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금 황제)]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b82647><tablebgcolor=#b82647><tablecolor=#000>{{{#ece5b6 '''금 제10대 황제'''[br]{{{+2 '''末帝 | 말제'''}}}}}} || ||<-2><width=50> '''[[묘호|{{{#fff 묘호}}}]]''' ||<bgcolor=#fff><(> 없음 / '''[[소종]](昭宗)'''[* 비공식 묘호.] || ||<-2> '''[[시호|{{{#fff 시호}}}]]''' ||<bgcolor=#fff><(> 없음 || ||<-2> '''[[제호|{{{#fff 제호}}}]]''' ||<bgcolor=#fff><(> 말황제(末皇帝) || ||<-2> '''[[연호|{{{#fff 연호}}}]]''' ||<bgcolor=#fff><(> 성창(盛昌, 1234년) || ||<|2> '''[[성씨|{{{#fff 성씨}}}]]''' || {{{#fff 여진어}}} ||<bgcolor=#fff><(> 온얀(Won-{g}ian) || || {{{#fff 중국어}}} ||<bgcolor=#fff><(> 완안(完顔) || ||<|2> '''[[휘|{{{#fff 휘}}}]]''' || {{{#fff 여진어}}} ||<bgcolor=#fff><(> 호돈(呼敦) || || {{{#fff 중국어}}} ||<bgcolor=#fff><(> 승린(承麟) || ||<-2> '''{{{#fff 생몰 기간}}}''' ||<bgcolor=#fff><(> ? ~ 1234년 2월 9일 || ||<-2> '''{{{#fff 재위 기간}}}''' ||<bgcolor=#fff><(> 1234년 2월 9일(아침~저녁)|| [목차] [clearfix] == 개요 ==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재위기간이 짧은 왕들]] 가운데서도 맨 앞자리에 위치한 군주이다. == 생애 == 이 황제의 재위 기간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아침에 즉위해서 그 날 저녁에 죽었다'''.[* 사실 상 현재 공무원의 일과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라 볼 수 있다.] 애종은 [[몽골 제국군]]의 공격을 피해서 채주(菜州, 현 하남성 주마점시 여남현 - 허난성 주마뎬시 루난현)로 달아났지만 안 그래도 몸이 약한데다 피난 생활로 지치기까지 해서 더 못 도망쳤다. 1234년 2월 9일 새벽, 애종은 자신에 비해 뜀박질을 잘하는 황족이자 호위 대장인 완안승린에게 양위한다. 승린은 애종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금태조 [[완안아골타]]의 형 완안오야속(강종)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완안씨였으니, 가깝든 멀든 황족은 맞다. 완안승린은 당연히 처음에 거절했으나, 양위받지 않으면 금나라가 멸망한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양위를 받았다. 양위한 애종은 안심했지만 몽골 군과 남송군이 밀고 들어오자 살 의지는 없었는지 목 매달아 [[자살]]했다. 황제에 오른 완안승린은 아침에 눈물을 머금고 채주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 날 오후 정체가 드러나 몽골군에게 붙잡혔고 '''그 날 저녁''' [[끔살]]당했다. '''중국 역사상 최단 기간 재위한 황제이자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 재위한 군주'''라니 [[안습]].[* 찾아보면 '''[[효명제의 딸|5시간]]'''이나 '''[[루이 19세|20분]]'''도 있긴 한데, 대체로 형식적으로 즉위한 것이어서 왕위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주류 사학계에서 재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왕위를 계승했고 그것을 절대다수에게 인정받는 왕 중에선 완안승린이 가장 짧은 재위기간을 가졌다.] 그의 죽음으로 금나라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단, 금의 무장 [[곽하마]]가 금이 멸망한 후에도 2년 동안 항전을 계속했다. 성이 함락되려 하자 곽하마와 그의 부하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불길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 사후의 수난 == 애종은 사후 그의 시신이 성을 함락한 몽골군에 의해 탈취되었으며, 몽골군은 그의 시신을 불태우고 분쇄했으며 머리는 잘라 [[남송]]으로 보냈다.[* 이는 금나라 정벌 시 남송이 식량과 군사 지원을 해준데에 대한 보답의 일부였다.] 금나라가 [[북송]]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이종(송)|이종]]은 이 머리를 태묘에 바쳐 원수를 갚았음을 알리고, 장대에 효수했다. == 사후 추서 == 소종이라는 [[묘호]]는, [[속자치통감]]에 따르면 그를 따르던 친족과 병사들이 올렸다고. [[분류:금나라의 황제]][[분류:망국의 군주]][[분류:123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