컬러로 복원한 메흐메트 5세의 동영상.[*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을 방문한 [[빌헬름 2세]]를 영접하는 영상이다.] [목차] 오스만 터키어 محمد خامس 터키어 V. Mehmet Reşat[* Reşât (레샤트)는 [[페르시아어]]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오스만 역사상 메흐메트들이 한둘이 아닌지라 별명으로 불렸다. 그리고 실제로 본인도 메흐메트보단 레샤트로 서명하기를 선호했으며 당시의 화폐에도 레샤트의 이름이 박혀서 발행되었다. 의미는 '옷을 잘 입는 사람', '멋쟁이'라는 뜻이다.] 재위 1909년 4월 27일 ~ 1918년 7월 3일 생몰 1844년 11월 2일 ~ 1918년 7월 3일 == 개요 == [[오스만 제국]]의 35대 [[황제]]로, 31대 황제 [[압뒬메지트 1세]]의 셋째 아들이다. == 생애 == 1909년에 [[청년 튀르크당]]에게 폐위된 이복형 [[압뒬하미트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친절하고 온화한 성격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나 실권은 없는 [[이스마일 엔베르|엔베르 파샤]]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즉위부터가 청년 튀르크당과 엔베르 파샤, 탈라트 파샤, 제말 파샤 삼인방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의 즉위 이후 입헌군주제 개헌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1911년엔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을 치러 패전한다. 이리하여 트리폴리, 키레나이카 지역을 할양했다. 사실 할양 이전에도 이 지역은 반독립 상태였다. 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오스만의 약세를 확인한 발칸 지역 국가들이 선전포고를 해 와 본격적으로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은 그야말로 탈탈 털린다. 사실 메흐메트 5세는 실권이 없었기 때문에 큰 잘못은 없지만 어쨌든 그가 황제이니 만큼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1913년의 2차 발칸전쟁에선 세르비아-그리스-루마니아-몬테네그로와 편먹고 간신히 트라키아 지방을 되찾았다. 이후 1차 대전 참전 당시에도 전쟁 직전까지 친영파와 친독파로 나뉘어 입씨름 중이었던 오스만 조정 내에서 메흐메트 5세는 개인적으로 친영, 친불파였으나 결국 [[엔베르 파샤]]에게 밀려 제국은 동맹측에 참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역사상 [[지하드]]를 선포한 최후의 칼리프[* 그리고 그 시기부터 메흐메트 5세 사망 시기까지 발행된 화폐에는 그의 이름 대신 '성전사'라는 뜻의 'el-gazi'가 찍혀서 발행되었다.]이기도 한데, 이 지하드라는 것이 다름 아닌 [[제1차 세계 대전]]. 하지만 칼리프 본인은 전쟁을 원치 않았음에도 엔베르가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선언된 것인 데다 가장 먼저 이슬람을 받아들인 아랍인들조차 이 '성전' 에 맞서는 등, 지하드 치고는 나사가 여럿 빠져 있었다. 사실 지하드 선포를 통해 가장 크게 노렸던 건 당시 [[인도 제국]] 내 무슬림 주민들의 내부봉기였는데, 거짓말 같이 인도 무슬림들은 영국에 협조적이었으며(...) 인도 제국군에 참여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비롯해 오스만 제국 동부에서 [[오스만 제국]]과 싸웠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는데, 애초에 당시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무관심과 탄압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튀르크계 지배자들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으며, 인도 무슬림들의 입장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좋은 인연은 어디까지나 옛 [[무굴 제국]] 튀르크계 지배층의 일일 뿐 이슬람교로 개종한 토착 인도인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다굴을 해오자 전황은 오스만 제국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다만 [[갈리폴리 전투]]에서 [[무스타파 케말]]과 오스만 제국군의 활약으로 영국군을 격퇴하여 코스탄티니예가 점령당하는 치욕은 면했다. 1918년 패색이 뚜렷하던 전쟁 말에 병으로 급사했다. 제위는 동생 메흐메트 6세가 이었다. [[분류:오스만 칼리파]][[분류:1844년 출생]][[분류:191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