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작센안할트/행정구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ista_Magdeburg.jpg|width=100%]]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마그데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이자 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3><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cd116> '''{{{#000000 {{{+1 마그데부르크}}}[br]Magdeburg}}}''' || ||<-3> [[파일:마그데부르크 문장.png|width=150]] || ||<-3><bgcolor=#fcd116> '''{{{#000000 휘장}}}''' || ||<-3> [include(틀:지도, 장소=독일 마그데부르크)] || ||<-3><bgcolor=#fcd116> '''{{{#000000 마그데부르크의 위치}}}''' || ||<-3><colbgcolor=#000000> '''{{{#ffffff 행정}}}''' || ||<width=35%> '''{{{#ffffff 국가}}}''' ||<-2>[[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 '''{{{#ffffff 시간대}}}''' ||<-2>(UTC+1/+2) || || '''{{{#ffffff 주}}}''' ||<-2>[[작센안할트]] || ||<-3> '''{{{#ffffff 인문환경}}}''' || || '''{{{#ffffff 면적}}}''' ||<-2>201km² || || '''{{{#ffffff 인구}}}''' ||<-2>237,565명^^(2019년)^^ || || '''{{{#ffffff 인구밀도}}}''' ||<-2>1,182명/km² || || '''{{{#ffffff 홈페이지}}}''' ||<-2>[[https://www.magdeburg.de/Home?La=2|[[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height=30]]]] || ||<-3> '''{{{#ffffff 정치}}}''' || || '''{{{#ffffff 시장}}}''' ||루츠 트륌퍼 || [include(틀:독일 사회민주당)] || [목차] == 개요 == [[독일]]의 도시이자 [[작센안할트]]주의 주도이다. 엘베강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자그마치 1200년이나 된 매우 유서 깊은 중세 도시이며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30년 전쟁]]까지 독일의 굵직한 역사를 함께했으며 [[한자 동맹]]의 맹주로서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 도시로 활약했다.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쇠약해졌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소실되고 옛 모습을 많이 잃었으나 아직도 곳곳에 1200년간의 역사를 품은 유산들이 의외로 많이 남아 있다. == 역사 == 마그데부르크는 중세 독일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중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39px-HerscherpaarMagdeburgCathedral.jpg]] ||오토 대제와 왕비 에디트의 조각상.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1250년경||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가 805년 이 지역에 거주지를 세우면서 마그데부르크의 역사는 시작된다. 중세 상부 [[독일어]]로 '크고 튼튼한 요새'라는 뜻의 'Magadoburg'에서 오늘날의 도시 이름이 유래된다. 이 도시는 본래 인근 [[마자르]]족과 [[슬라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이후 962년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을 성립하면서 이곳을 수도로 삼게 되고, 사후에는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 안장되었으니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이 도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부터 마그데부르크는 매우 강성해졌으며 13세기 [[한자 동맹]]에 가입할 당시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2만여 도시 중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마르틴 루터]]도 여기서 잠시 활동했었으며 이에 따라 마그데부르크에도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마그데부르크는 독일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 영향력은 한동안 꺼지지 않을 듯 했다. === [[30년 전쟁]] === 30년 전쟁 와중이던 1631년 틸리 장군이 이끌던 카톨릭 황제군은 마그데부르크를 점령하는데 이 때 대학살극이 벌어진다. 황제군이 마그데부르크를 장악한 1630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 20일까지 황제군은 마그데부르크 내의 식량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시민들까지 무차별 학살한다. 황제군은 당시 폭주하는 군사비로 인해 제대로 된 식량과 물자를 보급받지 못해 매우 굶주려 있던 상태였고, 이 같은 상태가 엉뚱한 마그데부르크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당시 제국군 원수에서 해고 당해서 앙심을 품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공작으로 인해 황제군이 굶주렸다는 '''썰'''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당시의 미약한 행정력으로는 10만이 넘는 황제군을 먹여살리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발렌슈타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이 거대한 군대를 겨우 유지할수 있었지만, 그의 해임으로 인해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이 비극은 오히려 발렌슈타인의 해임으로 인해 발생한 일에 가깝다.] 