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table width=450><table bordercolor=#000000><table bgcolor=#ffffff><bgcolor=#000000> {{{+2 {{{#ffffff ''' 마츠토야 유미 ''' }}} }}}[br]{{{+1 {{{#ffffff ''' 松任谷 由実 | Yumi Matsutoya ''' }}} }}} || ||<-2><bgcolor=#ffffff>{{{#!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松任谷由実.webp|width=100%]]}}} || ||<width=20%><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본명 ''' }}} ||<bgcolor=#ffffff>{{{#000000 '''[ruby(松任谷 由実, ruby=まつとうや ゆみ)] (마츠토야 유미, Yumi Matsutoya)'''}}}[* 결혼 전 본명은 '''아라이 유미'''. 활동명 또한 '''아라이 유미'''였으나,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 중이다.] || ||<|2><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출생 ''' }}} ||[[1954년]] [[1월 19일]] ([age(1954-01-19)]세) || ||[[도쿄도|도쿄 도]] [[하치오지시|하치오지 시]]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국적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28]] [[일본]]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배우자 ''' }}} ||마츠토야 마사타카^^(1951년생)^^^^(1976년 결혼 ~ 현재)^^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학력 ''' }}} ||[[타마미술대학]] {{{-2 (회화학 / 졸업)}}}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직업 ''' }}} ||[[가수]], [[작곡가]], [[작사가]]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데뷔 ''' }}} ||[[1972년]] 싱글 '''返事はいらない'''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수훈 ''' }}} ||[[자수포장]] ^^(2013년 수상)^^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소속사 ''' }}} ||운모사([[운모|雲母]]社)[* 남편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함께 소속된 둘의 개인사무소.]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레이블 ''' }}} ||[[유니버설 뮤직 재팬]] | EMI Records || ||<height=20><bgcolor=#000000> {{{#ffffff ''' 링크 ''' }}} ||[[https://yuming.co.jp/|[[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width=24]]]] [[https://www.youtube.com/user/yumingbest/videos?view=57&flow=grid|[[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로 [[일본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국민 가수이자 뉴 뮤직의 선구자. [[1970년대]]부터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인 [[2010년대]]까지 모든 시대에서 [[오리콘 차트]] 1위를 유일하게 기록한 가수이다. 애칭은 유밍(ユーミン)[* 유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무민]]과 데뷔 전 청소년기에 친분이 깊었던 중국계 일본인 사업가 'Sy Chen'의 이름에서 따왔다.], 작곡시의 예명은 쿠레타 카루호(呉田 軽穂)[* 왕년의 헐리웃 여배우인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에서 따옴.]. 원래의 성은 [[아라이]](荒井)이며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 발매작은 앨범이 밀리온 통산 10작품, 앨범 순위 통산 24작품, [[2015년]] 8월 [[뮤직 스테이션]] 발표 기준 총판매량 3912만장으로 역대 6위에 해당하는 기록. 역대 솔로 여가수 중에서는 2위[* 위 발표 기준으로 1위는 [[하마사키 아유미]]인데 오리콘 발표와는 너무 차이가 커서 신빙성이 애매하다. 오리콘 발표로는 마츠토야 유미가 1위, 하마사키 아유미는 200만장정도 뒤진 2위.]이다. [[2012년]] 데뷔 40주년으로 발매된 앨범 '일본의 사랑과, 유밍과。'가 솔로 아티스트 및 여성 아티스트 역사상 판매 기록 첫 3000만장 돌파라는 대기록을 남겼으며 [[2018년]] 새 앨범 '유밍으로부터, 사랑의 노래'가 발매 첫 주 10만장 돌파로 1위를 차지하여 오리콘 통산 여성 아티스트 최연장자로 64세에 1위를 기록. 