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Operation Talon, 맹금의 발톱 작전, 맹금류 발톱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25 전쟁]] 1951년 당시 계획만 되고 실행되지 못한 작전이다.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입안한 것으로, [[원산시|원산]] 부근에 상륙 및 공수작전을 실행하여 공산군의 후방을 타격하여 보급선을 차단하고, [[고지전]]을 펼치고 있던 지상군은 대규모 공세로 전환하여 [[평양직할시|평양]]-[[원산]]선까지 진격한다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을 통해서 손실이 심한 [[고지전|고지쟁탈전]]을 피하고, 전선의 굴곡을 정리, 전선을 축소하고 희생이 큰 고지전을 회피한다. 그렇게 공산군에게 대타격을 입혀서 확실하게 [[휴전]] 회담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휴전]]을 이미 기정사실로 해 놓았던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평양-원산선을 다시 확보하여 정치적 승리를 확실히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왜 [[평양]]-[[원산]]선이었냐면, 평양과 원산 사이가 [[한반도]]에서 가장 잘록해서 동서 길이가 짧고, 당연히 한 번 차지해 전선을 펼치면 방어도 가장 쉽기 때문이다. 과거 [[통일신라]]가 차지했던 영토도 이와 비슷해 역사적으로 효율이 증명되었으며,[* [[고려]] 역시 신라보다 북으로 조금 더 확장하긴 했지만 이 한반도에서 가장 잘록한 지역을 경계로 삼는다는 선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950년에는 이 선을 넘어서 전선이 길어지는 압록강부터 함경북도까지 너무 빨리 진격하다가 결국 이 선을 사수하는 것보다 [[1.4 후퇴|훨씬 더 멀리 서울까지 포기하고 후퇴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 무산된 작전 == 유엔군 사령부는 공산군이 치명타를 받을 경우, 오히려 휴전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하여 대규모 계획을 보류하고 휴전 회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작전만 허용했다. 이에 밴 플리트 장군은 지지 않고 작전을 하나 더 입안하는데 추계 작전이라고 이름만 다르고 비슷한 작전을 다시 상부에 보고하였지만 이것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개성시|개성]], [[금강산]]까지 회복하여 중부 지역을 완전 수복하고자 하는 작전도 계획되었는데 [[통천군]] 일대까지 휴전선을 북진하려고 일단 고성의 거진읍을 점령하고 금강산으로 진입하려 하였으나 이것 역시 취소되었다.[* 허락받은 몇몇 작전들도 예상 사상자가 많다 하여 스스로 중지시킨 것도 있었다. 그래도 퍼즐 조각같이 돌출된 전선을 일직선으로 만들고 전선을 10~20km 올리려는 제한적인 목적의 대규모 공세는 그와 수뇌부 모두 공감했기 때문에 이를 1951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실행해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를 끝으로 [[대대]]급 이하의 소부대 전투만이 [[금성 전투]] 이전까지 이어졌다.] [[38선]] 너머로 진격한 것이 위기감을 느낀 [[중국]]의 참전을 불러왔기 때문에 또다시 대규모 공세가 있다면 이번에는 [[소련]]이 참전할지도 모른다는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듯했다. 또한 지나치게 전과를 확장시키면 도리어 그 지역을 다시 찾기 전에 휴전 회담에 나오지 않는 수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소련은 애초에 무기나 공군 지원하는 것 이상으로 참전할 생각이 없었고, 중국 역시 지속적인 전쟁 수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북한 소멸만 이뤄지지 않으면 어느 정도 더 양보할 소지는 있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중국과 소련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사실 중국도 유엔군이 저정도로 빨리 후퇴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의 원래 계획은 39도선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휴전할 생각이였다.] [[백선엽]] 장군은 이 작전을 밴 플리트 장군에게 전해 듣고 굉장히 기대하였고 열심히 작전을 준비했지만 취소된 것에 대하여 상당히 아쉬워하였다. 사실 프랑스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배로 우리나라 전쟁은 급히 휴전모드로 전환됐다. [[리지웨이]]가 아니라 누구라도 휴전모드가 됐을 듯. 또한 공산군 측도 [[인천상륙작전]]으로 크게 당한 적이 있어 [[상륙작전]]에 대비를 철저하게 했다.[* [[2차 대전]] 때 [[오마하]]에서 보듯 대비한 적앞의 [[상륙작전]]은 대참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다만 [[고지전]]에 따라 인명피해가 줄창 컸다.. 이렇게 [[고지전]]만 지속하면서 [[휴전]]을 기다릴 것인가, 일거에 정리하면서 강제로 끌어낼 것인가의 의견이 충돌했다. 