결국 6달만에 3만명에 달하던 마그데부르크의 인구가 불과 5천명으로 줄어드는 대참극이 일어났다. 30년 전쟁 역사상 늘 약탈이 있어왔지만, 이 마그데부르크 사건은 그 중에서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심각한 약탈, 방화, 살인, 강간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결국 개신교 세력을 결집시켜 30년 전쟁의 판도를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에 상관없이 마그데부르크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으며 이후 한자 동맹 시기의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 근대 === 이러한 참변 이후 마그데부르크의 시장이었던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 참고로 이 사람은 근대 [[물리학]]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한 사람인데, 후술할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 말고도 [[마찰 전기]]에 대한 연구로 유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탈레스]]가 [[호박(보석)|호박]]을 천에 문질러서 마찰 전기를 발생시켰던 것을, 게리케가 [[구리]]로 된 큰 구를 만들어서 천에다 문질러서 탈레스의 실험을 재현하면서, [[금속]]이 강력한 [[유전체]]임을 입증했다.]는 폐허가 된 마그데부르크의 재건에 힘을 쏟았다. 그에 의해 대기압의 세기를 나타낸 것으로 유명한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이 1654년 행해졌고(다만 이 실험은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린 [[라이히스탁]]에서 황제가 보는 앞에서 실행되었다) 이 실험은 기체 역학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군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되었으며 [[틸지트 조약]]에 의해 프랑스의 괴뢰 왕국인 베스트팔렌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배한 1815년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가 되고 이후 [[독일 제국]]에 편입된다. === 현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MagdeburgStalinist.jpg]]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마그데부르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드레스덴 폭격]]이 이루어지기 1달 전인 1945년 1월 16일 영국 공군에 의해 주도된 폭격으로 인해 1만 60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 과정에서 마그데부르크에 남아있던 문화 유산의 대부분이 소실된다. 전쟁 이후 [[소련군]] 점령에 마그데부르크가 포함되고 곧이어 [[동독]] 정권이 수립되면서 재건 계획에 의해 남아 있던 문화 유산들의 잔해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소비에트 식 건축물들이 들어선다. 이렇게 [[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마그부르크는 그 외형이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만 오토 대제가 대관식을 올렸던 마그데부르크 성당 등 중요한 건축물들은 일부 보존되었다.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동서독 통일|통일]]과 함께 마그데부르크는 부활한 [[작센안할트]] 주의 주도로 새롭게 출발한다. 2005년 도시 설립 1200주년 기념 행사가 마그데부르크에서 열렸다. 다만 통독 이후에 여느 동독 도시들처럼 인구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같은 주의 [[할레]]보다 인구가 아주 약간 적다. 주민들 정서도 구 동독 지방의 그것과 비슷하게 다소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다. == 명소 == [[파일:5omchf5hswy11.jpg|width=600]] *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937년 처음 세워진 매우 유서깊은 성당이다. 이곳에 오토 대제가 묻혀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Gr%C3%BCnezitadelle.jpg]] * '''그뤼네 치타델레(Grüne Zitadelle)'''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에 의해 설계되었다. 건물 자체는 훈데르트바서가 2000년 타계한 이후 착공되었으나 설계는 그가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 여담 == g가 무성음화하기 때문에 원래대로면 막데부르크라 읽어야 하나, 독일어 표기법에선 마그데부르크가 표준 표기가 되었다. 일본어로도 마크데부르크(マクデブルク). 많은 구 동독 지역이 그렇지만 이곳도 [[네오나치]]가 상당히 날뛰는 곳이다. 2006년 이곳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이 네오나치로부터 폭행을 당해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독일제국]] 시절에 도시의 이름을 딴 순양함 함급이 있었다. [[마그데부르크급 경순양함]] 참조. 참고로 1번함 마그데부르크는 독일의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의 원인을 제공했다(...) [[3. 리가]]의 [[1. FC 마그데부르크]]가 이 도시를 연고로 하고있다. 동독시절엔 [[SG 디나모 드레스덴]]과 함께 강호로 뽑혔지만 통일후 사이좋게 강등됐다. 그리고 현재도 [[SG 디나모 드레스덴]]과의 라이벌의식을 불태우고 있다. 이 둘의 더비를 [[엘브클라시코]]라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엘베 강]] + [[엘 클라시코]] [[분류:작센-안할트]][[분류:독일의 도시]]