매년 겨울 [[니이가타]]에서 열리는 콘서트 동원수(여성 아티스트 부분)도 매년마다 갱신하는 하는 등 현재도 매우 건재하게 활동하며 [[여성]] 아티스트의 정점에 올라와 있다. 한국 여성 아티스트로 비교하면 [[이미자]], [[패티김]] 같은 엄청난 권위를 일본 가요계에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마츠토야 유미는 작사 작곡을 직접 한 곡들로 히트를 많이 치며 일본 대중가요 유행 패러다임까지 바꿔왔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업적이 워낙 커서, 가수 위주로 활동을 한 그들과는 차이가 나기에 동아시아 여성 대중음악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일본의 국민 그룹인 [[사잔 올 스타즈]]의 [[쿠와타 케이스케]][* 두사람은 2018 홍백가합전에서 충격적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인데, 마지막 무대에서 "마음대로 신밧드"를 부르던 쿠와타 케이스케의 불장난 댄스를 받아줄 사람이 없자 선배로서 받아 주었다. 참고로 이 사람이 쿠와타보다 선배이자 2살 누나이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이쪽은 남성 밴드이지만-- == [[아라이 유미]] 시대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ffffff> [youtube(SlXL1A7rrxo)] || ||<bgcolor=#000000> {{{#ffffff ''' 현재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데뷔곡 'ひこうき雲(비행기 구름)' ''' }}} || [[1954년]]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아라이 오복점(기모노를 파는 가게)'에서 태어나 6세에는 [[피아노]], 11세엔 [[샤미센]], 14세엔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세에 처음으로 프로로서 데뷔, 15세에는 [[작사가]], 17세 땐 [[작곡가]]로 차례차례 데뷔하였다. 중학 시절 부모에게 들키지않게 가면을 만들어, 자는 척하고 밤에는 각 계 각 층의 유명인이 드나드는 [[미나토구(도쿄)|미나토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キャンティ'라는 가게로, 1960년부터 현재도 운영 중.]에 자주 출입하였는데 그 곳에서 모인 아티스트들과의 인연이 데뷔의 계기가 되었다. 'The Fingers'[* 60년대 일본에서 인기있던 밴드]의 [[사생팬]]이었다고도 한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返事はいらない(답장은 필요없어)'를 발매하며 아라이 유미 이름으로 데뷔. 이 앨범은 300장 밖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희귀 앨범이 되어있다. [[1973년]], 현재도 일본 대중음악사의 걸작으로 아직도 회자되는 'ひこうき雲(비행기 구름)'을 발매하였고 [[1975년]]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싶어)'가 첫 [[오리콘차트]] 1위를 하며 제 1차 붐을 맞는다. 이 시절 아라이 유미는 맑고 고운 [[캐롤 킹]] 풍의 맑고 고운 팝 스타일의 음악을 하면서 [[핫피 엔도]]의 멤버 [[호소노 하루오미]][* 훗날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라는 전설적인 [[일렉트로니카]] 밴드를 만들게 된다.]의 지원에 힘입어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 마츠토야 유미 시대 == [[1975년]]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결혼.[* 마츠토야 마사타카는 현재도 마츠토야 유미의 조력자이며, 사실 이 때 은퇴하려고 했으나 전업주부로 살기 싫어 결혼 후의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매년 2개씩 자신의 앨범을 릴리즈함과 동시에 타 가수들에게도 곡을 제공하며 빠른 페이스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또한 [[리조트]] 등지에서 여는 콘서트라는 것도 이 시기에 처음 도입. 이 분야에서도 황무지를 개척한 여성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1980년]] 이후로는 기타 베이스의 잔잔한 멜로디로 '[[다다미]] 4평반(2.25평) 포크'라 불리며 [[포크송]]으로 대표되던 [[일본]]의 팝을 도회적이고 매우 세련된 '뉴 뮤직'으로 탈바꿈시키게 만든 원조로써 평가받고있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ffffff> [youtube(kSrje0jehnw, width=100%)] || ||<bgcolor=#000000> {{{#ffffff ''' '일본의 인식을 변화시킨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 ''' }}} || [[1981년]]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 싶어)[* [[표적이 된 학원]](ねらわれた学園)의 1981년 실사판 주제가이다.]