또한 [[원산]]에 대규모 [[기뢰]]를 깔아 놓은 상태에서 상륙하기에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맥아더]]가 북진하고 있을 때, [[원산상륙작전]]을 실시했지만 원산 앞바다에 널려있는 [[기뢰]]때문에 상륙도 못하고, 그것들을 치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미 육군이 [[원산]]을 점령하고 동해안 따라 북상하고 있을 때에도 해군은 기뢰를 치우는데 애를 먹었고, [[자위대|일본 자위대]]까지 동원해서 그 작업을 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원산]]에 재[[상륙작전]]은 힘들었을 것이다. == 성사되었다면? == '''[[금강산]]과 [[개성시]], 그리고 [[미수복 강원도]], [[미수복 경기도]] 현 [[군사분계선|휴전선]] 이북의 상당한 부분이 대한민국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작전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도 휴전 회담의 장기화를 염려해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데 실제로 휴전은 이 작전을 입안하고 무려 2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아마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도 작전과 관계 없이 휴전 회담이 장기화될 줄 알았다면 작전을 승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소련 역시도 북한 전체의 멸망이 아닌, 자국 영토와 자유진영 사이의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뿐이라 38선 이북지역까지 내주는 것도 큰 손해가 아니었기에 실행되었으면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작전에 성공했다면 그 후 '''역사도 상당히 바뀌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수도 [[서울특별시]]가 현재의 충청권의 군사적 포지션이 되어서 잠재적인 위협이 현재보다 크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서해5도]]도 안전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선의 길이가 짧아져서''' 현재 상황보다는 안전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현 국군의 문제점인 머릿수에 집착하는 육군에 쏠려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타파되고, 오히려 모병제가 될 확률도 적진 않았을 것이다. 모병제가 아니더라도 현역 복무비율보다 대체복무 비율이 더 높은 식의 널널한 징병제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현역 판정율 95%라는 괴랄한 기록도 안 나왔겠지--[* 저출산 문제를 고려하면 그 시기가 미뤄지더라도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단 전선길이의 감소와 휴전선에서 수도로의 거리가 길었기에 군축도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금강산과 개성이 대한민국의 땅이 되면서 관광수익도 더 많이 생겼을 것이다. 한편 [[강남3구]] 지역과 [[과천시]] 등 서울 이남 지역의 개발등이 서울이 휴전선 부근에 있어서였다는 걸 감안하면, 만약 이 상황 대로였다면 서울은 양주시,고양시,의정부시 등 북부지역으로 확장되었고, 반대로 강남 지역은 현 광명시,성남시,광주시,과천시 등지로 흡수되었을 것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행정구역 개편/수도권/경기도 분도|수복 경기도가 경기도와 합쳐져서 경기북도와 경기남도]], 그리고 [[행정구역 개편/강원권|수복 강원도 또한 강원도와 합쳐져서 강원남도와 강원북도로 분도되었을 확률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존재로 인하여 옹진군과 강화군등이 개발이 진척이 안되었던 걸 고려하면 이 시나리오에선 옹진군이나 강화군도 현 인천광역시 도심처럼 개발이 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반면 북한은 곡창지대인 [[황해도]] 지역과 더 나아가 평양직할시를 대한민국에게 빼앗기면서 인구와 식량이 실제보다 훨씬 감소하게 되고, 수도인 평양직할시를 빼앗기지 않더라도 현 시점의 서울처럼 접경지대 바로 코앞에 한국군이 주둔하게 되며 국토방위의 부담이 컸을 것이고, 이에 따라 체제 취약성이 더 심해져 어쩌면 90년대 소련 붕괴와 동유럽 자유화, 고난의 행군을 맞아 북한도 붕괴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그러면 남북통일이 2000년대 초반에 이뤄졌을 확률이 높다. 참고로 북한의 기록이나 영화에서는 유엔군이 실제로 이 작전을 벌였는데 용감한 북한군이 쓸어버렸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북한 첩보원의 활약으로 공세를 좌절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중공군과 휴전회담 장기화를 두려워해서 공세를 안 한 것이다. 참고로 후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나온 것이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이다. [[분류:6.25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