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滿洲源流考}}} [목차] == 개요 == '''만주'''족의 '''원류'''를 '''고'''찰한 책. --혹은 원조 [[동북공정]]-- [[만주족]]의 청 제국 황제 [[건륭제]]의 명으로 편찬되었다. 만주원류고 혹은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만주사이 다 서키옌히 킴친 비트허)라고 한다. 흠정(欽定)은 [[황제]]의 판단, 또는 판단한 것을 가리키는데 흔히 책의 명칭에 붙이곤 했다. 즉 '흠정'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은 황제가 내용에 직접 관여하여 편찬한 것이다. == 상세 == [[만주]]의 여러 부족 및 풍속·지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선 만주의 원류로 [[읍루]], [[물길]], [[금나라|완안]] 같은 [[숙신]]계 종족들은 물론 친척뻘인 [[옥저]], [[부여]], [[발해]]도 다루고 있고, 심지어 [[백제]], [[신라]]를 포함한 [[삼한]]까지 만주의 원류 중 하나로 고찰하고 있다. 대강 구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여지껏 작성된 사료들을 모조리 모아놓고, 청 제국의 [[사고전서]] 학자들이 이를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는 형식이다. 헌데 특이하게도 이 책에선 [[거란]]이나 [[선비족|선비]], [[몽고]] 등 [[몽골]]계 부족이나 '''[[고조선]], [[고구려]]는 자신들의 원류로 보고 있지 않다.'''[* 다만 만주족의 원류로 보기 힘든 [[탁발선비]]의 경우 자신들의 선조 아닐까 하는 간접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거란, 선비, 몽고야 만주족과 치고 박은 몽골계이니 그렇다쳐도 [[삼한]]까지 끌어오는 판에 만주 한복판에 자리잡았던 고조선과 고구려가 안나온다는 점은 좀 특이하다. 이에 대해 여진족의 조상격인 [[말갈족]]이 고구려에게 복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이 있다. 즉, 고조선과 고구려를 포함시켰다가는 만주사를 자신들 중심으로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배제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론 그럴듯해 보인다.[* 참고로 [[말갈족]] 항목에도 있지만, 말갈족이라고 다 같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고구려에 동화된 [[백산말갈]], [[속말말갈]] 부족도 있었고, 반대로 끝까지 동화를 거부한 [[흑수말갈]] 부족도 있는 등 각각 케이스가 달랐다. 금나라는 후자쪽.] 그리고 당시 청나라의 제후국인 [[조선]] 때문에, 조선이라는 이름의 유래인 고조선[* 유래 정도를 넘어서 고조선의 원래 이름이 그냥 조선이다. 현대인들이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 단군조선, 위만조선 등의 표현을 만들어 낸 것이다.단 고조선이란 표현은 고려말 일연대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서 최초로 언급된다. 옛조선이란 의미로 파악된다.]과 바로 전 왕조인 [[고려]][*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 바뀐 뒤에도 이웃나라들은 계속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전신이 고려라는 건 명백하게 인지되고 있었다. 청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현재도 중국 한족들 사이에서 한반도 사람들이나 [[조선족]]을 비하하는 말이 [[가오리방쯔]](고려봉자)인 것만 봐도 중국에서 고려라는 이름이 명백하게 한반도 국가를 가리킨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의 유래인 고구려[* 게다가 고구려는 [[장수왕]] 이래로 국호가 '고려'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다. 장수왕 때부터 중국 사서에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기재되고 [[충주 고구려비]]처럼 당대 고구려인이 세운 비석에도 국호가 떡 하니 고려로 기재돼 있다. 그래서 당대 중국인들은 (실제론 일종의 착각이지만)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태조(고려)|왕건]]이 세운 고려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 한 나라인데 단지 왕의 성씨가 고씨에서 왕씨로 교체된 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 청나라 때 편찬된 [[명사(역사책)|명사]]에도 조선의 전신인 고려에 대해 그렇게 적어 놨을 정도로 이 관념은 매우 뿌리가 깊었다. 따라서 청나라가 고구려를 만주족의 원류로 거론하면 자연히 당대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던 조선을 연상시키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한국사를 잘 모르는 당대의 중국인들 시각에서) 조선과 역사적으로 바로 연결이 안 되는 신라를 거론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를 다루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만주족의 원류로 인정하면 제후국 조선과 자신들의 서열이 뒤집히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발해]]는 굳이 만주원류고가 아니더라도 만주족의 역사로 자주 다루어진다. 건국과정에서 대[[걸걸중상]]과 함께 싸운 [[걸사비우]]가 말갈을 이끈 것으로 나오는 것은 물론, 말갈 7부가 고구려의 천하관 안에 속해있던 것과 달리 발해는 건국자 [[대조영]]이 [[속말말갈]]이자 고구려의 별종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말갈이 주체가 된 역사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므로 발해도 만주의 원류로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갈족 가운데서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세력(백산,속말)과 고구려의 영향과 동떨어진 세력(흑수)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전자는 발해, 후자는 여진->만주족이라는 것.] == 신뢰성 문제 == 만주원류고는 비록 [[청나라]] 황실의 주도하에 편찬된 관찬사서이기는 하지만, 아직 현대 역사학이 발달하기 이전 전근대에 무리하게 짜맞춘 여러 내용들이 현대에 들어서는 그 역사적 진실성을 크게 의심받고 있다. 