가 당시 음반 구매력이 지금보다 강하지 않았던 80년대의 판매량 수치를 강타하는 '''60만 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제 1회 일본 작곡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제 2차 붐이 도래. 당시의 일본은 전업 작곡가가 작곡이라는 한 분야만 담당하던 시대로 작사, 작곡, 노래까지 모든 것을 한 명의 가수가 담당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구분이 생소했던 시기라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우타다 히카루]]가 싱어송라이터로써 어린 나이로 데뷔했을 때와 같은 충격이었다고.[* 우타다 히카루와는 생일이 같다.] 이 후의 오리지날 앨범은 17곡 연속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고 [[1988년]] 앨범 'Delight Slight Light KISS' 이후엔 8장 연속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등 80년대는 그야말로 '마츠토야 유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게 된다. [[크리스마스]] 무드가 한창이었던 [[1980년]][[12월]] 발매한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 남편인 마츠토야 마사타카가 편곡.][* 해당 곡은 마츠다 세이코도 불렀다.[[https://www.youtube.com/watch?v=-YTQUZ7TumY|#]]][* 또한 나카모리아키나와 체커즈 등 많이 커버했다]는 신토와 불교의 영향이 매우 강해 그저 [[산타클로스]]와 어린애들만의 이벤트나 평범한 종교행사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크리스마스]]를 '''연인들의 연애 행사로 변화시킨 곡'''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곡은 아직도 [[일본]]에서 크리스마스하면 상위권으로 떠오르는 노래 중 하나. 그녀가 처음 선보인 '''보여주는 무대'''는 [[1978년]]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무대를 시작으로 무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 30미터나 되는 용 위에 올라타는 등 갖가지 퍼포먼스로 콘서트라는 영역을 벗어난, 당시로써 획기적인 무대를 보여주며 음악과 무대와 기획력에서 모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버블경제]]의 호황을 타고 마츠토야 유미가 작곡을 주었던 아이돌 [[하라다 토모요]]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나를 스키에 데려가 줘(私をスキーに連れてって)'의 [[OST]]가 [[스키]]붐을 일으키며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젊은이들의 카리스마', '연애의 교주'라 불렸다. "실연"이라는 소재를 깊은 감정으로 부르며 시대의 파도를 탄 유밍이었으나 [[1990년대]]부터는 민속적인 음악에 심취하여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봄이여 오라|春よ、来い(봄이여, 오라)]], '輪舞曲(윤무곡)', 'Weaver of Love~ORIHIME'[* 1996년에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녹색나라 삐삐의 모험]]의 OST로 쓰였다.] 등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1989년]]에는 앨범 '天国のドア(천국의 문)'이 전년에 발매한 앨범 'LOVE WARS'와 함께 당시 일본 가요계 역사상 '''첫 더블밀리언을 기록'''하며 일본의 앨범 시장을 개척했다. 다다음해인 [[1991년]] 발매한 앨범 'DAWN PURPLE' 역시 일본 팝 역사상 최초로 발매 첫 주 오리콘 밀리언차트를 기록하며 일본의 팝 역사를 써내려갔다. [[1998년]] 발매한 'Neue Musik'는 38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세웠고 이 앨범은 오리콘 역대 앨범 판매량 15위에 랭크되어있다. [[CM]],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곡은 셀 수 없이 많으며 [[1970년대]]부터 [[2010년대]]인 현재까지 자신의 곡 뿐만 아니라 타 가수들에게 만들어 준 많고 많은 곡들마저도 초히트시킨 [[천재]]. [[2018년]] [[일본]]에서 방송된 [[아라시니시야가레]]에서 한 출연자는 마츠토야 유미가 처음 '유밍'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작곡을 해낸 연령, 마츠토야의 구 소속사 후배이자 [[2018년]] 은퇴한 [[J-POP]] 여자 솔로계의 레전드 [[아무로 나미에]]가 데뷔한 연령, [[우타다 히카루]]가 첫 작곡, 작사를 한 연령 모두가 14세라는 나이였으므로 '''세상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14세에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80년대 전설의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많이 주었는데 그 모든 곡들이 전부 히트를 쳤다. [[1989년]]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이 또 한번 히트. [[2001년]] 작곡한 [[한국]]의 가수인 [[자우림]]의 [[김윤아]]에게 준 영화 [[OST]] '봄날은 간다(일본명:春の日は過ぎゆく)'로도 알려져있다. [[2011년]] [[홍백가합전]]에 출장해 [[봄이여 오라|春よ、来い(봄이여, 오라)]]를 불렀다. 이 무대가 엔딩이 아닌데도 전 출연진이 후반부에 같이 나와 장식해 그녀의 위용이 확인되었다. [[2018년]] 출전한 [[홍백가합전]]에서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시청자들의 투표로 선정된 아라이 유미 시대의 'ひこうき雲(비행기구름)'과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인다면)' 두 곡을 함께 불렀다. 동시대에 [[라이벌]]로 평가되는 가수가 있다면, 역시 [[나카지마 미유키]]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실제로도 친한 사이라고 한다. == 기행과 망언 == 전형적으로 괴팍한 예술 천재이다. 일본사회에서는 괴팍한 천재들도 공식석상에서 함부로 망언을 못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사람은 여성 대중음악사 전체에서 1등으로 꼽히는 역대급 천재라 그런지 거친 언행[* 물론 언행만 심할뿐, 오히려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 연예인들이 음주운전, 마약, 불륜, 도박, 불법적 사업 등에 손대다가 망한 수많은 케이스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언행에서 주는 느낌과 달리 50년의 롱런을 이룬만큼 스캔들이나 사생활 문제 없이 깨끗하여, 사적으로는 오히려 모범적 사생활을 가진 연예인이다. --거장은 거장이다-- ]을 자주 보였다. 그리하여 그 특성답게 파격적이다 못해 무례한 수준의 망언이 많다. 마츠토야 유미의 망언 모음. * "내 음악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듣지 말았으면 한다." * 팬이 아이를 데려와서 "악수해주세요"라고 말하자 "나 애들 진짜 싫어한다고!" * "내가 팔리지 않는다는 건 은행이 망하는 일만큼 있을 수 없다." * "저는 천재라구요. 싼 가격으로 내 음반을 살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기세요." * "내 음악은 부르주아용 음악.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지않는다." * "섹스를 하고 있으면 원시적인 동물이 된 느낌이다." * "오늘 내 옷은 27만엔이야. 이딴 게 말이지." * "[[전문대|단기 대학]]을 다닌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단기대에 다니는 학생이 학교 축제에 출연 요청을 하자 거절한 대답.) * "학력도 없이 노가다 일을 하고있는 사람이 내 라이브에 오면 질이 떨어진다." * 점술가에게 코 모양이 부자는 될 수 없는 사주라고 듣자 "벌써 부자거든요!!" *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팬 여러분 들 덕분이 아니라 "제 재능 덕이에요!" * 콘서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반대로 손을 흔들자 "잠깐만, 다들 오른쪽으로 손 흔드는데 왼쪽으로 흔드는 사람 누구야?[[지옥]]으로 떨어져." * [[오자와 켄지]][* 199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으로, [[시부야계]]의 대표 그룹 [[플리퍼즈 기타]]의 멤버.]가 싱글 '春よ、来い'의 가격이 왜 500엔인지를 묻자 "이제 돈 따위 필요없어요." [* 근데 이 싱글. 발매 첫주에 1위를 찍고 밀리언을 달성했다.] * "아직도 물 안 가져왔어? 빨랑 가져와! 목 마르단 말이야! 진짜 여기 도움 안되는 스탭뿐이구만!"(ANN의 생방송 중 녹음에 목소리가 들어가서 음성이 전국적으로 방송을 탐.) 같은 연예계 유명인들과 관계자들에게 뱉은 망언. *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스하는 것도 한물 갔다. * [[야마구치 모모에]]: 일본의 아이돌 수준이 낮은 걸 느껴버린다. * [[이츠와 마유미]][* 한국에서도 '고이비토요(恋人よ)'로 유명한 가수.]: 한번 굴러서 다시 돌아온 얼굴. * [[우타다 히카루]]: 사무소가 만들어 낸 가짜 우타히메. * [[오기노메 요코]]: 그 춤 괜찮아? [[오카마]]같은 스텝인데 사기당한 거 아냐? * [[오니츠카 치히로]]: 당신 [[리스트컷]] 할 것 같이 생겼네. * [[와타나베 미사토]]: 5등신이군요. / 에너지를 밖에 발산시키는 것만으로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 [[자이츠 카즈오]]: 생건조한 오징어채같다. * [[사다 마사시]]: 촌충? * [[사카모토 큐]]: 얼굴에 [[따개비]]같은 거 붙어있을 것 같아서 기분 나빠. * [[시이나 링고]]: 당신 얼굴은 각도에 따라 못난이로도 보이고 미인으로도 보이네. * [[안전지대]]의 타마키 코지: 초등학생 레벨의 작사. 