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image/275/2012/02/15/resize_mike_bernardo_6_20100204_2056280533_0_20120215110302.jpg]] [[분류:1969년 출생]][[분류:2012년 사망]][[분류: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물]] 생몰: [[1969년]] [[7월 28일]] ~ [[2012년]] [[2월 14일]] [[K-1]]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남아공]] 출신의 파이터. [목차] == 개요 == 강력한 펀치를 주무기로 한 [[복싱]]과 [[킥복싱]] 베이스의 격투기 선수. 193cm / 108kg의 좋은 체격조건과 민머리 스타일로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프로복싱 WBF 챔피언을 지냈던 전력이 있고, K-1 역사에서 하드 펀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선수이다. 약점은 신장에 비해 리치가 짧았으며,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고 맷집 역시 다소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킥복싱에 익숙하지 않아 레그킥 대응 능력 역시 상당히 떨어졌고, 때문에 [[앤디 훅]]과의 3차전에서는 레그킥 연타에 무너진 바 있다. 이러한 약점들 때문에 경기의 흐름을 잘 이끌다가도 어이없이 패하는 일이 많았고 전성기가 지나면서 이런 일은 더욱 두드러졌다. == K-1에서의 활약 == 1995년 K-1에 데뷔하였으며, K-1의 전성시대에 [[앤디 훅]], [[미르코 크로캅]], [[제롬 르 밴너]] 등의 한다하는 선수들과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피터 아츠]]를 세 번이나 이기기도 해 피터 아츠의 천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성기 이후 슬럼프와 노쇠화로 인해 [[얀 노르키아]] 등의 선수는 물론, 무명 선수에게도 패하는 등 1999년 이후부터 하락세가 역력해졌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기량과 몸상태는 전성기 때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2006년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에서 공식 은퇴했다. 일화로 이그나쇼프를 꺾으며 8강에 진출하게 된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과 2004년에 타 단체에서 내기 경기를 가진 일이 있다. 카오클라이가 패배할 시 베르나르도가 대신 8강에 진출한다는 조건. 그러나 무승부로 끝나서 그를 다시 FINAL 무대에서 보게 되는 것은 무산되었다. == 주요 수상 경력 == K-1 WGP 2000 in 후쿠오카 우승 월드 올림픽 킥복싱 슈퍼헤비급 챔피언 WBF 세계 헤비급 챔피언 == 사망 == 2012년 2월 15일 사망 기사가 보도되어 많은 이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75&aid=0000031872|#]] 사망 당시 SNS 등을 통해 자살 징후를 보였다는 증언과, 뇌출혈이 사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사인에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와 절친했던 얀 노르키아의 증언으로 인해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결론이 났다. 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고. 펀치 드렁크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인터뷰등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그가 자살할 정도면 심각한 수준이었던걸로 보인다. [각주] [[분류:권투 선수]][[분류:자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