일부에선 [[삼한]]까지 만주의 원류로 적은 일종의 [[역사왜곡]] 때문에 원조 [[동북공정]]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숙신, 읍루, 말갈 등에서 보듯 만주족은 [[읍루]] 시절에는 [[부여]]의 종속세력이었다가, [[말갈]] 시절에는 고구려의 종속세력[* [[문자명왕]] 시기 북벌을 통해 말갈의 복종을 받아냈다. 또한 그 이전에도 문화&경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이었다가 하다보니, --고구려 따까리하던 시절-- 삼한을 자기네들 역사라 우기게 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혹은 반대로 만주의 [[길림]]이라는 지명이 신라의 [[계림]]이라는 식으로 지나치게 음상사에 치중하기도 하고, [[요서경략설]], 삼한이 만주에 있었다는 설 등을 지지하고, 금나라의 시조 [[완안함보]]가 [[여진족 신라인설|신라 출신]]이니 금나라 국호도 신라 왕성인 김(金)에서 유래한 것 아니냐는 추측 등을 쏟아내 한국의 [[환빠]]들을 취하게 하기도 했다. 다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만주족 사관 입장에선 당시 한족 역사를 어느정도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을테고, 조선 역시 당시엔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으니 맘껏 이용해먹은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만주족 버젼 국빠짓을 했던게 아니냐는 것. 사실 후술되어있지만 만주원류고에 나온 상당수 주장들은 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취약점이 있다. 비록 현대의 위서는 아니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만주원류고는 환빠들의 단골집 중 하나다.[* 비슷하게 이용당하는 책으로 [[요사]]가 있다.][* 하지만 만주원류고를 이용해서 만주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한민족에게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한민족의 역사가 만주족의 역사에 종속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그러한 목적으로 만든 서적이기도 하고.] 특히 이는 [[중국]] 학계에서 만주원류고를 주요 사서로 많이 다루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우선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고고학]]적 성과가 거의 없고, 편찬 과정에서 청 황실에 의해 많은 기록 왜곡과 삭제가 이뤄진 정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은 이전 시기 [[여진족]]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여진족이나 청 황실에 불리한 내용들은 상당수 축소하거나 개찬하는(혹은 반대로 한족 역사는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만주원류고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허나 어찌됐든 청나라란 국가 주도하에 편찬한 사서기 때문에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이야기하긴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적어도 건륭제가 직접 지으라 지시한 청 시기 주요 서적이라는 것. 또 한족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 만주족 시각으로 편찬된 책이라는 부분은 일정 부분 의의가 있어 보인다. 물론 가장 객관적인 것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겠지만. 애초에 [[역사책]]이라기보단 여러 주장을 다 실어둔 [[연구]] [[논문]]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고대사도 마찬가지지만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당시 있던 자료는 일단 다 긁어모은 것일 뿐이라는 것. --국가 공인 사료집?-- 다만 고구려를 퉁구스계 만주족 역사로 주장하는 것을 반박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반도 국가조차 만주족 역사로 짜깁기할 정도로 범위를 넓게 잡은 만주족 측 기록에서조차 고구려를 만주족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고구려 = 퉁구스계 만주족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만주원류고는 만주의 패권국인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고 그 빈자리에다가 신라를 끼워 넣기도 했다. 그리고 만주족들이 부여,백제[* 물론 이들은 예맥계고 만주는 숙신계열이다.],신라,삼한을 자신들의 조상일 수 있다는 논의를 했다는 것을 통해 이들 국가를 한족들의 속국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나름 가치있는 역사로 보았다는 당시 만주족의 인식을 분석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중국인들의 후예라는 식으로 주장했다는 것을 통해 중국 문명을 동경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것과 같다.] == 참고 ==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017070|네이버 책정보]]: 목차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상기되어 있듯 이 책에 나온 상당수 주장들의 경우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에 그 주장을 그대로 차용한 듯한 추천평은 걸러듣는 것이 좋다. [[분류:만주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