캬바레같다. * [[나카모리 아키나]]: 가짜 치아(데뷔 전 앞니만 교정)가 예쁜 사람이네. * [[하마사키 아유미]]: 그 속눈썹 바퀴벌레같아. * [[혼다 미나코]]: 네가 아티스트라면, 나는 신이야. * [[마츠다 세이코]]: 인세 돌려줄테니 내 곡 내놔! 그런 이상한 아이돌한테 곡 안 써줬음 좋았어. * [[미소라 히바리]]: 도쿄돔의 복귀 콘서트를 보면서 미소라 히바리의 피라미드도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 [[쿠보타 토시노부]]: (코러스로 참가했을 때)네. 그는 '악기'로써 참가했어요. * [[쿠와타 케이스케]]: 뭐든 영어 너무 남발해. * [[쿠도 시즈카]]: 그 병든 것 같은 얼굴… * [[코다 쿠미]]: 물때. * [[코무로 테츠야]]: 가녀리고 병약하다. * [[코바야시 마미]]: 몸은 가녀리나 [[똥]]은 두껍다. * [[타케우치 마리야]]: 하고있는 게 재미가 없다. * [[나카지마 미유키]]: 억울하면 결혼해! * 마츠토야 마사타카('''자신의 남편'''): 만약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 이상이 생겨 음악가로서 불능이 되면 나는 그를 버린다. 물론 이 어록들이 전부 실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미소라 히바리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본인보다 훨씬 대선배이며 파급력과 영향력도 유키보다 훨씬 막강하고쇼와 시대의 가희라고 불렸는데다가 역사에 한 축을 그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저런말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평소에 라디오에서 무례한 발언도 많이 뱉는 걸로 유명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굉장히 높아 성격은 매우 나쁜 편이라는 말이 많다. 하지만 독설을 내뱉은 [[타케우치 마리야]]와 [[나카지마 미유키]]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오랜 시간 친분이 깊은 사이이고, [[나카지마 미유키]]에게는 '굉장히 재능있는 사람. 여자로써 유일하게 인정하고있다'고 언급하는 등 사생활 면에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우타다 히카루]]에게 또한 '지켜주고 싶은 목소리. 이건 천성적인 재능이다'라고 칭찬하였으며, [[마츠다 세이코]]의 [[2015년]]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31년만에 신곡을 만들어주거나, 이전에 무시했던 프로듀서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이란 존재에게도 좋은 얘길 건내거나, 과거에 독설을 날렸던 인물들과도 친근하게 대담을 펼치는 등 현재는 나이를 먹으며 매우 둥글어졌다. [[모모이로클로버]]는 최근에 특히 팬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벤트에서 대담했을 때 모모클로풍의 캐치프레이즈로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오카마]] 목소리, 마음은 때때로 오카마입니다. 마츠토야 유미!'라고 소개했다. 여담으로 마츠토야 유미와 친분이 깊은 [[오다 카즈마사]]는 마츠토야 유미의 정면에서 "여전히 노래 못부르는구나"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보컬 자체는 음색이 좋긴 하지만, 기교 자체는 특출나진 않다. 작사, 작곡 능력이 워낙 천재적이여서 뜬 케이스. [[파일:유밍.png]] 라디오 방송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존졸리나 알리'라고 말하는 [[스푸너리즘]]도 구사했다고 고백했다 [* 해석: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라디오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존졸리나 알리라고 말했다] 2020년에는 아베 전 총리의 사임 뉴스를 보고 울었다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모 정치학자가 '빨리 죽는 게 낫다'는 반응을 해 더욱 화제. == 히트곡 == * 1974.04.20.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이면)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제가 * 1975.02.20.