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MLB)]] [[파일:external/4.bp.blogspot.com/18095.jpg]] || 이름 || 마이크 그랜트 마셜 (Mike Grant Marshall) || || 생년월일 || 1943년 1월 15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미시간주 애드리언시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6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필라델피아 필리스|PHI]]) || || 소속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967) [br] [[밀워키 브루어스|시애틀 파일러츠]](1969) [br] [[휴스턴 애스트로스]](1970) [br] [[몬트리올 엑스포스]](1970~1973) [br] [[LA 다저스]] (1974~1976) [br]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76~1977) [br] [[텍사스 레인저스]] (1977) [br] [[미네소타 트윈스]] (1978~1980) [br] [[뉴욕 메츠]] (1981) || ||<-5> '''197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 || [[톰 시버]][br]([[뉴욕 메츠]]) || → || '''마이크 마셜[br]([[LA 다저스]])''' || → || [[톰 시버]][br]([[뉴욕 메츠]]) || [목차] == 개요 == 메이저리그의 투수. 상대적으로 인지도는 떨어지나 역대 최고의 [[스크류볼]]러이자 [[중무리 투수]]계의 전설이고 최강의 고무팔이었던 선수다. 대표적인 예로 1974년 사이영 상 수상 시즌에 '''선발출장 한번 없는 106경기 208.1이닝'''이라는 엽기적인 스탯을 찍었다. 부상 보증수표라고 알려진 스크류볼을 밥먹듯이 던진 선수지만 부상으로 쉰 적은 거의 없으며, 은퇴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던지고 있다. [youtube(UUgQXJlTSaU)] == 커리어 ==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받지 못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아마추어 FA로 입단했다. 7년만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37경기 59이닝 평균자책 1.98로 괜찮은 데뷔시즌 기록을 남기지만 그 뒤 [[밀워키 브루어스|시애틀 파일러츠]],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전전하며 메이저리그에 자리잡지 못했다. 당시는 선발투수에게 게임을 길게 맡기던 시절이라서 불펜투수의 가치가 지금처럼 높지 못했던 시절이라 그랬던 듯. 시애틀 시절에는 선발로 활동했지만 87.2이닝 10패 ERA 5.13으로 매우 부진했었다. 그러다가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 된 다음 시즌인 1971년, 66경기 111.1이닝 평균자책 4.28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 후.. 1972년에 [[요시 그란도 시즌|라지에타가 터져버렸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다섯시즌 동안 선발로 한 경기도 나오지 않고 '''374경기'''에 출전, '''302경기'''를 마무리하고 '''71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2.73을 기록한다. 평균 투구이닝은 '''142이닝''', 평균 출장경기는 '''75경기'''. 다시 말하지만 이 선수는 '''불펜투수'''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5시즌 연속 100이닝 이상을 투구했으며, 1976년엔 99.1이닝으로 아쉽게 100이닝 돌파에 실패. 특히나 1974년에는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까지 수상했다. 당시 기록은 평균자책 2.42 208.1이닝 15승 12패 21세이브 143탈삼진. 평균자책 순위는 4위. 해당 시즌에는 20승 투수가 두 명 있었고 그 중 한 명인 [[필 니크로]]는 39번 등판해 18번 완투 7완봉이라는 괴력투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때문에 훌륭한 성적이지만 사이 영 상을 받을 성적이냐고 물으면 물음표가 달리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그가 사이영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구원투수로만 나와서 저런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974년 당시 그는 '''106번''' 등판해 '''83번''' 경기를 마무리했으며, 선발로 등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해는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 던지기도 했다. NLCS에서 2게임 3이닝 무실점, 월드시리즈에서 1패를 기록하긴 했으나 5게임 9이닝 1실점 기록. 1977년에 35.2이닝 투구에 그치면서 선수생활에 위기가 닥치기도 했으나 1978년 부활했다. [[김형준(기자)|김형준]] 기자는 한 [[http://blog.naver.com/generlst?Redirect=Log&logNo=50109655208|포스팅]]에서 마이크 마셜이 5년간 던지고 결국 고장났다고 했는데, 고장이 났지만 한 시즌만에 복귀했다. 1978년 '''54경기 99.0이닝''' 10승 12패 21세이브 평균자책 2.45, 1979년 '''90경기 142.2이닝''' 10승 15패 32세이브. 요즘 불펜투수들은 꿈도 못 꿀 정도의 출장경기수와 투구이닝이다. 요즘 야구에선 불펜투수가 80이닝만 넘겨도 혹사, 혹은 고무팔이라고 불리는 세상. 게다가 스팟 스타터도 아닌 전업불펜투수가 간간히 2이닝 이상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평균 2이닝 이상을 매시즌 소화해준다는 건 요즘 야구팬들은 상상도 못할 모습일 듯. 1980년~1981년에 각각 30이닝 가량을 투구한 뒤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총 14시즌동안 기록은 출장경기 '''723경기''', 투구이닝 '''1386.2이닝''', 경기 마무리 '''549경기''', 97승 112패 188세이브 평균자책 3.14. == 은퇴 이후 == 메이저리그를 떠난 뒤에는 운동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학계나 야구계에서 활동하는 중. 1960년부터 1965년까지 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1966년~1967년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1970년~1978년 동안 야구와 학업을 병행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은퇴 뒤에는 피칭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며, Western Texas A&M University에서 Associate Professor로도 활동했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을 최초로 창시한 사람도 이 양반. 다만 설명이 너무 현학적이라 실용성을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위에 링크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글러브 랜딩 각도가 어쩌니 하는 장황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스크류볼을 던지는 장수한 고무팔 불펜투수'''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 같은 유니크한 투수. 여담으로 박사학위 취득 논문 주제가 '''투수는 매일 공을 던질수 있다.'''였다(....) [각주] [[분류:미국의 야구 선수]][[분류:1943년 출생]][[분류:미시간 주 출신 인물]][[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은퇴, 이적]][[분류:밀워키 브루어스/은퇴, 이적]][[분류:휴스턴 애스트로스/은퇴, 이적]][[분류:워싱턴 내셔널스/은퇴, 이적]][[분류: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은퇴, 이적]][[분류: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은퇴, 이적]][[분류:텍사스 레인저스/은퇴, 이적]][[분류:미네소타 트윈스/은퇴, 이적]][[분류:뉴욕 메츠/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