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삽입곡. * 1975.08.01. 『いちご白書』をもう一度('딸기백서'를 다시 한번) * 1976.10.05.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싶어) * 1977.05.05. 潮風にちぎれて(갯바람에 부딪혀서) * 1979.12.01. 悲しいほどお天気(슬플 만큼 밝음) * 1980.12.01. [[연인이 산타클로스|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 * 1981.11.01.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싶어) - 80년대 유밍 최대의 히트곡. * 1983.12.01. ガールフレンズ(걸 프렌즈)/時をかける少女(시간을 달리는 소녀) - 하라다 토모요에게 제공. * 1984.12.01. NO SIDE/DOWNTOWN BOY * 1985.08.01. 今だから(지금이니까) <[[오다 카즈마사]], [[자이츠 카즈오]]와의 콜라보> * 1987.12.05. 月曜日のロボット(월요일의 로봇)/ダイアモンドダストが消えぬまに(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사라지기 전에) * 1988.11.30. リフレインが叫んでる(리플레인이 소리치고있어) - 유밍의 곡중에서도 영향력이 강렬한 곡이라 일컬어짐.[* 여담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소설집 '교통경찰의 밤'의 '천사의 귀'에서 진나이 슌스케 형사가 이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장면이 소설 도입부에 나온다.] * 1989.11.25. LOVE WARS/ANNIVERSARY * 1992.11.27. Carry on * 1993.11.27.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 TBS드라마 '誰にも言えない(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의 주제곡으로 사용. [[JASRAC]]상 금상을 수상한 유명한 곡. * 1994.11.25. [[봄이여 오라|春よ、来い(봄이여, 오라)]] - [[하마사키 아유미]], [[마키하라 노리유키]], [[aiko]], 한국에서 [[임형주]], [[MC 스나이퍼]] 등이 커버. ==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히트곡 목록 == 참고로 아래에 취소선이 쳐진 것은 작사만 해준 것이다. * 1975년 아그네스 창 - 白いくつ下は似合わない, 愛を告げて * ~~1976년 미나미 사오리 - 青春に恥じないように~~ * 1976년 미키 세이코 - まちぶせ - 이시카와 히토미가 81년 커버하여 히트함. * 1977년 카하시 카츠미 - 愛は突然に * ~~[[고 히로미]] - 20才を過ぎたら, 恋のハイウエイ, 宇宙のかなたへ, 君のおやじ, 雨にひとり 등~~ * [[마츠다 세이코]] - 赤いスイートピー, 制服, 秘密の花園, 瞳はダイアモンド, 蒼いフォトグラフ, Rock'n Rouge * 1980년 사카키바라 이쿠에[* 일본의 옛날 아이돌] - イエ!イエ!お嬢さん * 1983년 하라다 토모요 - 時をかける少女 * 1984년 야쿠시마루 히로코 - Woman "Wの悲劇"より * ~~1984년 코바야시 아사미 - 雨音はショパンの調べ~~[* 참고로 이 곡은 [[이탈로 디스코]] 그룹 Gazebo의 I like Chopin의 리메이크다.] * 1985년 [[타하라 토시히코]] - 銀河の神話 * 1986년 야마세 마미 - メロンのためいき * 1993년 미즈키 아리사 - 今年いちばん風の強い午後, 君が好きだから * 1998년 [[사이조 히데키]] - 2Rから始めよう * 2001년 [[김윤아]] - [[봄날은 간다]][* 1976년 발표한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를 리메이크 했다는 설이 잘못 퍼지기도 했다. '봄날은 간다'는 OST를 위해 유밍이 새로 쓴 곡이다.] * 2006년 하지메 치토세 - 春のかたみ * 2010년 [[아야세 하루카]] - マーガレット == 기타 == * 2003년 [[HMV]]가 선정한 역대 일본 아티스트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녀 뒤에 있는 여가수는 [[미소라 히바리]](5위), [[야마구치 모모에]](7위), [[마츠다 세이코]](10위). 가히 일본 음악계의 남을 역대급 전설 중 한 명이다.[[https://www.hmv.co.jp/news/article/311040088/|#]] * 집안이 [[기모노]]집을 운영하는 부자인데다[* [[기모노]]는 한 벌에 몇 백만에서 비싸게는 몇 천만엔에 달하는 굉장히 비싼 품목이다. 평범한 일본인들은 보통 부모로부터 기모노를 물려받거나 아예 기모노를 사기 위한 적금을 들기도 한다.] 사회 명사들과 교류하는 등 엄청난 상류층 사람이다. 남편도 한 끝발 날리는 뮤지션에 자동차 평론가이니 만만치 않고. [[분류:일본의 싱어송라이터/ㅁ]][[분류:일본 여가수/ㅁ]][[분류:일본의 작곡가/ㅁ]][[분류:일본의 작사가/ㅁ]][[분류:1954년 출생]][[분류:1971년 데뷔]][[분류:하치오지시 출신 인물]][[분류:타마미술대학 출신]][[분류:자수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